안톤 체호프 - 체호프 단편선
잿빛 배경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남편과 아내는 한날한시에 죽을 수 없다. 둘 중 하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한 사람을 보내고 나서도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넬리는 남편이 죽어가는 것을 본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모든 일들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불행으로 비쳤다. 그녀는 관과 양초들과 교회 일꾼을, 심지어 장의사가 무덤 속에 남겨놓은 발자국을 본다.
「왜 이래야 되지? 무엇 때문에?」
그녀는 죽은 남편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며 묻는다.
얼마 전에 읽은 피츠제럴드 단편 선과 비교해봤을 때 체호프의 단편은 참 직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체호프가 전하고 싶은 말이 직관적으로 소설 속에 녹아 있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도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서 읽기가 참 편했다.
첫 번째 이야기인 「관리의 죽음」같은 경우에는 몇 년 전에 어떤 강의를 통해 알게 된 소설이다. 자신의 사소한 실수에 대해 과도하게 상상의 나래를 뻗치던 관리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너무 유머러스하게 묘사해서 보는 내내 웃었던 기억이 났다.
그 밖에도 자신을 소중히 대해주던 남편을 등한시하다가 결국 그가 죽고 나서야 후회를 하게 된다는 「베짱이」나 아주 오랜 시간 세상의 지혜를 탐구한 끝에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낀 채 사라져버린 남자의 이야기인 「내기」, 아주 높은 지위에 올랐으나 그 자신만은 끝없이 옛 시절을 그리워하던 주교의 이야기 「주교」등 손쉬우면서 비교적 짧고 유머러스하며 한 편으로 아주 섬세한 인물들 간의 감정묘사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소설로 가득하다.
특히 나는 「관리의 죽음」, 「주교」와 더불어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이 몇 편 정도 더 있는데, 「드라마」와 「티푸스」다.
「드라마」에서는 자신이 쓴 글을 사랑하며 남이 쓴 글을 읽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작가가 나온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여자가 낭독하는 글을 강제로 듣다가 결국 그녀를 무거운 문진으로 힘껏 내려쳐 죽여버린다. 그리고 배심원들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어찌 보면 황당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겠으나 나는 이 소설에 나오는 작가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나 또한 간혹 다른 작가의 글을 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여자가 작가에게 한 짓이 고문과 비슷한 형태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원치 않는 일을 행하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그러니까 작가의 괴로움을 이해한 배심원들이 그녀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일지도 모른다.
무라슈키나는 또다시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파벨 바실리치는 난폭하게 눈을 희번덕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가슴속으로부터 치솟아나오는 듯한 괴기스런 비명을 지르더니 묵직한 문진을 집어들고 그것으로 무라슈키나의 머리통을 힘껏 내리쳤다.
「날 잡아가라. 내가 그녀를 죽였다!」
잠시 후 뛰어들어온 하인에게 그가 말했다.
배심원들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티푸스」는 참 아이러니하면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티푸스에 걸린 클리모프가 겨우 살아났을 때, 그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동생이 티푸스 때문에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도 자신에게 옮아서. 그런데도 그는 슬퍼함과 동시에 그를 훨씬 웃도는 기쁨을 느낀다. 삶에 대한 본능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다. 때로 그것은 인간적인 면을 갉아먹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가운데에서 겨우 살아났다는 기쁨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만 과연 누가 그들을 탓할 수가 있단 말인가. 어쨌든 삶에 대한 의지는 종종 도덕과 예의범절, 죄의식, 연민 등을 상회하고는 한다.
이 무시무시한 뜻밖의 소식은 클리모프의 의식 속으로 온전하게 전달되었지만 그것이 아무리 무섭고 강력한 것일지라도 회복기의 중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동물적인 기쁨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는 울며 웃었고, 이내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고 투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처럼 인물들을 아주 입체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체호프가 직접 그들이 되어 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무한한 상상 속에서 그들의 입장이 되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모든 것을 끄집어내 생생한 인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덤으로 그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배경은 또 어떤가. 마치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손짓해 자신의 소중한 공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덕분에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풀과 흙냄새,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까지 바로 옆에서 듣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확실히, 아주 먼 곳에 있는 미래의 독자조차 당시의 세계로 데리고 오는 것이 체호프의 천재성이라면 나는 그가 천재라는 것에 기꺼이 동의한다.
「드이모프!」
그녀는 큰 소리로 불렀다.
「드이모프!」
그녀는 남편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실수가 있었다고, 그러나 아직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고, 인생은 아직도 멋지고 행복할 수 있다고, 그는 드물고 비범하고 위대한 인물이며 자신은 일생 동안 그 앞에서 공경하고 기도하며 성스러운 경외감을 느낄 것이라고……
「드이모프!」
남편이 이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녀는 그의 어깨를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