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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만장자 홍사장 May 27. 2021

이제는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갈 때

"너는 반장이란 놈이 모의고사 성적이 이게 뭐니? 부모님 모시고 와!"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어이없는 이유로 반장이란 고위직에 앉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 학교에 반항하기 위해서 삭발을 한 것이 담임선생님께 눈에 띠여 교무실로 데려가시더니 '한 인상하니 네가 반장해라' 라며 그날 바로 정해졌다. 그렇게 반장이란 껍데기를 뒤집어쓰긴 했지만 내면의 나는 여전히 놈팽이 였기에 3학년이 되고 첫 모의고사 결과에 담임선생님은 상당한 실망을 한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이 조공으로 이불을 해달라고 할 때 이후 처음으로 학교에 상담으로 불러오셨다. 나는 그날 저녁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눈물에 글썽거리며 이야기 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을 말이다.


 "나는 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그래도 국립대는 갈 실력이 될 줄 알았는데..오늘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겨우 4년대 갈 정도 실력이라고 하니 가슴이 답답해지더라.."


 나는 정말 창피했다. 솔직히 담임선생에게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런 상황을 만든 내 자신이 더욱 밉고 짜증이 났었다. 이제껏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에게 이런 실망을 안겨드린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내 행동으로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밤 12시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하며 새로운 것을 익숙하게 하였고, 집에 와서는 새벽3시에 잠을 자고 6시면 일어나 공부하기 바빴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하루에 한권의 문제집을 풀었으며,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공부를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방도, 노래방도 끊었다. 사실 나쁜 행동이었지만 몰래 친구들과 마시던 술도 그리고 담배도 나의 목표를 위해 끊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8세 밖에 안된 놈이 무슨 오기가 생겨서 그렇게까지 밀어 부쳤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 이후 나는 오롯이 부모님의 믿음을 회복시키기 위해 수학능력고사에 매달렸다. 한달한달 모의고사 성적은 10%이상씩 올랐고, 그럴수록 부모님께 자랑할 수 있음에 기뻤고 또 그것에 신이나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 마침내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고, 원하던 대학을 갈 수 있게 되었다.


 군대 제대 후 대학교에 복학 한 후 최대한 빨리 일을 하고 싶었다. 원하는 일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빨리 돈을 벌고 싶어서 였다. 그 당시 여유롭지 않던 집에 경제적으로 짐을 덜어주고 도움을 주고 싶었다. 사실 그때 당시 나의 꿈은 공부를 더 하는 것이었다. 대학을 지방 국립대로 갈수 밖에 없었기에 대학원은 서울로 올라가 좀 더 넓은 물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공학 쪽 머리는 그나마 돌아가는 편이라서 관심도 많이 가졌던 분야이며 재미도 성취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5살이 넘은 나이에도 집안의 도움을 받으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등록금 말고는 집에서 학비를 받아본 적이 없다. 복학 이후에는 생활비마저도 스스로 해결하며 지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내 주변에 상황에 맞춰 내가 가야할 방향을 조정하며 맞춰갔다. 하기는 싫었지만 해야만 하는 상황이면 이 악물고 했다.


 힘들다고 소문난 회사에 입사하여 하루하루 버텨가며 살아갔지만 가족들에게는 경사와도 같았다. 튼튼한 대기업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든든하고 멋있어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닌 나대신 행복해할 그 누군가를 위해서 말이다. 나는 첫 번째 직장생활을 할 때까지 삶 안에서 나를 위해 스스로 결정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정말 행복할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가족들을 위한 결정,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할 행동들을 해온 것뿐이었다.


ᅠ이러한 수동적 행동은 지금의 와이프와 결혼이란 새로운 출발을 한 후 많은 것이 변하게 되었다. 와이프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나만의 가정이 꾸려졌다는 것이 인생에 큰 의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외부가 아닌 내면의 이유를 최우선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내 가정을 꾸리면서 인생의 주도권을 가져오게 되었다. 외부의 시선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인생이, 이제는 내부의 시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고 그렇게 나의 것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후 나의 모든 행동에는 조건이 붙게 되었다. 내가 행복해야 할 것. 행복을 위한다고 내 가족을 희생시키지 말 것.


 한번 뿐인 이 삶을 온전히 나의 삶으로 살아가고 싶다. 여기 나의 삶이란 말에는 지금의 와이프와 아들 둘도 포함되어 있다. 이미 정석처럼 펼쳐있는 팍팍한 행복보다는 스스로 설계하고 쟁취하는 행복을 취하고 싶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언제가 올지 모른 행복을 마냥 기다리기에는 내 성에 차지 않는다. 30년 넘게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오지 못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가지고 싶은 행복, 나에게 맞는 미래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가장 빨리 부자되는 법'의 저자 알렉스 베커가 말했듯이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한 통제권을 하나씩 가져오도록 하겠다. 시간, 재정, 관계 등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 모든 것을 다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 안주해 있을 수가 없다. 더 이상 남들에게 통제권을 넘겨주는 삶을 살기는 싫다. 앞으로 발생할 것에 대해서는 온전히 내가 선택하고 그 결과가 나의 탓임을 인정하는 삶을 살기위해 오늘도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우며 성장한다. 이 성장은 분명 내가 원하는 삶으로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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