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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an 30. 2020

쫄보가 운전하는 마음

차로 사고치는 일의 범위가 커져서 내 안의 두려움이 있었다.

늘 듣던 말의 새로움 : “날마다 오늘이 첫날이고 마지막 날이야.” ('아침의 피아노' 중에서)     



얼마 , 55만원을 주고 20년이 넘은 SM5 범퍼와 긁힌 차를 수리했다. 뚜벅이생활을 하다 장롱면허를 탈출하며 맛본 운전은 ‘편한 세계’를 열어주었다. 아직 주차는 미숙하고, 끼어들기가 부자연스럽지만 운전을 하면서 세상 편해졌다.


주행은 가능하지만 주차가 미숙해서 답답한 마음이 있었다. 어린이집 등하원하면서 아파트 주차장에 혼자 내려가서 주차연습을 했다. 운전은 할수록 실력이 붙고 마음의 두려움이 조금씩 걷혔다.


편한 생활도 잠시 범퍼를 박은 이후 내 멘탈은 유리처럼 바스락거렸다. 입사지원했던 곳에서 면접보라고 했던 날이었다. 잘 되지 않으려고 액땜이었을까 아니면 정신차리라는 하늘의 경고였을까.


어린이집 등원길에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가지 않고 지상에 차를 세워둔다. 빠른 짐을 맡기듯이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아기를 넘기고 초보운전인 나는 정차된 차로 헐레벌떡 뛰어가기 일쑤였다. 면접을 보기로 한 기분 좋은 날, 주차 연습에 자신감이 붙을 때쯤이라 나는 내려가지 않아도 되는 지하주차장에 갔다.


어제 넣었던 빈자리에 그날도 넣었는데 주차가 잘 되지 않았다. 왜 잘 되지 않는지 운전대를 잡으면 까막눈이 된다. 잘 되지 않아서 다른 자리를 기웃거렸다. 이번엔 주차한 공간에서 빠져나오며 앞뒤로 진퇴양난에 빠졌다. 식은땀이 났다. 아기는 뒷자리에 아무것도 모른 채 앉아있고 나는 운전대를 잡고 낑낑거렸다. 다행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고 다른 자리를 알아봤다.


세 번째만에 주차는 성공했을까? 성공했다. 단 범퍼를 박았다. 아기와 나는 약간의 충격에 휘청거렸다. 사고친 자리를 내려서 확인했어야 하는데 내 영혼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하원할 때쯤 범퍼로 박은 벽모서리는 플라스틱 파이프관이 내려오고, 철제로 된 박스가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20년이 넘은 차라 후방카메라가 없다. 나는 후방카메라가 없어서 벽에 차를 박은 걸까.


주차가 되지 않았던 순간부터 내 마음은 요동쳤다. 주차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면접을 잘 봐서 꼭 그 회사에 들어가야겠다는 마음과 연결됐다. 딱딱한 철제박스에 내려 찍힌 자동차 범퍼를 보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아기를 맡기고 황급히 빠져나왔다. 빠져나와서 우리집 주차장엔 제대로 주차가 될까 마음이 쿵쾅거렸다. 여러 생각들이 스쳐갔다.


‘뺑소니하고 도망치는 마음이 이런 거구나. 그 사람이 그날 여수에서 덤프트럭과 모닝의 접촉사고가 일어났을 때 허둥지둥되며 사고현장을 수습했던 게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무심코 지나쳤던 사고의 이해관계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결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 생각들이 잔상이 되었다. 범퍼는 자동차공업소에서 고치면 그만이었다.


깨끗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온 차를 마주하며 나는 겁이 났다. 범퍼를 박곤 일주일 넘게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운전을 하다가 못하니 힘에 부쳤다. 몸이 고됐다.


면접을 봤던 회사에서는 연락이 오질 않았다. 원서를 냈던 회사에 떨어지는 게 세상으로부터 완벽히 거부당하는 기분을 만끽했다는 문장을 읽었다. 나는 서류광탈하면서 세상으로부터 완벽히 거부당하는 기분을 2년 동안 만끽하지 못했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날들이 이어지면 구두쇠적인 면모가 바깥으로 돌출된다. 돌출된 내 모습에 가장 상처받는 건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한없이 추락하는 어떤 공간에서 안전하게 받아줄 지지대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범퍼를 갈고 4일 정도 고향에 다녀왔다. 잠깐 공간을 바꾸니 마음의 환기가 됐다. 다시 운전을 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겠다.


마음의 변화는 한 끗 차이로 일어난다. 엔진오일을 갈아달라는 부탁에 나는 잡기 두려운 핸들을 잡았다. 벽을 박은 날 이후로, 마음 졸이며 다녔던 공간을 제 발로 찾아갔다. 나는 철제함을 박았지 다른 차를 박고 그 자리를 떠난 게 아니었다.


운전을 할수록 차로 사고 치는 일의 범위가 커져서 내 안의 두려움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과거에 묶인 날들은 아름답지 않았다. 내 운전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되지 않는다. 바라는 점은 피해주지 않고 안전운전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초보의 자세를 버리지 않겠다는 지키지 못할 다짐을 읊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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