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만장자 홍사장 May 27. 2021

이 아이들에게 진정한 멘토가 될 수 있기를..

"어머니, 저 농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00고등학교에 보내주세요."


 내가 중학교 시절, 어머니에게 자주 했던 이야기이다.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 밖에 잘 하는 것이 없었던 나는 키가 좀 크다고 농구경기에 자주 불려나가곤 했다. 처음에는 드리블도 패스도 잘 못해서 욕먹기 위해 경기를 하는구나 생각했지만 그렇게 부딪히며 배우다보니 어느새 농구 골대 밑을 지키는 센터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사춘기 시절에 이러한 자신감이 조금 왜곡되어 표현 되었나보다. '나는 농구 좀 할 줄 안다' 라 '나는 농구가 적성인가보다'로 인식되면서 농구가 나의 천직인 냥 부모님께 운동시켜달라고 늦은 떼를 쓴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유행했던 3:3 농구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준비하는 중 내 실력은 정말 형편없음 깨닫고 부모님의 반대를 받기도 전에 스스로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 저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서울로 보내주세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한창 방황하며 놀고 있을 시기에 아버지와의 식사 겸 반주시간에 용기를 내서 올린 나의 제안이었다. 물론 나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그때 살아계셨던 할머니의 지인 중 SBS PD님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연줄을 잡으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제안을 들은 아버지는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그 즉시 밥상을 엎어 버리셨다. 그리고는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일침을 날리시고 그런 건 공부해서 대학가서 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다. 그때의 좌절감은 아직도 아버지와의 술자리에서 회자되기도 한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굉장히 심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도 그때 아버지께서 호되게 말씀해주지 않았으면 내 얼굴과 내 몸으로 얼마나 많은 수모(?)를 겪으며 살아왔을지 간담이 오싹해진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장사로 먹고 살아왔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중학생일 때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오랫동안 홀로 장사를 하시면 고모 5명 그리고 아버지를 먹여 살리셨다. 그런 할머니 밑에서 자란 아버지는 공부보다는 장사가 더 와 닿을 것이고 그렇게 학업을 포기하시고 상인의 길을 얼마 전까지 걸어오시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소소한 일거리로 용돈 벌이를 하고 계신다. 나 역시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일명 '상인의 자식'으로 많은 것에 부모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가게 일을 도와가며 학업을 병행해 왔기에 장사의 좋은 면도 알지만 그만큼 어렵고 힘든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중에 커서 장사보다는 화이트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편하게 자리에 앉아 일하는 월급쟁이가 너무나 되고 싶었다. 이와 같이 부모님 역시 젊었을 적 학업을 포기했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자식들만큼은 학업에 아쉬움이 없도록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 내가 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자식이 공부 열심히 해서 안정된 직장을 다니길 원했는데 그 길을 벗어나려고 하니 화가 나셨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나는 대학을 진학하고, 그리고 회사에 취직하고 더 안정적이고 더 많은 연봉을 추구하기 위해서 한번의 이직도 하였다. 너무나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삶이 아닌가 싶다. 좋은 학교 가기 위해 공부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스펙을 키우고,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 남들을 밟고 올라서야하는 이 인생은 너무나도 반복적이고 획일화 되어 있다. 이렇게 짜여 진 각본 그대로 살아왔으면서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자신이 해보지 않은 것은 모두 불안정한 것이니 내가 밟아온 길을 그대로 밟고 가면 아니, 조금 더 좋게 밟아오면 더 좋은 날들이 올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봐야겠다.


"나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이러한 곳이라고 진심으로 말해줄 수 있는 입장인가?"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짜여 진 각본에 따라 살아가는 그런 무대 위의 삶 말고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가는 사막 위 오아시스 같은 인생을 살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도 그러한 인생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겪어보지도 경험해보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진심으로 설명해줄 수 있겠냐 말이다. 그래도 이 세상 밖은 이러하다는 조언정도는 해줄 수 있어야 되지 않겠나 싶었다. 입만 나불거리는 꼴도 보기 싫은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꼬박꼬박 나를 먹여 살려주는 안정된 곳에 머물러 있기가 어려워졌다. 솔직히 지금은 너무 편하고 안정적이고 실패를 하고 실수를 해도 안아주는 온실안의 병아리 같이 평온하다. 하지만 그 병아리가 닭이 되었을 때 알만 낳는 기계로 취급하거나 백숙의 재료로 쓰이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경험해보지도 않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모인 내가 직접 경험해보고 느껴본 이 세상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많은 선택의 길을 열어주고 싶다. 내가 경험해본 건 단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가서 또 열심히 하면 좋은 회사 취직한다.' 뿐이기에 내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말해 줄 수 있는 건 '공부 열심히 해라' 라는 말 뿐인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많은 선구자들이 한 가지를 파고 들어 전문가 되는 것을 권한다. 자신의 강점을 살려서 그것을 극대화 시키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한다. 물론 좋은 말이지만, 그렇게 하나에만 몰입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고 그것만 하기에는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 요즘 같이 융합 및 복합 시대에 한 가지만 잘한다고 잘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 말은 즉 공부만 잘한다고 누구하나 대접해주는 이는 없다는 말이다. 어차피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즐비해 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서야 할 곳은 어디일까? 무한한 경쟁자들이 있는 학업의 공간일까? 아님 수없이 펼쳐져 있는 나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울타리 밖 세상일까? 물론 정해진 각본이 없으니 불안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짜여 진 각본대로 산다고 불안하지 않을 것도 아니다. 이왕 살아가며 깨지고 부딪힐 거 새로운 것, 남들이 하지 않는 것, 보통과 다른 것을 하며 경험하고 성장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삶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전에 내 스스로가 경험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가려는 길을 정당화 하고 있는 것 일수도 있다. 보통과 다른 길을 걸어가려고 하니 불안하기도 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보니 그렇지 않다고 변명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니들은 획일화되게 살면서 행복하다고 착각하겠지만, 오산이야~ 이 세상 밖은 더 행복하다고!!" 라며 자기기만에 빠졌다고 해도 번복할 말은 없다. 하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아이들 앞에서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 옳은 것은 아니라고 당당히 가르쳐주고 싶다. 아빠 삶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다른 아빠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아빠도 충분히 행복해 보인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도전하고 행동할 것이다.


 이 글을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읽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그때는 출근이 없는 아침을 맞이하고 등교 길을 함께하며 인생의 공부를 함께하는 그런 아빠가 되어 있길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나는 스스로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놈이기에 이 글을 남겨 실행력을 높여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햇살 인테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