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분동안 장을 보고 주차요금 1,200원을 지출했다
신예희 작가의 <마침내 운전>을 읽었다. 이걸 읽으면 운전하는 기쁨이 이전보다 더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운전을 할 수 있지만 즐기는 편이 아니다. 여전히 주차장 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은 곳을 간다는 자체가 스트레스다. 책에서 "주차 공간은 언제나 부족하다"라는 한 문장에서 깊은 공감이 됐다. 원래 부족한 건데 그걸 내가 고민한다고 운전을 미룰 핑곗거리 하나가 지워졌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경동시장에 차를 끌고 가봤다. 매번 미련하게 시장을 보고 두 어깨에 짊어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수박 1통을 사서 버스 타고 집에 왔던 날만큼 허무한 적이 없었다. 수박이 무거워서 다른 걸 구매하기 어려웠다. 잠시 소강 상태인 장마 탓에 햇빛이 나서 좋지만 왜 이렇게 무더운지 장보러 가기 싫은 날씨다. 이럴 땐 마음 편하게 마트나 백화점이 최고다. 하지만 시장만큼 재미있진 않다.
신예희 작가는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에 차를 주차한 후 그 주변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즐거움을 안다고 했다. 내게 그런 공간은 정릉 정도가 있다. 무료주차가 1시간 정도 허용되는 주변 도서관이 많이 있지만 나는 아직 시간에 쫓긴다. 후다닥 일만 보고 나오는 성격을 어디 버리질 못한다.
경동시장에는 주차가 어려운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니었다. 잘 지어진 서울한방진흥센터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시장을 볼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은 경동시장 안에 스타벅스를 갈 때 서울한방진흥센터를 많이 이용하는 중이었다.
2차선에 서야 하는데 직진 차로에 서서 뱅뱅 돌았다. 원하는 대로 안풀리니까 다시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돌아가면 요상한 운전 트라우마가 남을 것 같았다.
갈 때까지 가보자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지만 우회전에서 좌측으로 끼어들 때 한 번 빵 소리를 먹었다. 죄송하다고 비상깜박이를 눌렀다. 그 이후로 멘탈이 잠시 탈출해서 가야 하는 길로 가질 않고 새로운 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마음을 먹은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경동시장을 갈 때 두 어깨가 가벼워질 수 있겠다. 소처럼 짐을 어깨에 짊어지는 것보다 차량을 이용하는 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짐이 많을 때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선택지가 내게 있어서 다행이었다.
40분동안 장을 보고 주차요금 1,200원을 지출했다. 뿌듯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그동안 돌고 돌아왔던 걸까 풋하고 헛웃음이 났다. 다음번에 갈 때는 제일 빠른 길로 돌아가지 말아야지.
나는 '운전하느냐 마느냐'라는 선택의 여지가 생긴 게 기쁘다. 옵션이 풍부할수록 좋다. 가볍게 움직이고 싶을 땐 대중교통을, 멀리 다녀와야 하거나 짐이 많을 땐 운전을 선택한다.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에 차를 주차한 후 미술관과 그 주변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즐거움을 이젠 안다.
불혹의 나이, 드디어 기동력이라는 슈퍼파워를 쟁취했는 걸요. 아낌없이 써먹어야죠.
- 운전의 기쁨과 슬픔
차 열쇠와 함께 주먹을 불끈 쥐고 주차장을 바라보면 의욕이 샘솟는다. 마음 같아선 어디든 차를 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시동을 걸고 핸들을 돌리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요 사각형 주차선 안에 내 차 한 대 쏙 집어넣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 없다.
왜 안되는 걸까 곰곰 생각해봤는데 공식이 있어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전진을 하든 후진을 하든, 집 앞을 한 바퀴 돌든 세계의 끝을 향해 질주하든, 운전의 마무리는 결국 주차다.
주차 공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지상은 물론이고 지하 깊숙이 땅을 파 들어가는데도 부족하다.
- 영원한 숙제, 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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