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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디 Nov 26. 2024

07. 어서 와! 요병은 처음이지?

요양병원의 세계

"여보, 나 1차 항암 끝나고 퇴원하면 바로 요양병원으로 가고 싶어요. 그 이유는..."


난 평소 독단적으로 혼자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신랑에게 내 결정을 통보했다.

암진단을 받으면 내 삶만 변하는 게 아니다. 가장 크게는 내 배우자의 삶, 그리고 친정 부모님의 삶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만약 자녀가 있다면 엄마의 암투병으로 인해 자녀가 치러야 하는 희생도 생긴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고 최대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암에 걸렸다는 이유로 가족들의 삶까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는 불가능했지만, 암 진단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당시 내 마음이 그랬다.


암진단을 받고 1차 항암 날짜까지 나와 가족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6일. 병원과 집의 거리가 멀고 다니기가 불편했기 때문에 나도 가족들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항암의 실체를 아직 몰랐기에 1차 항암 후 나에게 나타나게 될 부작용 관리를 혼자 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단 몇 달 만이라도 요양병원에서 생활해보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말한 거다.


요양병원의 입원비가 만만치는 않다. 어디에 위치해 있고 몇 인실이고 음식이 어떻게 나오고 시설이 어떠하냐에 따라 가격차이도(암병동 요양병원 기준 한 달 400만 원~700만 원) 크다. 실비보험이 있다면 몇 세대 실손보험이냐에 따라 자기 부담금의 차이가 있겠지만 난 4세대 실손이라서 비급여 항목은 30%의 자기 부담금이 발생했고 *한 달에 130만 원가량을 부담해야 했다. (*용인에 있는 4인실 요병)


요양병원은 왜 이렇게 비싼 걸까? 병원을 알아보며 느낀 건 "실손보험"처리가 된다는 명목으로 환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보험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까지 책정해서 그런 것 같다. 모든 요병이 비슷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을 느꼈고, 결국 요병은 돈이 엄청 많은 사람들과 실손보험이 있는 사람들... 이렇게 두 부류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손보험이 있다고 해도 병원비로만 매달 130만 원가량을 지출한다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부담스러웠다.  


요양병원에서의 한 달 반...

참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첫째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얻는 공감과 다양한 정보들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 온전히 100% 공감할 수는 없기에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주는 이해와 공감의 깊이는 가족이 줄 수 없는 부분이다. 집에서는 나만 아픈 사람이지만, 여기서는 나도 아픈 사람이다. 나와 같은 민머리에 두건을 쓴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고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생활하다 보면 나보다 더 상황이 안 좋은 사람들... 나보다 더 어린 사람들도 보게 된다. 내 옆 침실로 25살의 어린 학생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이런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보며 내 상황에 대해 여전히 감사하는 마음도 생기게 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도 생기게 된다.


둘째로, 병원에서 얻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이다. 처음 항암을 하면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나에게는 어떤 증상이 나올지...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두렵다. 하지만 요병에서는 간호사가 24시간 상주하고 있고 언제든 내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다. 요병에서 지내면서 부작용 관리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집에서도 혼자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때까지만 임시로 병원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셋째로, 병원에 있으면 온전히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비단 암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회복이 필요한 다른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집으로 오면 아무래도 일을 하게 되고 신경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요병에 있는 동안 정말 말 그대로 푹 쉬면서 잘 먹고, 운동하고, 부작용관리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요병에서의 생활이 100%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1인실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어떤 사람과 함께 생활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스트레스의 요인이 될 수도 있고, 뷔페식의 식단이 아닌 이상 요병에서의 식사가 물리고 먹기 싫을 수도 있으며 생활이 단조롭고 지루하고 답답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 달 반이 나에게는 딱 적절한 기간이었고 항암 3차까지 마치고 4일 뒤 퇴원을 했다. 

내가 만족할만한 요양병원을 적극적으로 알아봐 준 신랑의 노력과 수고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신랑은 본병원과의 거리, 교통편, 주변 자연환경, 요양병원의 시설과 식단표를 다각도로 고려해서 몇 군데를 직접 답사해 보고 추천해 주었다. 요양병원의 환경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아마 그곳에서의 한 달 반은 스트레스가 되었을 거다.


"안녕하세요! 어제 1차 항암하고 오늘 퇴원해서 바로 들어왔어요.... 저는 유방암이에요"

4인실에는 두 분이 계셨고 내가 세 번째였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궁금한 게 많다. 침대에는 이미 내 나이와 이름이 적혀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에 대해 이름과 나이라는 정보는 미리 주어진다. 그러면 그때부터 추측하기 시작한다. 가장 궁금한 건 무슨 암일까? 하는 것이다. 난 암병동으로 갔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암환우들이었다. 암투병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기에 서로에 대한 동질감과 동정심이 있었고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끼리는 어느 정도의 경계심도 존재했다. 


"먼저 말해주니 우리도 말할게요. 난 폐암초기라 수술하고 왔구요, 저기 아주머니도 폐암인데 말기라 수술은 못하고 항암치료하고 있어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예쁘장하게 생기신 내 맞은편 침대의 아주머니께서 자기소개와 다른 분 소개까지 다 해주신다. 나를 어찌나 가엾어하시던지...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요양병원에 온 것이 안쓰러웠나 보다.

그곳에서 난 "베이비"였다. 옆방의 미국에서 온 아주머니는 나를 언제나 베이비라고 부르셨고, 난 40대 초반의 나이에 다시 어려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 별명이 어색하면서도 나쁘지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화장실과 냉장고, 생리현상까지 공유해야 하는 것이 불편함을 초래하기는 했지만, 난 1인실보다 다인실이 좋았다. 부작용으로 힘들어할 때 옆에서 걱정해 주고 챙겨주고 따뜻한 말과 응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버틸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울렁증이 심할 땐 항구토제를 먹고 식욕촉진제를 먹어도 도저히 밥이 들어가지 않는다. 한 시간째 식판만 바라보며 젓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으면 그 모습이 안쓰러워 배를 깎아 주시고, 누룽지를 끓여 주시며 조금이라도 먹을 힘을 보태주신다. 함께 식사를 하며 우스갯소리도 하고 반찬 투정도하고 간식도 나누어 먹었던 기억이 하나의 추억으로 남겨졌다. 


항암을 하는 기간에는 무조건 잘 먹고 살이 빠지면 안 된다고 하시며 도저히 아무것도 먹히지 않고 라면만 먹힐 땐 라면이라도 먹으라고 하셨던 교수님의 말이 떠올라 라면을 먹은 적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몇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암 환자들은 암 진단을 받는 순간 암환자가 먹어야 할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강박을 갖게 된다. 특히 가족들로부터의 음식 잔소리가 시작되는데... 이렇게 음식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이전화-06. 항암 중 가장 필요한 것/ 두 가지에 대한 생각 

다음화-08. 항암과 음식 스트레스/ 음식과의 전쟁이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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