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애니 Jan 02. 2020

인생의 겨울, 닥치고 버티기

같이 읽은 책 -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몇 개의 이야기 6 -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한강)


과거의 괴로움은 물을 마시는 것처럼 쉽게 퇴색한다. 벗어나고 싶어서 노래를 불렀던 퇴사는 돈이 줄어드니 본전 생각이 났다. 퇴사 이후 재취업을 희망했지만 지원하는 곳마다 서류에서 탈락했다. 될 때까지 도전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힘들어서 나아가질 못하고 주저앉았다. 들어가야만 하는 회사에 맞춰 자기소개서를 고치는  버거웠다. 어쩌면 나는 마음부터 빈약했다. 주저앉았던 곳은 일손이 필요했던 남편의 2.5평 카페였다.


서류에서 떨어질 때마다 내가 한 회사에서 보낸 9년이란 시간이 물거품처럼 느껴졌다. 9년 동안 내가 먹고살았던 경력이 다시 재취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같은 시기에 퇴사한 전 직장동료는 여러 회사의 옷을 갈아입으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같은 회사를 다녔지만 우리는 다른 길을 걷는 중이다. 한 친구는 하는 일이 달라졌다. 그들과 나를 비교했고, 당연한 수순인 듯 나는 더 작아졌다.

끝날 것 같은 인생혹한은 해가 바뀌고 나는 나이를 먹었지만 진행형이다. 현재에 충실하자 싶어 마음을 고쳐먹지만 금세 주저앉을 만큼 힘이 없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줄어들었다. 보는 사람만 만났다. 손에 꼽을 친구들과 가족 위주로 인간관계가 정리됐다. 인생에 한 번쯤은 이런 시기가 있지 않을까. 가혹한 이 시기는 다른 사람은 어떻게 넘겼던 걸까. 내 삶이 이토록 추웠던 때가 있었나 물을 정도로 헐벗은 시기다.


재취업의 의지가 없는 건지 머리로는 해야 함을 알면서 다른 일을 뒤적거린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집안일을 하곤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으면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다가온다. 아기를 데리고 오면 남편이 퇴근을 하고 나는 저녁을 차리고 아기 목욕을 시키고 놀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도 약속이 없으면 비슷한 패턴이다. 틈새시간을 잘 활용하면 재취업을 하고도 남았을까.  


퇴사했던 순간을 후회할 뻔했다.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선택은 없고 최선의 선택"만 있다는 말에 힘이 불끈 났다. 퇴사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최고의 선택이 하고 싶어 망설인 시간이 꽤 길었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건 돈이 들기 시작한다는 말과 동음이의어 같아서 아무것이나 배우는 게 망설여진다. 카페 일과 관련해 티소믈리에 공부가 궁금하지만 차를 많이 마셔보는 쪽이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차라리 티 관련 회사에 입사해서 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적은 나이도 아니고 인생이 길지 않으니 시간을 볼모 잡혀 낭비하고 싶지 않다.


가혹한 시간을 견디는 방법이 있을까. 묵묵한 인내와 주어진 현재를 사는 것뿐이지 않을까. 아직 가혹함이 채 가시지 않아서, 텍스트로도 표현할 방법이 부족하다. 부족한 사고는 빈약한 표현으로 한숨처럼 짧게만 표현된다. 사람마다 인생이 꽃피는 시기는 저마다 다르다고 들었다. 길게만 느껴지는 내 인생의 가혹함에도 꽃피는 날이 올까. 안피는 꽃, 같이 피워요.


대학동기와 2020년 프로젝트로 독서모임을 시작했어요.

그날의 스케치를 영상으로 구겨넣었고요. 

친구랑 같은 책을 읽고 나누는 대화는 유익했어요. 

뭐랄까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이 조금 달라도 

공통사가 있더라고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는 묘한 치유력이 있어요.

덕분에 안쓰려던 글도 쓰고 2020년 잘 읽고 잘 배출해볼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뼈는 나쁜 방향으로 천천히 굳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