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항암을 하기 위해 입원수속을 하고 8층 병실로 들어갔는데 내 맞은편 침대의 아주머니가 낯설지 않다. 누구지? 어디서 봤지?... 내 기억 창고를 열심히 뒤진 지 몇 초도 안되어 바로 생각이 났다.
5번의 조직검사 중 두 번째 조직검사(림프절 총 생검)와 PET CT 촬영을 위해 입원했던 날, 같은 병실 옆 침대에 계셨던 아주머니다. 그땐 암 진단을 받기 전이라 아주머니께서 아무 일 없으면 좋겠다고... 별일 아닐 거라며 위로해 주셨는데, 난 항암을 하기 위해 아주머니는 방사선 치료를 위해 같은 날 입원을 했고 이렇게 같은 병실에서 다시 만났다.
한 지방의 시청 공무원으로 일하시다 퇴직하신 아주머니는 밝고 적극적인 성격이셨다.
병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과일도 나누어 먹고, 침대에만 누워 계시기보다 돌아다니시며 휴게실에서 만나는 다른 암환우들과 대화를 하시고 얻은 정보도 나누어 주신다. 덕분에 나도 유방암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고 도움이 되는 꿀팁들도 얻을 수 있었다. 간호간병통합 입원실이라 보호자가 들어올 수 없는 데다가 첫 항암이라 긴장되고 낯선 병실에서, 이 아주머니의 존재는 나에게 담요와도 같이 따뜻했다.
모든 암환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주머니의 경우 자신이 암투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원가족 이외의 다른 모든 사람에게 알리지 않으셨다. 지금은 퇴직하셨지만 항암을 하실 당시엔 가발을 쓰고 출근을 하셨고,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이 만나자고 연락이 오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만남을 회피하시거나 어쩔 수 없을 경우엔 완벽하게 자신이 암환자라는 것을 숨기고 만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병실에서 지인들의 전화를 받으시며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찾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왜 그러셨을까? 숨기는 것이 더 힘들지 않을까?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자신이 암에 걸리고 나서 부모님이 충격을 받을까 봐 부모님께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 반대로 자식에게 알리지 않는 사람, 혹은 가족들 이외에 다른 지인들에게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양병원에서 만난 유방암 언니도 친정 엄마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자신의 소식을 들으면 충격받으시고 걱정을 하실까 봐 엄마에게는 비밀로하고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사람은 각자의 상황과 입장이 다르기에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도움이 된 것,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감정적 지원"이었기에 난 반대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망설이지 마시고 문자, 전화 주세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2차 항암이 끝난 8월 21일... 카톡의 프로필 문구를 바꾸고 카톡 배경에 항암시작일로부터 디데이를 표시했다. 이런 나의 행동은 마치 "나 지금 암투병 하느라 힘드니까 나에게 관심 좀 가져주세요!"라고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 보였을 거다. 엄마도 내 카톡의 프사를 보고 놀라셨다고 한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2가지다. 첫 번째로 항암디데이를 표시한 이유는 난 가족들이 항암 중인 내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내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프사를 보고 내 상태가 어느 정도 트레킹이 되길 원했다. 가족 단톡방에 항암 차수에 따른 신체적 변화와 부작용을 공지했고, 그 정보를 참고하여 나를 대해주길 바랐다. 나의 이런 심리 상태는 아마도 가족들이 쉽게 면회를 오지 못하는 먼 거리의 요양병원에 혼자 입원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리적인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 친구들과 단절되고 고립될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했다. (내가 왜 항암 시작초기에 요양병원에 들어가길 원했고, 가족들과 친구들의 접근이 어려운 곳에 요양병원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할 것이다) 두 번째로 내가 카톡 프로필 문구를 바꾼 이유는 사람들이 내 눈치를 보느라 연락하는 것을 주저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8월 21일 한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진작 전화를 하고 싶었는데 지금 힘들까 봐 조심스러워서 못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래서 눈치만 보고 있어요" 이 말을 듣고 내가 무언가 행동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암투병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다.
항암 부작용을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하고, 그 고통과 신체적 불편함과 감정적 변화도 내 몫이다. 다른 사람이 내가 져야 할 짐을 대신 져 줄수도, 온전히 알아줄 수도 없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평소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성격에다가 파워 내향형 인간에 고독함을 즐기며 혼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 나는 나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난 쉽게 고립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를 고립시키지 않기 위한 장치를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카톡 암밍아웃 프로필(8월과 11월 19일 현재)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사람은 이기적인 열망을 추구하며 실용적인 지혜를 모두 배척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인 잠언에 나오는 말이다. 나의 단점을 잘 알기에 이 문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항암을 시작하며 이 말을 떠올렸다. 정말 그랬다. 병원에서 만난 아주머니도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기에 실용적인 지혜인 항암 꿀팁들과 암투병과 관련된 정보들을 얻지 않으셨나?
아무리 독립적이고 혼자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난 이걸 인정했다. 지금 나에게는 감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과 응원을 받기로 결심했다.
공개적 카톡 암밍아웃의 유익은 실로 엄청났다. 한때 친하게 지냈지만... 가끔 생각도 나고 소식이 궁금했지만 연락을 하지 못하고 지냈던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그들이 여전히 나를 좋게 기억해주고 있고 내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해 주고 울어주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되고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감정적 자산이 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고 있는데 내가 약해지면 안 되지!! 사람들의 연락을 받으면 받을수록 나는 더 씩씩해졌고 내 마음이 감사로 가득 찼다.
"내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의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나의 초점은 "항암 투병"에서 "환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넘치게 받고도 돌려주지 않으면 먹튀가 아닌가? 더 이상 받기가 미안할 정도로 받다 보니 저절로 나도 다른 사람에게 내가 받은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되돌려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매 순간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을 고민하고 생각한다.
찢어진 상처 부위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상처가 더 아프게 느껴지지 않은가? 시계를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1분도 더디게 가지 않던가? 항암제가 들어가 부작용을 겪고 있지만 내가 그것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지 않는다면, 언제 끝나나 시간이 가길 바라고만 있지 않는다면 힘든 항암을 잘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항암 중 가장 필요한 것 두 가지...
그것이 나에게는 "감정적 지원"이었고, 감정적 지원은 내 마음을 감사로 가득 채웠으며 감사하는 마음이 삶의 "초점"을 바꾸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