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은 아이였다. 남들은 열심히 보는 “그것이 알고 싶다”도 무서워서 제대로 본 기억이 손에 꼽고, 공포나 스릴러 영화는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누군가와 언쟁을 하게 될까 봐 관계 속에서도 늘 평화를 유지하러 한 발 물러서고 마는 그런 사람이다.
무서워서 사람들한테 말도 잘 못 했던 내가 너무 무서워서 버텼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무슨 동아리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친구들과 함께 간 야영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게 되었다. 팀을 짜고 안전모에 무릎보호대까지 하고 손에 쥐어진 건 서바이벌 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색깔 총알을 맞는 것뿐인데, 당시에는 그 총에 맞는 게 너무 무서웠다. 결국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못하겠다며 선생님께 애원했다.
선생님께서 이건 맞아도 아픈 총알이 아니고 색깔만 남는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참을 설명해주셨지만, 나의 겁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기만 했지 작아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게임에서 빠지고 친구들이 하는 서바이벌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데 막상 재밌다고 까르르거리며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니 부러웠다. 나는 정말 겁내지 않아도 됐구나. 속상해서 부럽다고 말하진 못했다.
그렇게 겁이 많은 아이는 겁이 많은 어른으로 자랐다. 얼마 전 함께 요가를 하는 도반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각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지 이런저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누군가는 재테크에 도전을, 누군가는 새로운 취미에, 누군가는 새로운 사업에 다들 새로운 것들을 시작하는 이야기 속에서 내게도 이것저것 해보라는 권유가 이어졌다.
“에이 재테크는 돈 잃으면 어떡해” “사업해 본 적도 없는데 사업을 어떻게” “난 그런 게 배워본 적 없는데 그걸 어떻게...?” 습관처럼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 내게 한 명이 물었다.
나의 겁쟁이 역사는 매트 위에서도 반복된다.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나는 유연하지 않은데, 운동 같은 거 안 해봤는데 요가를 할 수 있을까. 가서 괜히 망신만 당하는 거 아닌가 그런 쓸데없는 걱정에 시작조차 늦어졌고, 수련을 하는 지금도 선생님들이 “각자 되는 만큼만 접근해볼게요”하는 다정한 말로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아사나를 시키면 속으로 “그걸 어떻게 해요?” 생각하면서 몸을 꿈쩍도 않지 않곤 한다.
얼마 전 하타시간이었다. 기어가는 테이블 자세에서 팔꿈치를 접어 가슴을 바닥에, 그대로 바닥에 닿은 무릎을 떼고 다리를 쭉 펴고, 한 걸음씩 걸어 들어와, 한 다리씩 천장 위로 간다베룬다아사나 접근! “네? 여기서 다리를 어떻게 천장 위로??” 가슴을 밀어내면서 무릎을 조금씩 접어서 발끝을 정수리 방향으로... ‘네? 발끝을 정수리?? 못해 못해’
그날도 애초에 포기하고 발을 바닥에서 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저러다 허리 꺾이지, 모가지 나가지, 나 같은 쪼랩이는 아직 못하지 못하지. 그렇게 맘 편하게 무릎만 바닥에서 떼어내고 평화롭게 버티고 있을 때 선생님이 오셔서 다리를 한발 한발 천장 위로 올리셨다.
이효리의 간다베룬다사아사나 (멋있다.. 부럽다...)
“으악 선생님 잠깐만요 잠깐만요 저는 못 해요 못해요” “괜찮아요 제가 잡고 있어요” 그리고선 후굴 각을 만들어 무릎을 접으려 하셨다. “선생님 저는 안 돼요 머리에 안 닿을 거예요 안 닿아요” 순간 랩퍼가 된 마냥 다다다다 뱉어냈다. 선생님의 핸즈온은 정말이지 따뜻했지만, 나의 겁까지 녹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괜찮아요 할 수 있는데까지만 갈 거예요. 거기까지 안 가요” 그리고 부드럽게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기. 우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 다행이다. 모가지 안 꺾였다, 허리도 무사하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선생님이 웃으며 한 마디를 더 보탰다.
그렇다. 겁 많은 인간의 가장 큰 단점은 무언가가 겁이 나서 시도조차 못 한다는 것이다. 방심하고 있다 연달아 맞은 팩폭에 자문했다. 그래 내가 겁이 많은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나는 뭐가 그렇게 겁이 나는 걸까. 생각해보니 나란 인간은 무언가를 시도하기 전에 늘 실패의 순간을 먼저 떠올린다. 혹은 실패의 경우의 수들을 먼저 뽑아본다.
새로운 아사나 하나를 할 때도 목이 부러지고, 허리가 나가고, 온갖 부상에 시달리는 내가 먼저 생각나는 것처럼. 그런데 막상 해보면 안다. 그런 경우의 수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하긴 머리서기 연습을 한창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넘어지는 게 두려워 다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때도 내 머릿속에서는 넘어지면 손목이 꺾이거나, 목이 부러지거나, 척추가 나가는 건 아닌가 여느 때와 같이 실패의 순간 벌어지는 경우의 수들을 세어보고 있었다.
넘어지지 않는 법을 물어봤는데, 넘어져 보라니. 그때는 몰랐지 그게 우문현답이라는 것을. 실제로 바닥에 쿵 소리 내며 대차게 넘어졌을 때 깜짝 놀라서 가슴이 쿵 떨어지긴 했지만, 몸은 멀쩡했다. 그렇게 매일 넘어지다가, 종종 안 넘어지다가, 종종 넘어지다가, 넘어지지 않게 머리서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요즘엔 핀차마유라사나를 연습하고 있다. 똑같은 역자세인데 머리서기 연습할 때보다 훨씬 더 무섭다. 팔과 손으로만 나를 지탱하고 몸을 위로 끌어올린다는 게 생각보다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다. 이대로 넘어지면 또 난리 나게 다치겠지? 넘어질까 봐 늘 수련할 때도 벽으로 달려가서, 집에서도 벽에 붙어서만 연습을 하곤 했는데, 요 며칠 난데없이 들이닥친 팩폭에 ‘그래 뭐 한 번 넘어져 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팔과 손으로 매트를 탄탄하게 눌러내고 다리를 올려서 균형을 잡으려는 순간, 못해 못해 겁먹은 마음이 반사적으로 몸을 먼저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렇게 몇 번을 넘어지기도 전에 매트 위로 다시 내려오다 ‘괜찮아 오늘은 넘어지는 게 목표야. 넘어져도 괜찮아’ 하며 다시 한번 다리를 올려 균형을 잡으려는 순간, 다리가 더 뒤로 발라당- 쿵- 심장이 쿵쾅쿵쾅. 드디어 넘어졌다.
깜짝이야. 넘어져서 제일 먼저 챙긴 건 어딘가 부러지거나 다친 내 몸이 아니라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는 일이었다. 휴 내 심장 무사하네.
넘어지는 게 별거 아니라는 걸 알고 난 후, 요 며칠은 대차게 넘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머리서기를 연습할 때처럼 종종 균형을 잡는 순간이 찾아오고 있다. 참 신기하지. 넘어져 봐야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운다는 게.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경우의 수들은 생각보다 일어날 확률이 낮았다.
하긴, 나 역시 그때 서바이벌 게임을 친구들과 했다면 평생 서바이벌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 남지 않았을 텐데. 소소하게는 서바이벌 게임부터 수많은 후회의 순간들이 겁나서 해보지 못했던 기억들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못해 하며 지레 포기했던 것들을 그때 도전했다면 지금쯤 아마 많은 것들을 해본 사람이거나, 한 사람이 되어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