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찾은 날 7
인간은 머릿속을 잠시도 비워두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념에 해당하는 '생각나기'로 내가 내 뇌의 주인인 상태가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상념이 내 머릿속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다. 이보다는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자신이 뇌의 주인이 되어 문제 해결을 위한 체계적인 사고를 하는 '생각하기'를 해야 내 두뇌의 잠재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고 지고의 즐거움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몰입 확장판, 황농문, 374쪽)
뜨거웠던 한여름을 보내고 갑자기 찾아온 가을이 찾아왔다. 내게도 허무라는 감정이 삶을 묶어버렸다. 모든 게 다 헛되고 의미가 없고 명상을 하면 뭐하나, 도덕경 노자, 장자 고전을 읽어서 뭐하나 싶은 생각에 시달렸다.
최진석 교수의 책이나 강연은 개인적으로 임팩트가 컸다.
-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 나는 어떻게 살다가고 싶은가
-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최진석 교수의 도덕경을 시작으로 김호의 <What do you want>, 황농문의 <몰입 2>, <몰입 확장판>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가 지금 해야할 강렬한 무언가에 휩싸였다. 화르르 타오르는 양은냄비처럼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에 무방비로 노출됐고, 그 덕에 타버렸다.
화르륵 타오른 뒤에 남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허무'였다.
혼자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려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들의 삶도 나 못지 않게 바쁘고 일정이 많은데 징징거릴 수 없었다. 그들의 시간도둑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랬더니 아팠다.
김호의 책 질문 중에 어색하고 창피할까봐 시도하지 않고 미루고 있는 일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내게는 책쓰기였다. 그래서였을까. 왜 세상에 이런 책은 없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두 권의 책을 만났고, 4명의 저자를 마주하는 자리에 갔다왔다. 그렇게 무리한 일정도 아니었다.
다녀오곤 나는 그날 아팠다. 미열이 쉬이 떨어지 않았다. 타이레놀을 먹고 진정됐다. 이상한 날이었다. 질투였을까. 부러움에 못부림쳤던 걸까. 여전히 내가 책쓰기를 욕망한다는 이야기에 동의가 확 되진 않는다. 쓴다면 에세이일텐데 그걸로 어떻게 다른 사람이 돈 주고 만드는 무언가를 쓸까에 대한 고민이 있다.
잠시도 비워두지 않았던 머릿속은 허무로 가득차서, 누워서 핸드폰을 자주 봤다. 아이와 단둘이 있는 날이면 나는 더 깊이 침대와 한몸이 되어 누워있었다. 아이를 위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제는 게으른 몸을 움직여 간만에 텃밭을 다녀왔다. 가을농사는 게을러도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역시나 그랬다. 잡초가 그닥 많지 않아서 내가 할 일이라곤 비바람에 쓰러진 고춧대와 가지치기였다.
몸을 움직이고 텃밭친구를 만나서 놀았다. 아이 하원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아이와 만나서 에너지가 없어서 계속 누워있었다. 누워있다가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5문장쓰기와 원장선생님 월급을 오늘 새벽에나 넣었다.
황농문 저자의 <몰입>을 읽으면 만사형통이다. 몰입만 잘해도 인생의 성공은 따놓은 단상처럼 느껴졌다. 좀 과하다 싶었다. 저자가 분명 몰입을 경험했고 성과는 높이 인정한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같은 몰입을 강조하기에 애매한 지점이 있다. 책은 저자의 생각을 텍스트로 접하는 길이다. 황농문 저자는 인생에서 몰입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책을 읽고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내 욕망을 묻는 질문을 답이 나올 때까지 묻고 또 물었다. 틈만 나면 나에게 질문했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심심하지만 이랬다.
- (내) 몸과 마음이 평안하기를
- 가슴이 시키는 일을 따르기를
- 에너지를 주는 일하기
꽤 무거운 질문에 답이 나오니 나는 방황했다. 물론 나온 답이 붙박이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매일 김호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밤낮없이 물으며 내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아이 등하원은 내 삶에서 빼놓기 어려운 일이다. 아이 하원을 착실히 하러가는 나를 보며 가끔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사라진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모르겠다. 바꿀 수 없는 일에 힘빼지 않기 위해 주어진 삶에서 어떻게 최선을 다할 것인지 질문을 수정했다.
아침마다 비몽사몽 간에 명상을 했다. 그러다 자꾸 늦게 일어나니까 오전 일을 다 보곤 비는 시간에 눈을 감았다. 여러 생각의 소리를 들었다.
- 작년 7월 사고냈던 차 보험처리
작년 7월에 냈던 사고처리가 1년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진위확인하는 보험회사의 업무방식에 당황했다. 내가 사고냈던 차주는 볼보로 차까지 바꿨던데 이게 무슨 일인가. 차 보험이 시아버지로 되어있어서 더욱 난감한 상황이다. 물론 일정 부분의 보험료가 오를 것이고, 당분간 텃밭 근처에 사고낸 그 차는 안가져가야겠다. 겨우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그 날의 기억을 보험회사가 끄집어내니 끄달린다.
- 요리하는 일, 차(tea) 회사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끈덕지게 따라가면서 알았다. 요리 할까. 요리하는 일을 알아보고 있다. 알아만 본다. 사실 어렸을 때 재미있고 즐거웠던 기억을 근거로 따라가도 될까. 물론 적당한 자리는 없다. 복불복이야. 일단 해보고 괜찮으면 요리나 할까라는 막연한 마음이 일었다. 텃밭채소의 맛있는 걸 먹고나니 꼭 나중에 마당 있는 이층집에서 식당이랑 차 파는 가게 해보고 싶다. 마치 모든 직장인이 퇴사하면 카페 차릴 거야 하는 마음과 비슷한 근거와 맥락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상상하고 있다. 어디로 갈 것인가.
- 루이스 가게 앞에서 팝업처럼 채소가게 열기
부암동 텃밭 일이 점점 재미가 없다.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마르쉐에 납품할까 텃밭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접었다. 마르쉐에 납품하는 텃밭은 부암동텃밭 전체를 내가 본업으로 뛰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 친구가 큔의 채소가게처럼 루이스가게 앞에 팝업형식으로 하면 어떠냐고,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요즘 채소값이 미쳤다. 그래서 더 밭에 많이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골 위주의 테이크아웃매장에서 채소가게와 수공예라 그림이 잘 그려지진 않는다. 약간 지지부진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