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기는 비틀기대로, 전굴은 전굴대로, 후굴은 후굴대로 혼자서 매트 위에서 슬랩스틱 코미디 한 편을 찍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젯밤 호르몬에 제대로 졌기 때문이다. 이상하리만큼 말도 안 되는 식욕이 찾아왔다. 덕분에 낮엔 밥을 두 그릇이나 꽉꽉 채워 먹었고, 죄책감에 저녁은 적당히 먹어야지 했지만, 밤 11시가 되어서 라면에 밥까지 말아서 야식을 해치웠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은 괴상한 밤이었다. 먹으면서도 생각을 했지. 이렇게 먹으면 내일 몸이 무거워서 수련이 하나도 안 될 텐데....
그동안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을 하면서 생긴 루틴이 있다. 이른 저녁을 먹는 것이다. 아무리 늦어도 8시 안에는 저녁을 먹을 것. 왜냐하면 몸보다 정직한 게 없기 때문이다. 저녁을 늦게 먹을수록, 또 많이 먹을수록 다음 날 아침 매트에 설 때마다 몸은 정직하게 무거워졌다.
하지만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를 완벽히 망.쳤.다. 이미 호르몬의 노예가 된 어젯밤엔 자기절제 능력이라곤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몸은 매트 위에서 있었지만, 마음은 자꾸만 어젯밤으로 달려갔다. 비틀기가 버거울 때마다, 전굴이 배부르게 느껴질 때마다, 후굴에서 등보다 배가 느껴질 때마다 “하 어젯밤에 왜 그렇게 먹었지?” 매트에 선 지금의 순간에 집중 못 하고 어젯밤으로 돌아가 자꾸만 나를 다그치고 괴롭혔다.
결국 사바아사나를 하러 누워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계속 내 탓을 했다. 어제 왜 그렇게 먹었을까, 어제 왜 그렇게 늦게 잤을까, 그 시간에 라면만 안 먹었어도, 아니 먹어서 아사나가 안 되더라도 되는 아사나에 집중하면 됐는데, 왜 또 안 되는 아사나만 탓하고, 되면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오늘의 흐름에 집중하면 되는 것을 왜 자꾸 어제 탓만 했을까. 어제 말고 오늘, 현실에만 집중하란 말이야! 어젯밤 라면 하나 덕분에 오늘 새벽 내내 머릿속이 이렇게도 시끄러웠다. 덕분에 개운한 사바아사나 대신 마음 무거운 사바아사나로 끝을 맺었다.
요가를 한다고 하면 “요가하는 사람이 그렇게 짜증 내면 안 되지, 화내면 안 되지”라는 얘기를 사람들에게 자주 듣곤 한다. 그런 얘길 들으면 내 수련이 깊지 않은 게 들킨 거 같아서 또 짜증 난다. 하지만 요가를 해도 화가 날 땐 화가 난다. 짜증이 날 땐 짜증이 난다. 어젯밤 라면을 먹은 나에게 화가 난 아침을 보내고, 라면 하나 때문에 화가 이렇게까지 난 나에게 화가 난 하루 종일을 보냈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매트 위에서도 매트 밖에서도 쉽게 흔들린다.
좋아서 하는 요가인데 왜 이렇게 화를 냈지? 하루의 끝자락에 오니 그렇게까지 화가 난 게 또 머쓱해졌다. 아마 오늘 아침의 나는 아사나를 좀 더 잘하는 내가 되고 싶었나 보다. 매일 하는 수련인데 밤에 라면 하나 먹었다고 이렇게 바로 안 되는 아사나들이 속출하니 억울했던 것도 같다. 매일 매트 위에서 보낸 시간과 노력이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인가.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다시 잠잠해졌다. 내가 나를 알아준 것이다. 그래 매일 하는 수련인데 내일 다시 하면 되지 뭐.
지도자 과정을 밟을 때, 첫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이런 질문을 했다. “여러분, 요가의 목적이 뭔지 알아요?” 여기저기서 그럴싸한 대답들이 이어졌고 그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흘러가는 마음들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금의 순간을 고요히 받아들이는 것. 그런 마음작용을 멈추려면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에서 살지 않고 현재를 살아야 한다. 나는 매트 위에 서 있는 내내 라면을 먹은 어젯밤에 멈춰있었고, 하루 종일 매트 위에서 보낸 똥망 수련만 생각했다. 모두 현재가 아니라 과거였다. 아직 얕은 수련이라 마음작용을 멈추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만, 다시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가 어느 시간을 살고 있는지, 나를 알아차리는 것부터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