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애니 Jul 21. 2023

존재의 가치

태어난 순간부터 밥값을 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매일 새로운 일자리가 구인구직 사이트를 가득 메운다. 전 회사의 퇴사 결심이 선 이후부터 꾸준히 취업 사이트를 모니터링 하고 있다. 하지만 하얀 건 글씨, 지원하고 싶은 마음의 동요가 업로드하는 일자리갯수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게 문제다.


그러는 사이 홍밀밀 작가님의 브런치에서 <번아웃의 종말>을 발견했다. 같이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일정을 놓쳤다.


혼자서 벽돌처럼 생긴 책 <번아웃의 종말>을 읽기 시작했다. 마음챙김(명상)의 맥락에서도 읽었어야 했던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주 종종 집에서 쉬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 무례함을 표현하는 지인들이 있다.

"집에서 놀잖아. 시간도 그렇게 많은데 뭐해?"


나는 그말을 듣고 흘리긴 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집에서 쉬지만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산재해 있다. 집안일은 일이라고 부르지만 직장에 나가서 월급을 받거나 돈을 버는 것만 가치를 더 높이 매기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번아웃의 종말>에서 주구장창 주장하는 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 모두 지금 하는 일과는 상관 없이 가치가 있다"


이상향과 같은 문장이다. 책의 후반부에 실제적인 사례를 가져왔지만 한국 사례에선 무엇을 대입해볼 수 있을까.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류의 책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는 건 아닐까.


/ 지금 하는 일로 내 가치를 판단할 때


일을 해야만 존재의 이유가 생긴다고 했을 때 수많은 경우 불행한 일이 더 많다. 한 회사를 오랫동안 다녔던 나에겐 1년 언저리 정도만 다니고 퇴사한 회사들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내겐 일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그렇게 일하지 못해서 나란 인간은 안달이 났던 걸까.


일은 내게 존재의 이유이자 목적이 되어 있었다. 저 이런 거 하는 사람이라는 걸 나타내주는 일종의 정체성이었다. 일과 내가 동일시 되지 않았던 지점이 있었다. 첫 회사를 길게 다니고 구했던 다음 회사들이 그랬다.


평생 늙어죽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싶었다. 내게 일은 소유의 개념처럼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했다. 사회에서 일한 연차가 오래됐어서 매번 새로운 일에 도전했던 나는 사회초년생 수입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지금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연기처럼 희미하다. 얼마나 스스로 기다려줘야 일하고 싶은 에너지가 샘솟게 될까. 나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와버린걸까.


머리가 너무 복잡할 때는 몸을 움직인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20여분 정도 차를 몰고 부암동텃밭에 도착한다. 1시간 정도 잡초와 작물 정리를 해주면 또르르 땀이 떨어진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오전 9시에만 가도 무덥다. 또르르 떨어지는 땀 때문에 서둘러 작물 정리를 한다.


그렇게 텃밭에서 몸을 움직이고 나면 머리가 새하얘진다. 깨끗한 뇌로 다시 생각에 잠긴다.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나아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번아웃이라는 슬픈 문화를 끝내기 위해, 일하는 개인들이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가장 중요한 건 우리 모두 지금 하는 일과는 상관없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예요. 태어난 순간부터 밥값을 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귀한 사람들이었지요. 그 가치는 여전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은 자기가 일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 생각을 극복하는 게 중요해요.


출처 : 톱클래스(http://topclass.chosun.com)



일에 대한 이상과 일의 현실 사이의 간극이야말로 번아웃의 원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하는 일이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에 못 미칠 때 번아웃을 겪는다. 이런 이상과 기대는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다.




일이 요구하는 바가 많아지는 반면 대가는 줄어들게 된 큰 이유는 업계의 원칙이 비용과 위험부담을 지는 이들을 고용주에서 노동자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고용주들은 자본가 친화적인 규제 완화와 그 밖의 정책변화에 힘입어 노동자들을 자산보다는 부채로 바라본다. 그렇다면 회사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언제나 최저 급여로 최소한의 직원을 구해야 하고, 이는 사무실 임대료와 포장 비용을 아끼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사람들은 오로지 물질 때문이 아니라 이상 때문에 일한다.


나는 번아웃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강의였는데도 강의를 그만두고 나자 방향을 상실한 기분이 들었고, 풀타임 교수직을 그만두고 2년도 지나지 않아서 한 강의당 이전에 벌던 돈의 극히 일부밖에 되지 않는 몇천 달러라는 돈을 받고 겸임교수 일을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오로지 돈을 위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전을 하느냐 마느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