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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금이 있던 자리 Jun 04. 2024

안녕,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아트인사이트 전시 모임 후기


안녕,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벌써 우리 만남의 끝이 보인다. 하마 나 오래도록 마주 보았던 그것. 언제나 말하지만, 난 시작과 거의 동시에 끝을 생각해. 시작이 좋을수록 끝은 선명해지지. 즐거운 기억만으로 이제 뒤돌아서야 하는 우리, 네 방향으로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나가야만 하는, 좋은 이별이라. 오랫동안 생각해 온 순간, 나는 거의 준비를 마쳤다. 가야만 할 때를 아는 사람들의 것, 좋은 이별을 위하여. 


아, 언제나 사랑하게 됨과 동시에 그 끝의 상상이 내게로 함께 와. 일부러 하는 건 아닐 리야. 내 뭣 하러 그런 수고스러운 짓을 하겠어. 누리기에 지금이란 언제나 짧은 것임을… 그러므로 이별에 대한 상상, 그건 절로 그러한 것이야, 어디서 무엇으로 오는 것인지 모르지만 말야. 그건 누군가 내게 준 것이야, 그게 그대인지 나인지, 나보다 깊은 나인지, 사람들의 말 속에 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말야. 그대 앞의 나는 미소하고 있었지만, 그 이면으로는 침처럼 끝을 삼키고 있었다. 그대도 느꼈을런가, 울대를 치고 지나가는 꾸덕한 소음. 웃음 어딘가 굳어있는, 딱딱한 것이 내내 함께 있었다는 것을. 분명 느끼었을 테지. 나는 고백하는 중이야. 



바야흐로 이별의 순간에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누군가 돌아선 내게 이렇게 말하던 것이 기억나누나. 너는 참 무정하다, 토라진 볼, 아래로 고꾸라진 눈꼬리에 그런 이야기가 매달렸지. 주렁주렁, 그 말은 그대가 하던 것이 아니야, 그대로부터 새어나오는 것임을… 하여 나는 말 없이 웃음 지었다. 더러 내 미소가 그대를 더욱 모질게 한다면, 그대는 나를 너무 사랑했던 것이야, 이별에 마음씀을 정든 가슴의 증거로 생각하는 그대, 이 사랑스러운 그대야. 허나 내가 어찌 그대를 모르겠나, 세상 누구보다 그 마음을 알지. 할 수만 있다면 그대를 꽁꽁 묶어 영원히 내 곁에 매어두고 싶었다. 그러지 못할 나는 대신하여 웃었다.


오래도록 준비해온 거야, 나는. 내 그대를 미련하는 순간, 이별은 가벼움이 되어 먼 운명을 향해 날아가지 못하리니. 오래도록 준비해야 했던 거야, 나는 그대를 너무 사랑하는 딴에는 그대를 마음속에서 먼저 보내주어야 한다. 왜 그래야만 했던가, 슬픈 눈으로 그대 물어주었다. 결국 언젠가 모든 것들은 이별하게 마련인 까닭이라 답했다. 그때 그 순간, 우리가 그래야 했던 것처럼. 왜 지금 보내려 했던가, 그대를 사랑함에 있어서의 지나침 때문이라 답했다. 그때까지도 줄기차게 피어날 사랑, 미련 때문이라고. 그러니 묻지 말아 주, 왜 그대를 밀어내느냐고. 그대 내 진득한 손 잡아 주지 못할 것이라면. 묻지 말아 주, 왜 내 마음의 정반대로 행해왔느냐고는. 그대 내 지독함까지 모조리 되사랑하지 못할 값이라면. 그런 건 너무 사소해서 어려운 일이 되어있음이라 차라리 다정하게 굳혀낸 침묵의 입꼬리로, 그대도 빙긋이 웃어주어, 다 이해한다는 듯이. 



그러므로 우리가 이르러 힘차게 슬플 수 있음이란, 그것이 올곧이 슬퍼만 할 수 있는 것으로 비밀리에 변모한 까닭임을… 우리가 이르러 좋이 이별할 수 있음이란, 그것이 능히 보내줄 수 있을 만큼 적거나 미리 덜어낸 까닭임을… 하여 좋은 이별, 언제나 그 앞에 선 나는 웃었다. 나는 그대가 아니라, 그대와 내 옆을 스쳐 지나간 또 다른 운명에 대해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 내 추해진 손끝의 가련함을 마주할런가. 내 보이지 않으리야, 그대에게 좋은 것으로 남고 싶었어, 내가 다시 그대를 길이 추억하도록. 


마음껏 사랑하면서도 자유히 이별하기 위해 필요한 것. 힘껏 바라면서도 그것이 어찌할 수 없는 구속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랑이 끝내 사랑으로만 끝맺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 반대편의 것들. 살아오며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건 이것이다. 그래서 그대들에게 갈 수 없었어, 일찍이, 타는 가슴의 그림자에 몰래 매달린 것, 미련으로는. 그러므로 나는 이제 마음껏 그대들에게로 갈 수 있다, 그대들을 나에게서 떨어져 있게끔 가슴으로부터 밀어낼 수 있게 되고부터는. 웃으면서 그대들을 보낸다. 그리 함으로서 내가 그대들께로 올 수 있었음이니. 자유히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 


아- 하, 내 그대들과 함께 있을 적에 삼킨 것이 많았더라마는 보여줄 수 있는 것에 한하여는 있는 힘껏 날려보냈으리야. 감추어도 새나오는 나의 막대함, 그러므로 나는 기꺼이 가려왔다. 허나 이렇게 다시금 서간을 적는 것은, 그렇게나 많은 진심 眞心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남아 있는 것이 더욱 아득했음이야. 차마 말로써 다할 수 없던 것, 삼켜온 것이 이렇게나 많음이야. 이제 그대는 멀리서 나의 전심 全心을 들어라. 우리는 이별하기에, 드디어 내 전부로 갈 수 있다. 나는 그대를 보내지 않았으나 그대는 가야 하고, 그대를 더 먼저 떠냄으로써 그대를 아주 보내지 않으리야. 안녕,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벌써 이렇게나 쏟아질 줄이야. 이번 후기는 익명으로 진행해야겠구나. 내 뜨거운 사랑의 콧지름을 만천하에 뿌려대는 것이, 더러 그대 보시기에 부담스러울까 보아. 그대 이름 하나하나 짚어보진 않으련다. 뭐, 그래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보겠지만 말야. 한편 내 스스로 좀 민망키도 하누나. 겨우 세 번의 만남만으로, 이토록 뜨거운 안녕을 고할 수 있음이란. 부끄러움을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우리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나 볼까. 


3월의 마지막 날, 압구정 어느 작은 갤러리에서 모였던 것을 기억하나. 명색이 우리의 만남이란 '전시' 주제 모임이라 나름 찾아본다고 찾아본 전시였더랬는데, 영 시원찮았던 것으로 기억나는군. 그를 두고 더불어 이야기하기엔, 너무 짧아서 말이지. 허나 그대라면 왠지 달리 얘기할 것 같구나. 그 안에 숨어있는 좋음, 예컨대는 우연이라든지, 새로움이라든지, 낯섦이라든지, 좋은 면들을 기어코 찾아내 보일 것 같다. 분명 그럴 테지. 내게도 그리해 주었으니.


압구정을 누비며 식사를 하고 카페를 가고, 이야기를 했다. 명색이 전시 모임 후기인데 서로 한 말들이 많아, 전시에 대한 꼭지들은 얼른 기억 속에 떠오르질 않는다. 우린 글에 관해 이야기하고, 글 쓰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의 이야기를 하고, 그 중 전시 얘기가 부록처럼 포함되어 있었다. '좋았던 전시는 무엇이었나, 문화초대로서 가본 전시엔 무엇이 있었나, 그건 어떠했는가,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이런 걸 두고서만 글 써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 보낸 시간이란 겨우 그 정도론 다 담기지 않아서 말이야. 내게 우리 보낸 시간이란, 그것만으론 온전히 추억할 수 없는 것이라서 말이야. 


카페를 나서서 우린 벚꽃을 좀 보았어. 아파트 단지의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민 벚꽃들이었다. 올봄 꽃놀이는 다 틀렸다고 생각했었는데, 고맙게도 그때까지 겨우살이처럼 버텨주었다. 꽃 비가 내리는 것이 정말로 곧 다 지려나, 강남행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우리를 찾은 짧은 침묵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러면서 나는 벌써 이별을 생각해. 그래,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한 거야. 그대도 내리는 꽃잎 밑에선 그런 속절없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나. 너무 아름다운 것에 대한 모든 당연한 것들을?


버스에 삼삼오오 나란히 앉아, 오후의 햇발을 바라보았다. 무덥기 직전의 시기라 볕은 피부로 맛볼 만큼 따갑잖아 슴슴하니 좋았다. 차창 너머로 봄볕에 말갛게 세수한 빌딩 숲이 보기에 어여뻤다. 강남으로 넘어왔고, 뜬금없이 우리는 보드게임을 했다. 그건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대들도 즐거워 보여 더욱 그랬다. 사실 이쯤 밝히자면 내게 전시는 말야, 일종의 덤이었어. 그래 분명 덤이었지. 전시 얘기도 하면 좋고, 우리 얘기를 하면 더 좋고, 그냥 그대들을 만나면, 그것으로 좋고. 그대들은 어땠을런가 몰라. 내가 눈치가 좀 없는 편이거든. 가린다고 가린 내 마음이, 그대에게 부담은 아니었을런가 몰라. 참, 나로서는 알 수 없어 답답하군. 




4월은 행궁동엘 갔어.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수원천 변 수양버들 그늘을 걸으며, 잠자코 이슬비를 맞았다. 수원행궁과 멀리 병풍처럼 펼친 팔달산을 바라보며, 약속 장소로 걸었다. 날이 서늘하고 적요하였다. 우린 또 식사를 하고 카페를 갔다. 우리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그날엔 또 무슨 이야기를 했지. 각자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고, 서로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가는 지금에 대해 이야기했다. 실은 내가 거듭 물었다. 여러분의 글을 읽고 다시 만나자니, 원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첫 모임 후에 집으로 돌아와서 그대들이 쓴 글을 하나 하나 전부 읽었더랬다. 


내가 그대에게 진솔한 것으로서 가고 그대가 또한 내게로 오기 위해, 자신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야기를 끝내 뱉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연과 우연이 필요한지를, 이 글을 접하실 누구나 이해하고 있겠지. 허나 나는 글로써 그대들의 비밀을 먼저 알아내 버렸다. 그건 무척이나 감사할 일이다, 내겐 그 감사를 받으실 신이 없지만, 여전히 그건 안도하고 감동할 만한 일이다. 만약 그대의 입으로부터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더라면, 어쩜 우리는 끝내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르기에. 시간은 언제나 짧은 편이지. 에디터들과의 인연 서사에는 이렇듯 애틋하고도 뭉클한 부분이 있어, 우리 겨우 두 번째에 불과했음인데, 차마 말로서 올 수 없었을 그대들이 글로서 먼저 닿아버릴 수 있었으니. 다른 친구들은 이를 두고 내적 친밀감이라고도 부르더구나. 


나는 '들키고 싶은 비밀'에 대해 이야기했다. 글로 적어둔 각자만의 비밀, 찔리면 놀라나 그럼에도 찔릴 수 있도록 광장과 햇볕 아래 전시해둔 각자만의 이야기에 대해. 끝내 알아보길 바라나, 아직은 비밀과 침묵 속에 기다리기를 원하는 모순된 마음, 자신만의 글. 그건 정확히 가리킴 받고, 정확히 이해받기를 바라는 것. 한 인간이 말로서 오기까지도 숱한 우연과 그에 수반될 물리적인 시간인즉, 신중한 기다림이라는 어려움이 필요했으나,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한들 말로서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람이란 여전히 어려움이었다. 그래서 우리 글을 쓰지 않았던가, 빚고 깎아 최대한도로 드러내기 위해. 말로서 갈 수 있는 것들의 한계를 아는 자, 모든 에디터 동료들아, 그대들도 그렇지 않았던가. 


나의 비밀은 비관이야. 비록 그대 앞에 쉬이 흘러넘치지 않도록 깊숙이 밀어 넣어왔으나, 내 가슴에 사랑과 염세, 낙관과 비관이 가득하다. 속이 꽉 찬 사랑, 그만큼 따라 차오르는 걱정, 옹골지게 피어 올올이 쏟아지려는 석류 같은 나의 마음. 어떻게 나의 근심은 이해받을 수 있었으려나. 비극적이라기엔 아름답고, 희극적이라기엔 섭섭한, 묘묘한 내 마음은. 허나 나도 이 글 읽으실 그대도 이제는 이해할 것만 같다. 내 비관이란 사실, 사랑을 지피는 군불이요 쏘시개라는 것을. 나는 그대를 보내지 않았으나 그대는 언제나 가야만 하기에… 하여 미리 헤아려 슬퍼하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준비할 줄 아는 사람에게 지금이란, 더욱 강렬하고도 농밀한 것이 되어 있음이니. 끝을 바라보기에 지금은 가장 현재적인 것. 바라되 미련하지 않으려는 자 우리에게 있어 즐거운 한때인 지금이란, 가장 절실한 것이자 가까운 것이 되어있었으리다. 그게 나의 카르페디엠, 그 서늘함이야. 


카페를 나서 돌바닥에 고인 진창을 튀기며 우리는 걸었다. 비는 내리고, 행궁동은 고요하면서도 가벼웠고, 행리단길 또한 그렇게 아름다웠다. 비 내리는 거리를 쏘다니며, 여러 편집샵과 소품샵을 드나들었다. 정녕 그대들도 아쉬웠던지, 나처럼 그러했던지, 우리는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때까지 비가 왔고, 그때까지 이야기했다. 지치지 않고, 목마르다는 듯이, 해갈하는 듯이 나는 말했다. 나는 끊임없이 말했다. 그렇게나 쏟아내고 비우며, 점차 평안을 느꼈다. 그날 밤은 아주 잘 잔 것 같다.





5월엔 성수에서 만난다. 달에 한 번꼴로 만나나, 횟수를 거듭할수록 능란히 가까워지고 수월히 밀접해 오는 그대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에 평안이 차올랐단다. 그만큼 나는 내 붙잡아둔 가슴의 목줄을 풀어줄 수 있음이니. 더욱 힘껏 와주었으면! 허나 우리 인연이 거기까지일 줄 누가 알았으랴. 하하- 그래, 그래,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함이지, 앞선 내 모든 비관, 근심과 걱정들이란! 커다란 바람에 상응하는 만큼의 것, 하여 오래 준비해야 했던 나의 것, 나는 아주 잠깐 멈칫했을 뿐이다. 


5월의 성수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해가 조금씩 따가워져 갔다. 벚꽃은 이미 다 졌고, 이제 성큼 다가온 여름의 예감을 삼키고 있었다. 팝업 스토어가 한창이라, 붐비는 거리를 비집으며 카페에 갔다. 무릇 사람의 만남이란 먹고 마시고 이야기함, 패턴이라 해보아야 이렇듯 단순함이라, 그래서 오직 만남이 고유의 가치와 무게를 띠게 되는 지점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에 있는 듯하다. 우리는 전시에 대한 얘기를 한다. 무엇이 우리를 여기로 모이게 하였는가에 대해서. 그러니까 전시라는 주제를 택해 이처럼 모일 수 있었던 지에 대해 나는 물었다. 어떤 이는 전시에 대한 막연함에 의하였노라 답하였고, 어떤 이는 전시를 함께 보아줄 사람을 찾음이라 답하였다, 전시라는 고독에 의함. 어느 말도 내 것인 양 친숙했고 개중 고독이라는 말이 좋았다. 그게 낯선 우리를 이토록 가까이 두었음이니. 


또 누군가는 에디터라는 작자들이 끝내 궁금하였음이라 어렵사리 발걸음했노라 답하였고, 나는 늘 그랬듯 계기를 찾고 있음이라 말하였다. 내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원환적이라 언제나 계기를 필요로 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희구와 익숙한 것에 대한 이끌림, 우직하게 쳇바퀴를 굴리는 나의 두 팔은 그러므로 바람을 필요로 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떠밀고 그렇게 인도하는, 그대들이 내게 그러하듯이. 그러니 적어도 내게 있어 전시는 덤이었어라, 함께 전시를 보아도 좋고, 그를 두고 더불어 이야기함도 좋았으나, 그저 나는 그게 무엇이든 새로움으로 이끌어줄 이름 모를 그대들, 바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네 방향에서 왔고, 마지못한 기쁨으로 다시 그 방향을 향하여 돌아가야만 한다. 



전시 얘기를 조금 한 다음으로는 아마 마지막으로서의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글이 비밀과 망설임의 간격을 좁혀주었다 한들, 여전히 다 꺼내어볼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마지막이기에 할 수 있는, 조금만 더 깊은 곳의 이야기들을. 하여 지금 이 글도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실로 마지막이 아니었더라면, 이 글은 끝내 태어나지 않고 내 마음 깊은 곳에 퇴비처럼 쌓이고는 그저 말았을 것이다. 실로 우리의 마지막이 내 헤아림보다 조금 더 길었더라면, 하여 그것이 아직 오지 않은 것으로서 있었다면 내 근심은 아주 기쁘게 삼켜졌을 테지. 


자고로 미리 헤아린 비관이란 그런 것이어야 하는 것, 다가올 현실을 위함이며, 그 현실 앞에서는 버팅기지 않고 스러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내가 그려낼 수 있는 최악의 수를 생각해. 그건 미래이고, 미래란 시간의 순차적이고 불가항한 흐름을 따라 현재로 다가오면서 자연스레 드러나고 증명되는 것. 내가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자, 원치 않아도 저절로 드러나는 것인 현실. 내가 택할 수 있는 건 미래 그 자체가 아니라, 오직 그 앞에 선 나의 자세뿐. 염세로 헤아린 미래가 이르러 그에 상응하는 것으로 올 때, 기꺼이 맞이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다. 허나 헤아린 미래가 이르러 그 정반대의 것이 되어있을 때, 커다란 환희를 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 나의 방식이다. 받아들임을 준비하는 나의 비관, 내 방식에 방해이자 장애가 있었다면 그건 오직 불안에 침노되며 가뉘지 못하는, 휘청이는 정신. 허나 나는 오랜 준비를 마쳤다. 그 준비는 그대들을 만나기 한참 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 테다. 슬픔과 기쁨, 그 모두를 위하여. 


5월의 성수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고, 지나다니는 차를 요리조리 피하며 우리는 마지막을 따라 걸었다. 카페를 나서 서울숲을 향했다. 세상은 선명한 색감으로 빛나고 있었고, 유독 바람이 풍만하게 불어주는 날이었다. 숲으로 들어가기 전, 시켜둔 커피를 기다리며 바깥의 돌벤치에 앉아 있을 때, 머리칼을 엉망으로 헝크르던 그 성큼한 촉감을 나는 기억한다. 너도 나도,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서는 서로 바라보았다. "하하 젠장, 머리가 엉망이 됐네." "전-혀, 아직 예쁘다." 나는 괜히 마음이 시려서 웃었다. 


서울숲엔 사람이 많았다. 주변 산책로의 인파를 따라 조금 걷다가, 중앙의 공원부로 들어왔다. 돗자리 하나 있었으면 참 좋았겠는데, 하던 찰나에 나무 평상 쪽에 자리가 날 듯하여 주섬주섬 자리 정리하는 사람들의 옆을 서성이다간 냉큼 앉았다. 사람들이 뛰놀고 있었다. 캠핑용품을 거하니 차려서 자리 잡은 사람이 있었고, 돗자리를 편 채로 치킨 따위를 뜯어대는 사람이 있었고, 손을 잡고 거니는 연인들이 있었으며, 멀리 노니는 아이들과 그 목소리가 있었고, 비눗방울과 풍선과 홀씨들이 날아다녔다. 


이 모든 게 보기에 아까웠다. 마치 눈 감으면 그 풍경과 시간이 멈추어주기라도 할 것 마냥 말야. 그럴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그냥 웃는다. 잡으련 들 손끝을 어르는 바람을 바라보는 듯이. 잡을래야 잡을 수 없고 잡으려 할수록 멀어만 지는 것, 풍경과 시간,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슬픔처럼 기억 속에나 새겨짐을 안다. 언제나 깊고 짙고 선명했던 내 심상, 안타까움 만큼의 깊이로 아로새길 내 마음의 판화. 바래질 이름 하나에 얼굴 하나, 헤어짐들로 이루어진 내 안, 그리움의 전시. 장차 우리 모임을 추억함에 있어, 단 한 폭의 그림으로 기억하라 한다면 이 순간으로 하지 싶다.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앉아 멀리 커다란 느티나무와 서울숲과 너와 나와 이 모든 것, 바라보던 우리의 뒷모습으로. 이렇게 그대들은 출입구의 가장 가까운 편 벽면에 또 하나의 액자처럼 걸린다. 







아 너무 아름다운 것에 대한 모든 당연한 것들, 영원을 꿈꾸게 하는, 그럴 수 없음을 알기에 나는 웃는다. 그리고 마침표가 있기에 꿈꾸어볼 수나 있을 영원과 끝의 상상이 일으키는 조바심을 먹고 맹렬히 타오르는 황홀감, 지금이라는 것의 지독한 역설을 이해하기에… 그냥 웃으려 한다. 에잇, 젠장 맞을 정도로 행복했어. 나는 마지못한 기쁨으로, 제일 먼저 돌아선다. 그리고 적어도 그것이 지루함이 아니라 기쁨이었던 한, 웃는 얼굴로 맨 먼저 돌아서는 이는 가장 늦게 떠나가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때도, 그대들은 나의 계기였다, 내게 필요한 전부. 시작이자 끝, 즉 모든 것. 나는 날아갈 준비를 마쳤고, 바람을 기다리고 있어. 다만 아주 거센 단 하나의 바람이 아니라, 줄기차게 불어올 실바람의 물결을. 이렇게 또 한줄기의 바람이 나를 밀어 올리고는 먼 하늘을 향해 떠나간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의 필연을 깊이 느낄 수 있어, 아쉬워야만 했던 것들과 그렇게만 짙은 의미가 될 수 있어 애틋해지는 것들을. 나는 드디어 알아볼 수 있어, 이별을 통해 완성되는 것들과 미래로부터 생겨나는 현재의 의미. 그리고 떠나야 하기에 전심이 될 수 있었던 것들과… 보내기 위해 내가 이해해야만 했던 것들을. 하여 나는 그대들을 보내나, 그대를 영영 보내지 않음이다. 


이번 글은 유별하게 웅변적이고 과히 정열적으로 쓰였군, 내 마음은. 이게 내 전심이다, 차마 말로서는 갈 수 없는. 우리의 마지막이 내 헤아림보다 길었더라면, 우리의 서사가 계속이 이어지는 것이었더라면 아직 태어날 수 없었을. 그렇잖아, 이렇게 뒤 없이 쏟아내 놓고 우리가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내 입장에선 얼마나 겸연쩍고 부끄러웠겠어. 그럼에도 그 해후를 두려움에 못 겨워 밀쳐내리라는 말은 아니다. 부끄러움은 잠시일 뿐이지. 그러니 온 몸으로 고대한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러나 거기까진 내 짤막한 혜안으로 가늠해볼 수 없겠으니, 아쉬운 뒷맛으로 이만 즐겁게 돌아서자. 짧았던 서사는 여기에 글이 되어 남는다. 그럼 안녕!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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