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나는 누구인가
아이가 태어난 후, 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내가 마치 나의 아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이가 울면 내가 우는 것 같고 아이가 힘들어하면 내가 힘든 것 같았다. 타인의 감정과 행동에 이렇게까지 동일하게 느껴본 적이 있던가.
작은 아이가 우는데 내 마음이 크게 동요되고,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모유를 먹는데 내가 다 애가 쓰이고, 작은 숨을 새근새근 쉬며 잠을 자는 모습에 내가 다 녹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타인을 보는 시선이 맞을까. 또 다른 나 자신을 보는 기분은 아닐까.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나는 나의 아이와 동일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나 동일한 마음을 가지게 되다니. 동일한 마음을 넘어서 내가 바로 나의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순간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조리원에 가져간 실내화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구분하기 위해 이름을 적는다는 게 내 이름을 적은 게 아니라 아이의 이름을 적는다던지 말이다.
순간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아무 주저함 없이, 아무 고민도 없이 내 실내화에 아이의 이름을 적었다. 네임펜으로 선명하게 아이의 이름을 적고는 스스로 깜짝 놀랐다. 이건 내 이름이 아닌데. 이건 나의 아이 이름인데. 내가 왜 이 이름을 실내화에 적었을까?
병원과 조리원에 있는 내내 산모님, 엄마 등의 호칭으로 불리다 보니 그새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일까. 그저 누군가의 엄마로, 그걸 넘어서 내가 바로 나의 아이인 것처럼 그렇게 느끼고 있었던 걸까. 이름 하나에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OO이고 OO이가 나야."(OO: 아이이름)
조리원에서 내가 남편에게 한 말이다.
아이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고, 아이의 즐거움이 곧 나의 즐거움이 되는 것. 내가 바로 나의 아이가 되는 것. 신기하고도 조금은 무서운 감정이었다. 세상 대부분의 부모가 그러하듯이 자신과 자녀를 칼 같이 분리해서 바라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녀의 고통과 어려움이 아주 입체적으로 3D를 넘어서 4D로, 어쩌면 그들의 실제 고통보다 더욱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부모님의 관심이 감사하면서도 가끔은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자녀가 생기니 이제 내가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게 부모의 마음인 것일까. 하지만, 자녀와 내가 마냥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부모의 마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와 나는 다른 존재다. 당장은 24시간 나의 손과 발이 전적으로 필요한 존재이지만 결국 아이는 나의 도움 없이 서고, 걷고, 앞으로 나아가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독립된 사람이다. 서포트는 해주되 아이를 나와 똑같이 여기며 서로를 옭아매는 감정은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아이의 작은 눈짓에, 몸짓에, 울음에 내 마음이 동요되는 건 당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아이도 자라고, 엄마인 나의 마음도 튼튼하게 자라날 시간이. 점차 자녀를 마음속에서 건강하게 독립시켜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