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와 통증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
뼈는 나쁜 방향으로 천천히 굳는다. 나는 어릴 때 앉은키가 커 보이는 게 싫어서 등을 잔뜩 움츠리고 다녔다. 허리 펴라 허리 굽는다 근심 어린 가족들의 말은 계속 무시했다. 덕분에 나의 어깨는 기왓장처럼 동그랗게 예쁘게 말려있다. 어릴 때야 아프지 않았는데 이제 가끔 굽은 어깨가 쪼그라드는 것처럼 아프다. 길 가다 유리에 비친 굽은 목과 어깨를 보는 건 너무 부끄러운 일이고, 누군가 너 왜 이렇게 굽었니 지적이라도 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다. 이제 와서 곧게 펴려고 해 보지만 30년 넘게 천천히 말려온 뼈가 말을 들을 리 없다.
나날이 쌀쌀해져 가는 요즘, 출산을 지나온 나의 뼈는 더 바싹바싹 굳어가고 있다. 오른쪽 팔과 골반, 가끔은 발가락까지도 찌릿하게 아프다. 생활 못 할 정도까지는 아닌 데다 병원을 가자니 완치도 없고 그냥 돈만 버릴 거 같아 치료도 안 받고 있다. 운동을 해서 근력을 길러야지, 하는 생각이 근거 없는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은 오리무중. 어디 피가 나거나 열이 나는 게 아니니 뼈의 아픔은 조용히 자꾸 다음으로 미뤄진다. 뼈가 나쁜 방향으로 천천히 굳어진 것처럼, 뼈의 통증도 천천히 익숙해진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최초의 모습부터 허리가 안 좋았다. 조금 걸으면 나무를 잡고 쉬어야 하고, 먼 길 가기 전에 반듯이 누워 허리부터 펴야 한다. 할머니는 막내 이모가 뱃속에 있을 때 남편을 잃었고, 딸 셋을 혼자 힘으로 대학 보내고 결혼도 시켰다. 사위의 동생에게 보증을 서주는 바람에 한 번 써 본 적 없는 빚을 지고 한평생 지켜온 집까지 넘어갈 뻔했다. 할머니는 화병과 불신을 얻었다.
우리 아빠도 늘 허리가 안 좋았다. 몇 년 전부터는 팔과 손가락이 저려오고 젓가락질도 힘드시게 됐다. 결국 2년 전 아빠는 목디스크 수술을 하셨다. 늘 안 좋던 허리보다 목이 더 심각하다고 했다. 아빠는 원가족에 대한 애정이 끔찍하다. 망나니 형 대신 다정한 차남, 공부 잘하고 회사도 잘 들어간 믿음직한 오빠이자 형이었다. 직장과 신용을 잃었어도 형제 사랑은 여전해서 장모님께 동생 보증도 부탁했다. 동생이 빚만 내고 잠적해 버렸을 때도 동생을 두둔했다. 그 이후로 장모님과 아내 사이에서 그는 천하의 몹쓸 놈이 됐다.
우리 엄마는 할머니나 아빠처럼 유독 허리가 아프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나이 들며 나타나는 통증까지는 어쩔 수가 없다. 손가락과 손목의 뼈가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하고, 밤마다 몸이 오그라드는 것처럼 아파서 스트레칭을 열심히 한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너무 사랑한다.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까지 어떻게 될까 봐 엄마는 그게 늘 두려웠다. 혼자된 외할머니가 걱정되고 가엾어서, 결혼해서도 가까이 함께 살고 싶었다. 빚이 생긴 후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때때로 얼음 칼 같은 말들을 꽂는다.
관절염 같은 가족 사연 하나 없는 사람 없을 거다. 뼈가 아플 때마다 계속 아이고 소리를 내면서 익숙해져 가는 것처럼, 각자 가족이 주는 통증에 견뎌간다. 가족 이야기를 글로 썼다가 고등학생 백일장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후로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었는데 뼈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가족이 이어진다. 내가 물려받은 약한 뼈, 겨울나무 같이 앙상하고 허연 뼈. 아파 보니 안다고, 할머니가 이리 아팠겠구나 아빠도 엄마도 이런 통증이었겠구나 싶다. 모든 걸 이해해보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뭐 하나 내 일이 되어보지 않으면 약간의 이해도 거의 힘든 것이다. 애써 이해하려고 하는 건 가식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팽팽한 줄로 묶어 놓은 것처럼 아프고 뻣뻣하다. 그래도 살짝 접었다 폈다 하다 보면 이내 느슨해지고 괜찮아진다. 통증은 그렇게 아파하다 견뎌내다 계속 함께 가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좀 가혹하다 싶기도 하다.
... 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들을 꼿꼿이 펴는 것처럼 보여.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중 '몇 개의 이야기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