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끝에 남편의 f-6 배우자 비자가 드디어 발급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8월 초에 신청서를 넣었으니 거의 6주를 꽉 채워 기다린 셈이다.
우리가 한국을 떠난 것이 벌써 5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다시 남편과 함께 한국에 돌아와 살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동안 삶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나도, 남편도 많은 행복과 슬픔을 함께했다.
국제커플인 나와 남편은 각자의 나라가 아닌 제3국에서 5년간 살았다. 좋은 경험이었다. 아마도 아이가 없을 것이 거의 확정된 우리 커플은 1년의 반은 남편의 나라, 반은 나의 나라 한국에서 사는 삶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 우선은 내가 학업(이라고 하지만 일단 휴학)이 있다 보니 한국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필요해 한국에 다시 베이스캠프를 차리게 되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기도 했다. 남편은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무척 일상화된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덕분에 1년에 3개월은 한국에, 3개월 본국에서 번갈아 일하며 하프 리모트 잡이 가능한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나나 남편이나 세미 디지털 노매드의 삶을 살고 싶었는데, 그 삶의 첫 발걸음을 시작한 남편의 다음 행선지는 한국으로 오는 f-6 배우자 비자를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한국인 배우자 비자가 그렇게 까다로운지 전혀 몰랐다...
각 대사관마다 비자를 신청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남편은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어 주한 프랑스 대사관으로 서류를 보내야 했는데, 이유를 모르겠지만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3국의 경우 비자 관련 모든 업무를 독일에서 처리한다.
즉 주한 프랑스 대사관으로 모든 서류를 구비하여 제출한다 할지라도 이 서류는 1차 페이퍼 스크리닝을 거친 후에 독일에 있는 비자센터로 다시 넘어가며, 그곳에서 비자발급 심사업무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3국에 살 때만 해도 그냥 해당 대사관으로 서류를 보내면 되었는데... 서류를 옮기고 옮기는 과정에서 기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류 두께 또한 엄청났다. 모든 서류를 준비해보니 얇은 책 한 권 가량의 두께였다. 내가 제3국으로 갈 때 요청받았던 서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제3 국에서 1년 이상 거주했기 때문에 소득요건 증빙서류는 면제였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결혼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제3 국에서 오랜 기간 살았다. 결혼 전에는 남편이 직접 스스로의 힘으로 e-7 취업비자로 받았었다. 그러니 별다른 결격사유가 없다면 금방 비자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자를 신청 후 4주가 지난 뒤 메일 하나가 왔다. 우리가 실제로 1년 이상 '함께 살았던' 사실을 증빙하기 위해 부부 모두의 이름이 적힌 공식적인 서류를 추가로 보내라는 것이다. 핸드폰 요금이라던지, 세금 신고서라던지 말이다. 이미 서류 요청 요건에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결혼하였으며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사진과 함께 설명해서 보냈는데도...
다행히 우리 이름이 모두 적힌 해당 서류를 찾아 송부했다. 그런데 일주일 뒤에 다시 메일이 왔다. 우리가 보낸 서류는 2020년도 것이며, 비자센터는 최근 1년 이내의 서류만 인정하니 서류를 다시 보내라는 것이다.
남편 말로는 해당 직원의 불어가 조금 미숙한 것 같다고 했다. 처음 받았던 메일은 단순히 '1년 이상' 살았던 사실을 증빙하는 서류로 이해되었다고 했다. 커뮤니케이션 실수 때문에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 길어졌다. 항공권 값은 날로 가격이 오르는데 도대체 언제 끊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다행히 새로 2021년 서류를 보낸 뒤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드디어 비자 발급이 승인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정말이지 오랜 기다림이었다...
프랑스어 까막눈이었던 나였기에 제3국으로 갈 때 해당 국가로 가기 위한 비자 발급부터, 그곳에 사는 동안 각종 행정처리는 모두 남편이 도맡아 했다.
국제커플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들 각자 생각이 다르다. 어떤 이들은 해당 나라에 갔으면 초창기에는 남편이 도와주더라도 열심히 언어를 익혀서 스스로 자립성을 키워야 한다고 본다. 건너들은 어떤 커플의 경우 남편이 "자, 이제 너는 프랑스어를 배워야 해. 우리는 앞으로 프랑스어로만 얘기할 거야."라고 하며 프랑스어가 아닌 말에는 대꾸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커플은 그렇게 스파르타로 상대방을 북돋는 성격이 전혀 아니다... 살다 보니 프랑스어 배우는 게 미치도록 싫을 때가 있었다. 나는 남들이 억지로 시킬수록 도망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존중해주고 가만히 기다려준 남편이 참 고마웠다. 그 시기가 지나가니 이제는 나도 '프랑스어를 어느 수준까지는 배워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었다.
이제 상황은 반대가 되었다. 우리의 베이스캠프는 한국이 될 것이다. 남편 또한 한국어는 알파벳을 읽고 간단한 말 몇 마디를 하는 정도이다. 한국으로의 비자 발급이 모두 완료된 이후 집을 구하는 것부터 살림살이를 다시 채우는 것, 각종 행정처리는 현재 내가 도맡아 하고 있다. 어차피 일 년의 반은 각자 본국에서 살 예정이니 이렇게 서로의 나라에 있을 때 도와가면서 팀플레이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남편과 함께 한국에서의 삶 시즌 2를 시작하게 된 마음은 몹시 설렌다. 아날로그적인 유럽에 있다가 모든 것이 빠르고 모던한 한국에서의 삶이 기대된다. 예전에는 둘 다 한국에서 일하느라 찌들어 있었던 기억뿐이다. 이번에는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