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듯 뜨겁게, 타이베이
스펀폭포를 지나서 다음 목적지는 스펀 기찻길 마을이었다. 핑시선이라는 기찻길 한가운데에서 천등을 날리는 체험으로 유명한 곳으로 이번 투어에서 지우펀과 더불어 기대했던 장소였다. 이따금씩 실제 기차가 운행되어서 때문에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색적이고 운치 있었다.
언니는 우비를 입고 나는 우산을 쓰고 철길을 누볐다. 점점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스펀의 식도락 명물인 닭날개볶음밥을 지나칠 수 없었다. 닭 날개에 뼈를 제거하고 볶음밥을 채워 넣은 간단한 음식인데, 간단히 요기하기 좋고 정말 맛있었다(65NTD로 2천 원 정도). 물에 빠진 생쥐꼴로 허겁지겁 볶음밥을 먹다가 몰골이 웃겨 또 웃음이 터졌다.
배가 차자 풍경이 한층 여유 있어 보였다. 기찻길이 만드는 특유의 낭만적이고 향수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천등을 직접 날리지 않고 사람들이 천등을 날리고 즐거워하고 소원을 비는 모습을 바라만 봐도 좋았다. 투어로 오지 않았다면 조금 더 오래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 네 곳을 도는 투어에 그 정도 시간은 확보되지 않았다. 금방 또 이동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장소,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지우펀은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되었다고 알려진 마을이다. 가는 동안 묘지가 많이 보였는데, 집처럼 묘지를 꾸며 놓은 게 특이했다. 그때부터 가이드님이 대만 묘지 풍습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집처럼 생긴 그 묘지들 아래는 관이 세로로 묻혀 있다고 했다. 대만의 전통 장례 풍습이란다. 그중 영과 잘못 만난 시체는 강시가 되는 것이라고…. 비 맞아 추운 몸에 바짝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지우펀에 홍등이 많은 건 지우펀 윗동네 귀신들이 내려오지 못하게 막기 위한 것이라 했다. 흥미로웠다.
관광버스가 멈추고 마을 초입으로 이동하자 일본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스고이~!” 지우펀이 맞구나 싶었다. 영화 때문에 일본인들이 지우펀을 정말 좋아하고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홍등이 켜진 마을은 날이 어둑해질수록 생기를 띄는 듯했다. 사진으로 수없이 봤지만 직접 가본 것이 좋았던 이유는 역시 수상한 분위기였다. 어디선가 센과 치히로의 만남이 이뤄질 것 같고 어디선가 가오나시가 기어 나올 것 같은 요상한 느낌이 풍등의 그윽한 빛과 함께 느껴졌다.
마을의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은 평범했지만 골목길을 걷는 게 좋았다. 한참을 걷다가 바다가 보이는 지점에서 잠깐 멈췄다. 비가 내려서 하늘이 맑아진 건지 파아란 하늘과 바다가 정말 아름다웠다.
시간만 많으면 카페에 앉아서 줄곧 앉아 있고 싶은 곳이었다. 더 걷다가 투어팀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돌아가는데 이상하게 그곳이 나오지 않았다. 마침 나는 언니에게 귀신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인적이 드물어졌다. 점점… “여기가 아닌 것 같아…” 하며 우리는 빠르게 되돌아가기 시작했고, 우리 행방불명된 건가 하고 웃는데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때마침 아는 길이 보였다. 길에 들어서자 다시 아는 골목, 아는 사람들의 뒤통수가 보였다. 긴장이 풀리고 숨을 내쉬었다. 길었던 하루의 투어도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