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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토 Aug 26. 2024

오늘은 양손을 먹을지도 몰라

[90일] 손가락 중독자와 작은 폭포수

중력을 거스르는 듯 한동안 하늘을 향해 번쩍 들고 있던 두 주먹은 이제 블랙홀에 빠져들기라도 하듯 점점 입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엄지, 그리고 검지손가락으로 시작하더니 이제는 손가락 세 개쯤은 쉽게 넣는다. 뭣이 그리도 맛있는지 이리저리 굴려가며 열심히도 먹는다. 이게 바로 그렇게 맛있다는 주먹고기 인가보다.


날이 갈수록 입을 크게 벌리고 손을 마구 욱여넣더니 최대 손가락 네 개까지 넣는 순간을 포착해 사진으로 남겼다. 입안 가득 손가락을 밀어 넣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핥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웃음이 나온다. 아이는 내가 왜 웃는지 알까. 둘 다 기분 좋은 순간이다.


오른손으로 시작한 주먹고기는 점차 왼손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이 손, 저 손 야무지게도 먹어댄다. 누가 손에 꿀이라도 발라준 걸까. 어른들은 모르는 맛이라도 있는 걸까. 어느샌가 손가락에 중독된 사람처럼 시도 때도 없이 열심히 먹는다. 늘 꽉 쥐고 있던 주먹이 점차 스르륵 풀리기 시작한다.


손가락 먹기는 목욕시간에도 예외가 아니다. 아이용 바디워시로 열심히 닦아준 손은 씻을 새도 없이 입으로 가져가진다. 아직 손이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그 조그만 입을 크게 벌리고는 고개가 마중을 나온다. 아이의 작은 입 속으로 손이 들어가기 직전 다급하게 내 손을 뻗어 아이의 손을 겨우 잡아 내린다. 속으로 외친다. '이 손가락 중독자야!' 머리 감기기가 제일 어려운 줄 알았던 목욕시간은 점차 새로운 미션들이 생겨난다.


손가락 먹기와 함께 동반된 것은 바로 침 흘리기이다. 어느샌가 입안 가득 침이 고이더니 아무런 저항 없이 입 밖으로 주르륵 흘러내려 버린다. 여기도 침, 저기도 침, 양 볼과 두 손 가득 침으로 범벅된 아이를 보면 그저 웃음이 난다. 침 하나로 사람을 이렇게나 웃기게 할 수 있는 걸까.


터미타임 동안 아이의 입은 마치 작은 폭포수 같다. 밀려오는 물을 하염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뜨리는 폭포처럼, 아이의 입은 밀려오는 침을 그대로 아래로 아래로 흘려보낸다. 세상에서 가장 작고 고요한 폭포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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