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하는 사람
지금 우리는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입는 옷, 내가 사는 집이 누구 손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자본주의 세상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농사지어 밥해 먹고, 누에고치에서 실 뽑아 옷 해 입고, 흙으로 집 지어 살라고 하면 누구나 당황해 어쩔 줄 모를 것이다. 내 손으로 내 삶을 온전히 영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 밀려나면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늘 마음이 풍전등화처럼 불안하다. 그래서 쉽게 사서 쓸 수 있는 데도 굳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며 주체성을 되찾고 위안을 얻고자 한다.
내 손으로 내 물건을 만들어 쓰는 사람들을 ‘메이커스(Makers)’라고 부른다. 메이커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배경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생산 장비의 대중화이다. 3D 프린터 등 저렴한 생산 장비가 등장함에 따라 누구나 생산 장비를 집이나 집 가까운 곳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한국에도 메이커스들이 모여 장비를 공유하는 공간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둘째는 기술 개방이다. 장비가 있어도 만드는 방법을 모르면 아무리 좋은 장비도 무용하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자신의 기술을 무료로 공개하고,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아이디어를 더해 발전시킨다. 이런 오픈 소스 덕분에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무료로 배워 만들 수 있다.
어덜트를 위한 메이커스 키트
아이를 위해 레고 사러 갔는데 아빠가 더 좋아하는 키덜트(kidult)가 많다. 키덜트는 아이(kids)와 어른(adult)의 합성어로 아이의 감성과 취향을 가진 어른을 말한다. 각박하고 비정한 현실에 치인 어른들은 반작용으로 아이의 순수한 마음과 경험을 쫓는다. 어릴 때 레고로 집 짓고, 장난감으로 비행기 만들어 날렸듯이 키덜트들도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논다.
동아시아 출판사는 2017년에 어른을 위한 과학 잡지 ‘메이커스’를 창간했다. 메이커스는 가켄교육출판이 2003년에 창간한 일본 과학 잡지 ‘어른의 과학’의 한국어판이다. 형식은 잡지이지만 주인공은 키트이다. 성인이 1~2시간 동안 조립해서 만들 수 있는 조립 키트를 매호 선보이고, 잡지는 각 키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다. 일본판은 전자기타, 드론, 로봇청소기, 스피커, 전자시계 등 60여 종의 키트를 소개하며 키덜트에게 사랑받았다. 한국어판 창간호는 일본에서 100만 개 이상 판매된 플라네타리움(천체투영관) 키트를 선보였다. 2시간가량 조립해 어두운 방에서 켜면 우주, 천체, 88개 별자리를 관찰할 수 있다. 메이커스 2호에서는 필름 카메라 키트를 선보였다. 한두 시간 집중하면 20세기 초에 유행한 고전적인 카메라 ‘35mm 이안리플렉스카메라’를 만들 수 있다.
프랑스 디자이너이자 조각가인 가엘 랑주뱅은 2012년에 3D 프린터와 초소형 카메라를 사용해 누구나 DIY로 만들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인무브(InMoov)’를 선보였다. 인무브는 사람 크기 로봇으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로 의사소통하고, 공을 줍거나 고개를 움직일 수 있다.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어 사람이 질문하면 인터넷으로 검색해 답을 한다. 설계도와 제작 과정이 공개되어 있어 누구나 파일을 다운받아 3D 프린터로 약 1500유로(188만 원)면 자신의 로봇을 만들 수 있다. 랑주뱅은 내 로봇을 만드는 감흥이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한다.
KT는 나만의 맞춤형 AI 스피커를 만들 수 있는 ‘AI 메이커스 키트’를 공개할 예정이다. 이 키트에는 내 나음대로 스피커를 만들고 거기에 원하는 기능을 더할 수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담겨 있다. AI가 나를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큰 지금,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대안은 내가 직접 내 필요에 맞게 AI를 제작해 쓰는 경험일 수 있다. 세상은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대신해 주겠다고 나서지만, 그럴수록 인간은 소외감을 느낀다.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선다. 메이커스 시장이 성장한다.
출처:
한겨레, ‘내가 쓸 물건은 내가 만든다’…무크지 ‘메이커스’ 창간
동아시아출판사, 메이커스 1호, 2호
아시아경제, “로봇, 직접 만들어보세요” DIY 로봇 대중에 첫선
『끌리는 것들의 비밀』 책 출간 안내
'CEO들의 비즈니스 코치'이자 기업 교육을 설계하는 '혁신 전문가'
윤정원 joan0823@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