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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식 Sep 13. 2022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면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분다. 길을 걸으면 꼬릿한 은행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하고 높고 푸른 하늘은 자꾸만 나를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든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기침소리 보단 이문세의 노래를 더 듣고싶다. 영락없는 가을이다. 가을이 왔다.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모습이 아름답다. 하지만 내게는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작고 귀여운 생명체. 은빛 고운 자태를 뽐내며 수족관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소환사. 가을 전어다. 가을 전어는 집 나간 개념도 집으로 강제 소환한다. 그리고 나도 횟집으로 강제 소환된다. 전어의 계절이 왔다. 아니 전어가 왔다.

이제 나는 가을을 전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날씨로 계절을 구분하기엔 그동안 인류가 범해온 실수가 너무 많다. 올해 가을 또한 날씨보다 전어가 먼저 왔다. 노량진 횟집 유리 벽에 붙은 ‘전어개시’ 종이를 보고 가을이 온 것을 알았다. 무더위에 땀을 닦으면서도 가을이구나 했다. 우리는 전어에게 빚을 졌다. 사계절을 봄 여름 전어 겨울로 이야기해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 빚을 갚을 방법은 딱 하나다. 전어를 열심히 먹는 것.

가을 전어는 아니, 전어 전어는 다른 때에 나오는 전어 보다 뼈가 무르고 연하다. 그래서 회든 구이든 뼈째로 식탁에 오른다. 가끔 그 뼈 때문에 전어가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선천적으로 치아가 약하거나 그 거친 식감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 취향의 경우는 어찌할 수 없지만 치아가 약한 사람들에게 전어는 오히려 득이 되는 음식이다.

전어는 뼈가 그대로 있기 때문에 다른 생선처럼 조금만 씹어 넘길 수 있는 생선이 아니다. 그래서 열심히 잘근 잘근 씹어야한다. 열심히 씹다보면 문득 재밌어도 진다. 전어는 뼈를 잘게 씹어먹는 행위 자체로도 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음식물을 잘게 꼭꼭 씹어 먹다보면 어느새 치아와 턱관절은 튼튼해져 있을 것이다. 또 오래 씹어 삼키기 때문에 소화가 잘되 속도 편하다. 이 정도면 치아가 약해 걱정인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권장해야하지 않을까. 전국 치과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전어를 권해야 한다. 그라인더보단 전어가 덜 거치니까.

전어는 씹는 재미도 있지만 특유의 기름 맛도 일품인 생선이다. 회로 먹을 땐 비린 맛을 감출 정도로 적당하게 느끼하고 구이로 먹을 땐 살의 고소한 맛을 감추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느끼하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다. 맛있다고 덮어놓고 집어 먹다보면 느끼함과 비린 맛이 함께 느껴져 역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회는 항상 깻잎과 함께 먹어야한다. 상추도 좋지만 깻잎의 향긋한 냄새는 전어의 비린 맛을 감춰준다. 그리고 구이는 김치와 함께 먹어야한다. 신 김치보단 겉절이가 좋다. 겉절이의 달달한 양념이 전어 살을 더욱 달콤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회깻구김’ 이라는 공식으로 전어를 먹는다. 이 공식이라면 전어의 비린맛을 겁내는 사람들도 도전해 볼만하다. 전어를 도전하는 사람들은 꼭 기억해야한다. 전어는 회깻구김이다. 김치는 겉절이고.

전어를 먹을 때가 되면 벌써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새해를 시작할 땐 항상 밝은 마음으로 희망찬 다짐과 함께하는데 왜 연말이 가까울수록 점점 우울해질까. 크게 달라진것도 달라질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 우울한 마음이 들때면 역시 전어를 먹자. 가을에 느껴지는 우울한 감정 모두 전어와 함께 잘근잘근 씹다보면 금방 소화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건 전어로 전하는 희망 메시지다.


올 가을은 모두 전어를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늘 그렇지만 올해도 역시 다사다난했다는 연말 정리 기사를 보기전에 다사다난한 걱정들을 전어를 씹으며 미리 잊는 것이다. 우린 전어와 함께 조금 더 희망찬 연말을 맞이할 수 있다. 집 나간 개념과 함께 행복한 연말도 강제 소환시켜보자. 은빛 자태를 한 소환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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