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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un 11. 2024

만질 수 있는 생각

그림책 작가 이수지의 에세이

순천 그림책도서관에서 열리는 이수지의 전시회에 갔었다. 작가의 그림을 양껏 흡수하고 그림책 좋아하는 친구와 이번달에는 번외편처럼 <만질 수 있는 생각>을 읽었다.


책 제목에 끌려서 읽고 싶었다. 내용 중에서 왜 책 제목이 그렇게 됐는지 자세히 나와있다. 책을 좋아하는 그 물성의 묘사도 좋았다.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의 길도 쉬이 되는 건 아니란 점도 다시 한번 느꼈다. 이수지 작가를 몰랐던 엄마독자로서, 이 책을 읽고 아이에게 꼭 읽히고 싶은 그림책이 되었다.


인상 깊었던 구절


"집에 꼭 책이 많아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아이는 정말 자기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강렬하게 경험하게 되면 책을 읽는다는 것을 무척 즐거운 것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당연히 책을 좋아하게 되는 거죠.(중략) 자, 이제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아이와 손을 잡고 동네 책방에 가세요. (중략)아이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책을 가져와도 웬만하면 그냥 사 주세요."

= 아이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책을 가져와도 웬만하면 사달라는 말에 찔렸다. 나는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고 너무 많이 거절했고 거부했다.


"그러니까 진짜 화가는 커다란 어떤 세계를 그냥 '좋아하게' 해준 거죠. 그림을 좋아하게 되면 누가 안 시켜도 계속 그립니다. 책을 좋아하게 되면 누가 안 시켜도 책을 계속 보게 되는 것이고요."(276쪽)

= 좋아하게 되면 알아서 한다. 이렇게 문장을 단정적으로 정의내리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저 문장이 맞음을 안다. 본능이 한다. 좋고 싫고 그 호불호 때문에 삶이 힘들었고 지금도 힘겹다. 그래도 좋아하게 되는 자연스러움에 작가가 무지 부러웠다. 좋아하면 알아서 하는데 우린 삶에서 그걸 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듯하다.


한 권 낼 때마다 매번 내 인생관과 창작관은 여러 번 의심되고 뒤집혀 너덜너덜해진다. 그러므로 누구의 무슨 책이든, 책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부럽다. 무슨 책인지 알아도 부럽도 몰라도 부럽다. 그렇게 징글징글한 시간을 다 보내고 그 끝에 책이 나왔다라는 사실이 부러운 것이다.(263쪽)

= 이수지의 책을 읽으면서 나도 책을 내고 싶은 욕망의 씨앗을 봤다. 어쩌면 예전부터 봐달라고 아우성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 외면했을까. 자신이 없고 쓰고 싶은 말이 내겐 없다고 쉬이 판단하고 넘겼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예전에 엉망진창인 초고를 넘기고 작가로 활동하는 이의 모습이 그렇게 배가 아팠던 기억도 소환됐다.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을까.


흥, 유희, 즐거움, 신나는 마음, 놀이 정신, 나를 가장 높은 곳까지 밀어 올리는 어떤 것, 달뜨는 마음. 그 어떤 표현도 그다지 성에 차지 않는데 차라리 어린이다움이라 말할 수 있을 법한 것, 꼭대기의 그것이다. (중략) 즐겁다라는 기분이 없으면 작업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독자의 자리로 돌아가도 마찬가지다. 즐겁다라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 작업을 끌리지 않는다. 내가 속절없이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들은 책 내용의 즐거움과 관계없이, 작업하는 작가의 즐거움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던 것 같다. (중략) 여기서 뭘 이뤄보겠다는 욕심이나 작가적 자의식, 현란한 기교 따위는 그 신나는 마음에 밀려나 흔적도 보이지 않는 책, 그런 그림책이 내 지갑을 열게 하고 기어이 내 책장 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 같다.

= 즐겁다라는 기분을 감각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렇게 나도 살고 싶어서 더 끌렸다. 내 지갑을 열게 하는 건 무엇인가 고민해보는 지점도 있었다. 책을 잘 사지 않는 독자인 나는 여기에서도 반성했다. 도서관에서 반납이라는 시스템을 빌려 책 읽는 습관 탓에 더 그런 것 같다.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그게 흘러가니 아쉬운 마음도 든다. 책을 버릴 때 아팠던 기억이 있어서 그렇다. 내 공간이 없으면 책도 결국 쓰레기가 되었던 순간.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랬다. 즐거운 기분이 들기 전까지 나도 무언가 하지 않기를. 기다려보기를 괜히 더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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