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조각 산문

노란 나비

by 조식

2025년 11월 14일 새벽,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출근을 하다가 큰 누나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부터 해야하지? 일단 오늘 출근을 못한다고 말해야겠다. 예정되어있던 외근 일정들도 모두 미루고 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던 사람들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보낸다. 정신없이 연락들을 돌리다 회사 사람들로부터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인사를 듣고서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아, 우리 할머니가 진짜 돌아가셨구나.


너무 큰 상실감에 눈물이 차오르는 동시에 마음 한 켠에는 '이제야' 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랜 시간 요양 병원 침대에 누워 늘 집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시던 할머니를 봐서 일까, 아니면 그 슬픈 말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알기 때문일까. 두 사람의 마음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갑갑한 요양 병원 침대에서 이제야 자유롭고 평안해진 할머니를 상상하는게 갑자기 맞닥뜨린 이별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마지막 말씀이 '이제 나는 천당을 간다' 였다는 것을 알게된 후 나는 이 생각을 더욱 확신하기로 했다. 할머니는 이제야 천국의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슬픔과 안도의 복잡한 마음을 쓸어내리며 할머니의 빈소로 향했다. 매번 가던 길이 왜 이렇게 유독 길게 느껴질까. 차는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달렸지만 가는 길은 계속 늘어진다. 그 와중에 자꾸 내 차선을 끼어드는 얌체 운전자들의 이기심에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왜 머피의 법칙 같은 말로 설명할 수 일들이 있는 걸까. 왜 할머니를 데려가신 걸까.


이런 어지러운 상황을 아는건지 머릿속에는 얌체 운전자들 같은 복잡하고 불편한 문제들이 내 상실감 사이로 끼어들었다. 친구들에게 부고를 전해야할까? 어떤 단톡방에는 올리는게 나을까? '외'할머니니까 그냥 넘어가야 하나? 그동안 체득한 사회 맥락의 문제들이 내 슬픔을 더럽히는것 같아 내가 싫어진다. 이미 제일 먼저 이 부고를 회사에 알린 사람이 이런 문제에는 또 괴로워 하는게 우습다. 이래서 사람은 간사하다고 하는거구나. 나는 정말 아직도 멀었다.


내게 할머니의 죽음은 너무 크게 다가왔다. 아빠의 아빠, 아빠의 엄마, 엄마의 아빠보다 '엄마의 엄마'라는 사실이 더 그랬다. 사회는 아빠의 아빠나 아빠의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로 약속했지만 (물론 이제 이것도 옛날 일이 되어버렸지만) 내 개인적인 감정은 그렇지 않다. 사실 엄마의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남아 계셨던 부모님의 부모님이라서 그랬을까. 나는 엄마에게 이제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엄마는 내 유일한 약점이자 강점이다. 엄마가 없는 내 삶은 상상조차 어렵다. 엄마에게도 엄마라는 존재가 그럴 것임을 안다. 엄마의 엄마로부터 시작된 그 따뜻하고 숭고한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당신의 엄마를 똑닮은 큰 딸이었기 때문이다. 장례가 치뤄지는 2박 3일 내내 할머니의 사진 앞에서 주무시는 엄마를 보며 어릴적 내 모습을 떠올렸다. 마음이 편치 않거나 무서운일이 있을 때면 엄마 옆에서 자야 잠을 자던 미니어처 시절의 나. 이미 할머니가 된 엄마도 당신의 엄마 앞에선 그저 한 명의 딸이다. 그걸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하는 하관 예배에서 할머니의 관 위에 꽃 잎을 뿌릴 때, 어디선가 노란 나비가 날아들었다. 살랑 살랑 춤을 추듯 할머니가 누워계신 그 자리 위를 날다 엄마에게 날아갔다. "엄마, 할머니가 노란 나비가 되서 왔나봐" "그래 그런가봐 할머니인가 보네" 엄마는 자기를 돌고 날아가는 노란 나비를 보며 말했다. 노란 나비가 사라지는 모습을 뛰어 따라다니는 엄마를 보며 굳게 믿었다. 우리 할머니가 노란 나비가 되어 날아온 것이 맞다고. 이제 요양병원 침대를 벗어나 멀리 멀리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고. 어린 아이 처럼 노란 나비를 따라다니는 엄마를 보고 더욱 믿게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0일의 썸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