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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Mar 26. 2022

알 수 없는 인생, 요가강사가 되었다

내가 요가강사라니! 나도 내가 신기해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인생 정말 알 수 없는 건가 봐. 이 한 마디를 내뱉는 순간이 생각보다 잦아들고 있다. 매일의 나를 비교하면 어제와 오늘의 나는 크게 다를 게 없는데, 또 먼 걸음으로 돌아보면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꽤나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나이는 왜 이렇게 빨리 먹는 건지, 곧 있으면 마흔이 될 거라는 생각에 사실 올 한 해는 시작부터 불안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안정감이 찾아온다는데, 안정은 무슨. 지금 하는 일은 몇 살까지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 나이까지 모아놓은 돈도 없을까.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거짓말처럼 불안만 커졌다.


그래서일까 2022년 시작부터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고 반백수의 삶으로 얼렁뚱땅 벌써 3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3월이 벌써 끝나간다는 생각에 버릇 같은 불안이 또 찾아왔고 2022년의 3개월을 돌아봤다. 근데 놀랍게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와 근데 나 그렇게 못 산 것도 아니네?”


작년 한 해 일에 너무 치여 사느라 잠시 휴식기를 가져야지 하면서 지난 12월부터 3월까지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얼마 있지도 않은 통장의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면서 우스갯소리로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요가원 3개월 등록비용만 60만 원인데, 백수에게 60만 원이란 너무 큰 돈이지. 전업은 못 하겠지만 자격증이 있으나 요가원 등록할 비용 정도만 요가로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소박하고 현실적인 꿈이 모락모락 피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연말. 새벽 수련을 마치고 땀 범벅이 되어 매트를 닦고 있던 그때. 좋아하던 선생님께서 차담을 하는 방으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수련 시간이 다르다 보니 끝나고 인사드릴 시간도 없던 선생님이라 반가운 마음에 쪼르르 달려갔는데 너무나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다른 선생님 한 분을 소개해주시며, 그분이 그만두는 요가원에 새로운 선생님으로 나를 추천해주신 거다.



지금 다니는 요가원은 죄다 요가 선생님들이 다니는 곳이라 얼떨결에 대강 요청을 받아서 몇 번 대강 수업을 해본 적은 있지만, 뭔가 본격적으로 내가 수업을 맡아서 해본다는 건 아무리 상상이라도 너무 비현실적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하루만 고민해보고 말씀드릴게요” 하고 돌아와서 온종일 고민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추천해주신 선생님이 아쉬탕가 공인 티쳐였기 때문에 사실 고민만큼 신나기도 했다. 와 내가 공인티쳐의 추천을 받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심지어 수련을 정말 열심히 성실히 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를 해주셔서 가슴 한켠이 순간 뜨거워졌다. 그게 어떤 자리든 공인 티쳐의 추천이라니. 이런 엄청난 기회를 쉽게 차버릴 순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나? 정말 해도 되나?


정말 단순하게 좋아하는 요가를 더 잘 알고 싶어서 요가 지도자과정까지 밟게 된 거였는데, 정말 요가 지도자 자리를 제안받을 줄이야! 그런데 고민의 이유 역시 내가 요가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요가가 너무 좋다. 정말이지 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이렇게 좋아하게 된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보는 영역이다.



수업을 한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요가를 다른 누군가도 좋아하게 되도록 이끄는 일이 되겠지. 근데 내 수업에 사람들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내가 정말 누군가를 가르칠 실력이 되나, 내가 누군가를 요가의 길로 들어서게 할 수 있을까. 그 두 가지만 고민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아사나. 지금 다니는 요가원에서는 매트를 깔면 좌우 앞뒤로 죄다 요가선생님들이 날아다니기 때문에 그분들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한창인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을 꾸준히 하다 보니 나의 수련도 어느샌가 생각지도 못한 진도까지 와 있었다. 평생 프라이머리까지 다 나갈 수 있을까 했었는데 어느새 세컨시리즈의 카포타사나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키노의 카포타사나 (진짜 멋있다..!)

나의 꿈의 아사나였던 카포타사나! 수천수만 팔로워의 요가 SNS에서나 볼 수 있던 경이로운 아사나를 요즘 매일 연습하고 있다. 과연 이번 생에 할 수 있을까? 제발 다음 생에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던.. 불가의 영역. 물론 아직 카포타사나를 혼자 힘으로 하진 못한다. 선생님께서 다 만들어주셔야 발가락이나 발바닥을 겨우 잡는 수준이지만 여기까지 왔다는 게 돌이켜 생각해보니 뿌듯했다. 유연하지도, 힘이 있지도 않던 내가, 매트 위에서 몸개그만 하던 사람이 여기까지 왔다! 실력은 모르겠지만, 꾸준한 수련이 주는 힘을 믿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두 번째 질문엔 오히려 쉽게 답이 풀렸다.

읽으면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던 문장.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요가하는 사람들을 보며 ‘난 절대 저렇게 못할 거야’ 나의 한계를 단정지었었는데, 수련의 날이 쌓일수록 그 불가능의 영역은 거짓말처럼 매일 매일 무너지고 있었다. 역자세, 암발란스, 후굴 자세까지 꿈꿀 수 없었던 화려한 아사나들을 어설프게나마 할 수 있게 되면서

어쩌면 그래서 나는 매일 매트 위에 서는 건지 모르겠다. 조금만 방심하면 자신을 하찮게 보는 나를 응원하기 위해. 그래서 요가를 가르친다기보다 이런 마음으로 함께 응원한다 생각하니 수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의 고민 끝에 소개해준 요가원의 원장님과 면접을 보고 거짓말처럼 수업을 맡게 되었다. 인생 정말 알 수 없지 않나! 스트레스를 술 마시고 풀 줄밖에 모르던 망나니가 요가 수련을 가려고 술을 안 마시기 시작하더니 요가강사가 되었다.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밖에 안 해본 사람이 요가를 시작하고 요가강사가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수업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그리고 2022년 1월 첫째 주 드디어 첫 수업을 시작했다. 그날 얼마나 떨었던지. 내가 왜 수업을 한다고 했을까 미쳤지 미쳤어. 그냥 죄송하다고 하고 첫 수업 끝나면 못하겠다고 할까? 심장은 쿵쾅쿵쾅. 매트 앞에 서니 나만 보는 회원님들의 눈이 어찌나 무섭던지. 아쉬탕가 수업은 구령하기 바빠 어떻게 끝냈는지도 모른 채 끝이 났고, 하타 수업은 열심히 짜간 시퀀스가 하나도 생각이 안 나 즉석에서 바꿔야 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몇 번의 수업을 하고 나니 긴장 대신 찾아온 건 재미였다. 매트 위에서 몸개그를 하던 나의 지난날들이 생각나서였을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려는 회원님들께 다가가 따뜻한 핸즈온을 더하는 일. 찰나지만 도전과 성공의 순간을 함께 하는 일. 그게 이렇게 뿌듯할 줄이야. 어쩌면 내게도 지레 겁먹던 지난 나들이 있어서 오히려 회원님들의 마음을 조금은 더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타고난 유연성으로 휙휙 다 되던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게 왜 안 돼?’싶겠지.


회원님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지난날의 내가 했던 말들을 똑같이 해온다. “선생님 저는 뻣뻣해서 안 돼요. 저는 유연하지 않아서 못할 거예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럴 때마다 반사적으로 대답이 나온다. “할 수 있어요. 각자 필요한 시간이 다를 뿐.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하세요” 내가 할 수 있게 됐으니 회원님들도 됩니다. 그런 게 아니다. 꾸준한 수련은 거짓말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걸 느끼셨으면 좋겠다. 그게 요가의 매력이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내 수업을 과연 누가 좋아할까 쫄보였는데, 요가 수업을 시작한 지 3개월 차. 생각보다 나와의 시간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 오늘 너무 시원했어요. 너무 좋았어요”하는 말 한마디에 힘이 나고, “무슨 요일에 와야 선생님 수업을 더 들을 수 있어요?”라고 물어봐 주시는 분도 생겼다. 원장님께서도 요즘 회원님들이 새로 온 선생님 수업 좋다고 한다며 기분 좋은 후기를 전해주셨다. 살면 살수록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다. 내가 요가 선생님이 될 줄이야! 그리고 이게 또 이렇게 행복한 일이 될 줄이야.


그래서 당분간은 요가를 나누는 일을 쭉 해보려고 한다. 요가를 가르친다기보다 옆에서 함께 응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덕분에 요가로 돈을 벌어서 요가 수련을 다니는 꿈을 이루게 되었다. 수련 비용만큼 버는 게 어디야!


그런 의미에서 “쓰는 요가” 연재 다시 갑니다. 좋아하는 요가를 좋아하는 방식으로 좀 더 나누려 합니다. 주 1회 연재를 목표로! 이번에는 중간에 끊기지 않도록 할게요. 누군가 이 글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요가가 궁금해지기를, 그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써 내려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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