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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색깔 무지개가 피는
행복한 강의의 7가지 비결

최고의 강의는 함께 끌고 가는 협의(協議)다

최고의 강의는 함께 끌고 가는 협의(協議)

일곱 색깔 무지개가 피는 행복한 강의의 7가지 비결



강의는 열정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열의(熱意)이자 정성껏 대하는 성의(誠意)이며, 모든 것을 의문시하며 던지는 질의(質議)이자 함께 의미를 찾아보는 토의(討議)다. 강의는 개념과 이론의 숨은 의미인 함의(含意)를 찾아서 깊이 사색하며 생각해 보는 숙의(熟議)이며 다양한 이슈를 자유롭게 논의(論議)하며 함께 합의(合意)에 이르는 상의(相議)다. 강의는 어떤 아이디어도 제안하는 건의(建議)이자 함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결의(決意)이며 서로 간에 믿음을 보여주는 신의(信義)이자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경의(敬意)다. 마지막으로 강의는 기존 개념의 새로운 정의(定義)이자 나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재개념화 시키는 창의(創意)다.



강의는 열의(熱意)이자 성의(誠意).


강의는 가르치는 사람의 열의와 배우는 사람의 열정이 만날 때 한 판의 멋진 춤이 된다.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주고 다양한 가능성의 여지가 있음을 알려주는 뜨거운 의지가 있는 수업은 하나의 테크닉으로 판명 나지 않는다. 진정한 강의는 가르치는 사람의 자세와 태도(attitude)가 학생과 함께 성취할 수 있는 높이(altitude)를 결정한다. 곧 태도(attitude)가 곧 높이(altitude)를 좌우한다. 이 말은 강의는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강의에 임하는 사람의 성의(誠意)가 그만큼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비록 강의기법이 어눌하다고 할지라도 강의를 통해 청중에게 진심을 전달하겠다는 의지와 의도가 전달된다면 청중은 진심이 실린 메시지에 감동받는다. 강의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는 물론 강의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를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강사가 준비했는지도 그 강의를 듣는 청중에게 마음으로 전달된다. 늘 해왔던 강의라서 대충 준비하거나 자신이 경험해 본 이야기라서 다른 관점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걸 전달하는 사람의 표정과 몸짓에도 자신도 모르게 드러난다. 



강의는 질의(質疑)이자 토의(討議)


강의는 일방적 설명과 강요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과정이다. 배우고자 하는 내용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이 왜 그런지, 지금도 여전히 유의미한지, 왜 그것이 진리로 인정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따지고 물어보면서 다른 사람과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토의를 유도하는 강의가 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배우는 계기가 된다. 강사가 사전에 준비한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여러 가지 대안이나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으로 이전과 다른 지각을 요구하는 질의가 동반되는 강의가 더 많은 깨달음과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관문을 열어준다. 의심을 넘어 의문을 품고 질의하는 상호작용의 강의가 이어질 때 미처 생각지도 못한 우발적 마주침이 일어나고, 그런 마주침 속에서 뜻밖의 깨우침이 발생한다. 시작할 때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질의와 토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생각지도 못한 생각의 지도를 발견하는 경우가 생긴다. 예측할 수 없는 뜻밖의 깨우침이 강의 속에서 발생할 때 강사는 물론 학습자에게도 놀라운 각성이 발생한다.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직선주로보다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는 질의와 토의가 이루어질 때 강의의 효과는 배가된다.



강의는 함의(含意)이자 숙의(熟議)


강의는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개념이나 법칙, 원리나 이론을 깊이 생각해 보고 사유하는 가운데 깨달음의 즐거움을 맛보는 지적 향연이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직설법도 먹히지만 때로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의 진정한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사점을 감추는 함의(implication)가 강의를 통해 전달될 때 훨씬 더 효과적인 성취감을 맛보게 할 수 있다. 함의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으면 감추고 있는 의미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강의를 통해 전달된 함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곱씹어보고 되새겨볼 때 자신의 생각도 이전과 다르게 정리가 되고 사고의 깊이도 덩달아 깊어진다.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지 않으면 본질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복잡하고 난해한 내용도 강의를 통해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강의 내용의 난이도가 높아서 어렵다기보다 강의를 통해서 전달된 의미의 깊이가 품고 있는 전달 의도를 다각적으로 생각해 보게 만들어서 메시지에 담긴 함의를 함께 숙의해보는 강의가 의미심장할 때가 많다. 강의는 함축적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고 의미의 껍질을 깨고 파고 들어가 깊이 생각해 보는 숙의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통찰의 언덕을 넘어 발견과 창조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강의는 논의(論議)이자 상의(相議)


강의는 한 사람의 정설을 그대로 따라가며 암기하고 각인하는 내면화 과정이 아니다. 진정한 강의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지금 여기서 가장 최적의 해결대안이 무엇인지를 다른 관점으로 논의하고 상의하는 과정이다. 강의는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사전에 정해놓고 그것을 향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매진하는 직선 행진이 아니다. 강의를 목적지에 이르는 노선도 여러 가지이고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도 다양하기에 때로는 우회도로를 택해 논의하고 상의하는  곡선적 각성의 과정이다. 강의는 강사의 관점이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의 문을 열어놓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의 대안이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상의하는 과정이다. 진정한 강의는 어떤 논제도 논의할 수 있으며 다양한 의견의 시의 적절성이나 효과성을 합의를 통해 도출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강의는 혼자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독창(獨唱)이나 독주(獨奏)라기보다 청중과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는 합창(合唱)이나 합주(合奏)다. 독창(獨創)도 다른 사람의 독창과 만나야 이전과 다른 독창적인 생각으로 거듭난다.



강의는 건의(建議)이자 결의(決意)


강의는 언제나 끝이 없는 영원한 미완성 교향곡이다. 강사 입장에서 언제나 부족하거나 보완해야 될 점이 있어서 강의는 미완성 교향곡이다. 청중 입장에서는 강의를 듣고 이해했다고 하지만 자기 방식으로 듣고 이해한 편견의 산물일 수 있어서 강의가 미완성 교향곡일 수 있다. 그래서 강의는 다음 미완성 교향곡을 함께 연주하기 위해 이전의 강의를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다음 강의에 반영해야 될 부분을 얼마든지 건의할 수 있다. 오늘 여기서 마친 끝 지점에서 다시 다음 시작이 이어진다. 지난 강의 때 느낀 부족한 점이나 개선할 점을 수시로 건의할 수 있는 이유다. 강의는 건의를 통해 이전보다 나아지는 방향으로 발전을 거듭한다. 건의가 없는 강의는 강사는 물론 강의 자체도 변신을 멈출 수 있다. 강의는 가르치는 사람의 일방적인 권위로 내용을 제시하기보다 청중 입장에서 듣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를 그들로 하여금 결정해서 의결할 수 있도록 도와줄 때 더욱 빛을 발하며 어제와 다른 강의로 거듭날 수 있다. 어떤 건의 사항도 수용해서 더 좋은 강의를 위해 함께 결의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의 강의가 될 수 있다.



강의는 신의(信義)이자 경의(敬意)


강의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간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전달력이 생기지 않는다. 서로 간의 믿음의 연대로 시작되지 않는 강의는 회의(懷疑)다. 믿음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앎은 생기지 않는다. 믿어야 새로운 앎의 지평이 열리고 깊이가 심화된다. 메시지 내용이나 그걸 전달하는 방법이나 기법보다 더 근본이 되는 출발점은 메시지보다 메신저에 대한 믿음이다. 메신저를 믿지 않으면 그 사람이 전달하는 모든 메시지는 가슴으로 와닿지 않는다. 강의는 미지의 세계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함께 떠나는 여정이다.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공통의 주제를 갖고 저마다의 관심과 노력으로 찾아가는 자율 여행이다. 하지만 함께 떠나는 여행으로서의 강의는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굳게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 더 많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강의는 메시지보다 메신저에 대한 신의를 바탕으로 함께 도달할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경의(敬意)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강사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수용할 때 메시지 파워는 배가된다. 신의와 경의가 없는 강의는 강제적으로 의도를 주입시키는 세뇌일 뿐이다.



강의는 정의(定義)이자 창의(創意)


강의는 기존 개념을 그대로 인정하고 암기하는 주입식 교육방법이 아니다. 강의는 익숙한 개념을 낯설게 정의하는 가운데 새로운 인식지평을 확장하고 인식깊이를 심화시키는 활동이다. 강의는 자기만의 언어로 기존 언어 사용방식을 폐기하고 대체불가능한 관점을 제시하는 과정이다. 대체불가능한 관점은 기존 언어를 부정하고 자신의 경험을 독특한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태어난다. 누군가 정의한 대로 강의를 반복하면 언제든지 대체가능해진다. 대체가능한 강의는 독자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대체불가능한 강의는 대체불가능한 자기만의 언어로 정의할 때 비로소 탄생된다. 책에 나오는 남의 정의를 그대로 암기하거나 전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진정한 창의는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개념의 정의를 나의 방식으로 다시 정의하는 가운데 일어난다. 정의를 바꾸는 강의가 가장 창의적인 강의가 되는 이유다. 정의를 바꿔서 생각해 보는 강의가 창의로 이끌어가는 견인차인 셈이다. 창의적인 강의일수록 개념정의를 다시 내리는 노력을 통해 자기만의 신념을 형성하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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