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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은 스치는 사람보다
스미는 사람입니다

스승에게 배우는 12가지 덕목과 자질

스승님은 스치는 사람보다 스미는 사람입니다


스치면 인연이지만 스미면 연인이 됩니다. 스승님은 당구공 만나듯 어느 한 시점에서 한 순간의 찰나적 부딪침으로 끝나는 인연이 아니라 한 번 만나면 영원이 지속되는 마주침의 주인공입니다.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과의 사이에는 남아 있는 추억의 이미지가 아예 없거나 안갯속의 이미지처럼 흐릿한 잔상으로 어렴풋하게 남아 있습니다. 구체적인 형상이 그려지지 않고 내 몸에 각인된 감정의 파고도 거의 만남이나 인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적 파편의 하나로 기억 속에 산재할 뿐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어느 시기에 만나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함께 의미를 부여하면서 되새기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같이 공부하는 여정을 인도해 준 스승님님과의 추억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 신체적 각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에게는 수많은 스승님과 인연이 삶의 구비마다 존재했지만 오늘날의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이 읽고 쓰고 연구하며 강의하는 삶에서 살아가는 기쁨을 발견하고 행복하게 코나투스대로 살아가는 것은 전적으로 저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몸소 보여주시고 지혜에 이르는 길로 안내해 준 스승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가장 먼저 저에게 평생의 은인이자 멘토이며 스승님님은 오갈 데 없는 제자를 학부 1학년 때부터 연구조교로 받아주시고 연구실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주신 김종량 한양대 이사장님입니다. 스승님님과의 인연은 80년 초반에 시작되었습니다. 수도공고를 졸업하고 평택화력발전소에서 2년을 근무한 다음 공고생이 고시에 합격한 감동적인 고시체험생 수기집을 읽은 덕분에 우여곡절 끝에 한양대학교에 입학할 때마다 그야말로 저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학비는 일부 장학금으로 면제받았지만 나머지 학비는 물론 먹고 자면서 생활할 기본적인 생존권이 보장된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아르바이트 덕분에 학교 가까운 곳에서 방을 얻어 다녔지만 생활고의 압박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신 관동대학교 김희배 교수님과의 놀라운 인연으로 저는 스승님(당시 교육공학과 교수님이자 기획처장님 겸직 시절)의 연구실에서 대학원 석사를 마칠 때까지 주야겸행 공부를 같이 하는 행운을 맞았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과수석을 하면 학비 전액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내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과수석을 하기 위한 대책마련으로 차 있었습니다. 공부가 재미있어서 시작한 공부가 아니라 그냥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을 계속 다니는 방법은 과수석을 하는 길 밖에 없어서 그렇게 목숨 걸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학부 4년을 교육공학과로 공부하는 동안 고시공부를 중도에 포기하고 교육공학을 평생 공부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대책 없이 공부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영어논문을 10개 정도 선택해서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완역하면서 영어 번역 실력도 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개념이 문맥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알았고 교육공학 전공 개념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교통정리가 어느 정도 되어가는 놀라운 즐거움을 만끽했었습니다. 새벽 교회 타종 소리가 들릴 때까지 읽고 또 읽고 쓰면서 공부의 밑바탕을 만들어가는 신기한 체험적 깨달음도 스승님의 배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에 부풀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다 연구실 옆방에 계시는 허운나 교수님께서 어느 날 파격적인 제안을 주셨습니다. “영만아, 이런 조건인데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교육공학 전공으로 공부하러 가지 않겠니?” 파격적이고 놀라운 제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물론 저는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는 김종량 교수님 지도를 받았지만 늘 곁에서 허교수님의 하시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성심성의껏 도와드리면서 늘 인자한 미소로 힘든 나에게 아르바이트 길도 처음으로 열어주신 은인입니다. 당신 덕분에 학부 4년, 대학원 석사 2년 동안 줄기차게 아르바이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어 공부하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끈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의 미국 지도교수님에게 일면식도 없는 제자를 추천해 주신 덕분에 교육공학의 본산지인 미국 유학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었습니다.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면서 유학준비를 했지만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요구하는 영어점수를 간신히 통과하고 석사를 마치자마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나의 능력, 특히 재무적 상태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경이로운 기적이 스승님 덕분에 열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저에게 인생의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인연의 끈이었습니다.



미국 서부 포틀랜드를 거쳐 애틀란타에서 다시 플로리다 탈라하시 공항에 도착하는 여정은 길고도 길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탈라하시 공항에서 마주친 플로리다의 고온다습한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였지만 적막한 밤하늘마저 낯선 한국의 초라한 학생을 넓은 이불로 포근히 감싸주는 듯했습니다. 먼저 온 한국 유학생들의 덕분에 집도 구하고 중고차도 사면서 현지 적응을 하면서 지도교수인 모건 교수님을 처음 대면한 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낯설지만 무한한 따듯함을 느낀 막막하지만 포근한 만남으로 기억되는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습니다. 장학금과 일부 생활비까지 지원받는 조건으로 모건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모시고 잘 들리지도 않는 영어 수업을 듣고 영어로 쓰는 피 말리고 정말 피곤한 유학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는 형편이라 낮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수업을 들은 다음 저녁부터 바 12시까지는 일식당에서 아르바이로 부족한 미국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12시 즈음 집에 오면 씻고 딸매니를 잠깐 돌본 다음 책상에 앉으면 새벽 5시가 순식간에 다가옵니다. 강인한 체력이 없으면 뇌력도 나올 수 없음을 생존차원에서 깨닫고 시작한 운동이 오늘의 유영만을 만든 가장 강력한 원동력입니다.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 9시 전후에 일어나 다시 루틴을 반복합니다. 도서관에 들어오는 나의 관심분야 관련 신간 도서나 저널 논문을 샅샅이 찾아서 읽고 복사해서 반복해서 보면서 원 없이 학문적 지평을 넓혀나가며 공부하는 여정에서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고 거기서 얻는 깨달음의 희열이 그 공부를 그만두려야 그만둘 수 없게 만드는 욕파불능(欲罷不能)의 대열로 뛰어들게 만들었습니다. 교육공학 전공 수업은 최소한 의무 이수 과정만 듣고 나머지 시간에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시각과 관점을 다르게 갖게 만들어주는 다양한 과목을 들으며 딴생각을 키운 덕분에 오늘의 융합적 안목과 접근논리로 공부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새롭게 만난 혼돈이론과 학습조직론, 현상학적 해석학적 비판적 체제이론과 철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관점으로 나의 전공분야를 다르게 보고 접근하는 논리를 몸소 배웠습니다. 지도교수님의 전폭적인 지원과 아낌없는 관심과 사랑 덕분에 3년 남짓 못한 기간 안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모건 교수님은 저에게 진정한 삶의 멘토이자 스승님이 걸어가는 길에서 보여줄 수 있는 진면목을 몸으로 알려주셨습니다. 무한한 신뢰와 사랑 덕분에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공자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지혜를 깨우쳤습니다. 믿어야 앎이 생기고 믿어야 그다음 단계의 차원 높은 앎의 열매가 열릴 수 있다는 깨달음을 관념의 언어가 아니라 몸의 언어로 보여주셨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대학친구 덕분에 삼성인력개발원과 연결되어 석사와 박사학위 받을 때까지 공부했던 이론적 관점과 개념적 파워가 현실에서 얼마나 먹히거나 무력한 지를 몸소 깨닫는 경험적 실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석사(碩士)가 돌 석(石) 자일 수 있고 박사(博士)가 엷을 박(薄) 자가 될 수 있음을 격전의 현장에서 근무해 본 경험 덕분에 뉘우치고 깨우치며 앞으로 공부를 통해 축적해 나갈 앎의 방향과 성격을 재설정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경험이 없는 개념은 관념이고 개념이 없는 경험은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 야성이 없는 지성은 지루하고 지성이 없는 야성은 야만으로 흐를 수 있는 깨우침, 재미가 없는 의미는 견딜 수 없는 답답함이고, 의미가 없는 재미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될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계기(契機)이자 전기(轉機)가 바로 삼성인력개발원 근무시절이었습니다. 그 시기는 책상에서 배운 이론적 생각이 왜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수많은 모델로 프로세스대로 현장에서 왜 프랙티스 되지 않는지, 그 간극과 격차는 어떤 방법으로 줄여나갈 수 있는지를 신체적으로 각성하는 구체적이고 맥락적인 사유이자 사고방식의 혁명이 일어나는 사건이었습니다.


98년 3월에 경북 안동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로 갔다가 2001년 9월 모교로 돌아오면서 84년도에 입학한 교육공학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 먼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고, 그 힘들고 험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비마다 스승님들 덕분에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소중한 삶의 지혜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인생의 시기별로 다가왔던 시련과 역경은 나에게 앓음 다운 경력으로 뒤바꾸는 역전의 노하우를 익히는 전화위복의 시간이 되었고, 극심한 생활고 덕분에 재무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배움의 즐거움과 희열이 주는 소중한 의미도 배웠습니다. 파란만장했고 우여곡절이었고 절치부심했지만 그 모든 경험이 책을 쓰고 논문을 작성하며 강의를 하는 소중한 재료로 쓰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잡다한 경험이었지만 작가적 상상력의 밑재료로 쓰임을 받는 소중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쓰면 쓰임도 달라지지만 쓰지 않으면 쓰러진다는 각오로 100여 권의 책을 출간하는 다작가가 되었고,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삼을 버무리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청중에게 울림을 주는 강연가가 되었습니다. 몸소 가르쳐주신 스승님 덕분에 쌓아 올린 금자탑입니다.


그동안 스승님들에게 배운 소중한 가르침과 가리킴을 토대로 삶의 스승님으로서 당신들이 보여주신 위대한 족적과 경이로운 지침을 12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나에게 12가지 스승님의 덕목과 자질, 역할과 위상은 아직 갈 길이 먼 이상적 지향점에 놓여 있습니다. 남은 생을 저에게 삶의 스승님이 되어주신 당신들처럼 살아가기 위해 더 낮은 자세로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스승님의 12가지 의미


스승님은 미래로 향하는 꿈을 함께 스케치하는 분이자 공부하는 틀이나 범위를 한정하지 않고 언제나 크게 스케일을 가질 수 있도록 언제나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보살펴주시는 스폰서입니다. 스승님은 제자가 전경으로 드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드러내주는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이자 창조적 스파크가 어느 순간 폭발할 수 있도록 창의적 생각을 잉태하게 만드는 직간접적 경험의 산증인입니다. 스승님은 틀에 박힌 스투디움 자극보다 푼크툼의 자극으로 앎의 상처를 만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기존 스키마에서 벗어나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인생 전기(傳記)를 위한 스위치 제공자이기도 합니다. 스승님은 굽힘으로 힘을 축적해서 도약하는 스프링의 지혜를 안겨주시고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대로 살아가면서 몸으로 겪어본 고유한 스토리로 대체불가능한 스타일을 창조함으로써 복사본이 아니라 원본으로 나답게 살아가는 삶을 가르쳐준 삶의 철학자입니다.


스승님은 미래로 향하는 꿈을 함께 스케치하며 스케일을 키워나가는 안내자입니다


스승님은 스케치(sketch)할 수 있는 준비와 예비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배려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면서 자유로운 열정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시도해도 만들고 싶은 미래의 작품에 대한 이미지를 스케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줍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내가 어떤 구도와 구상으로 스케치하는지에 따라 내가 상상하는 미래를 현실로 캐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케치는 한 번의 노력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완성했다고 하는 순간 그 스케치는 나를 지금 여기에 가둡니다. 스케치는 그래서 완성된 형태로 정체된 고정적 명사가 아니라 시시각각 부단히 변신을 거듭하며 언제나 미완의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역동적인 동사입니다. 스케치는 언제나 그래서 도래할 미래의 이미지(Image to come)입니다. 스승님은 도래할 이미지를 기반으로 전대미문의 질문을 던져 낯선 관문을 열어가게 만들어줍니다. 꿈은 그래서 책상에 앉아서 관념적으로 꾸게 하지 않고 몸으로 직접 부딪혀가면서 미지의 이미지를 계속 상상하며 스케치하게 만듭니다. 스케치가 스티커처럼 현실의 어느 지점에 안착해서 부착되는 순간 미래로 가능성의 문도 닫힙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미스터리입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아는 방법은 부단히 목적지 모습을 스케치하면서 한편으로는 몸을 던져 꿈의 목적지로 가능 지루하고 고단한 실행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스승님은 스케일(scale)을 크게 그릴 수 있는 꿈을 품게 만들어줍니다. 스케일이 작아지면 그걸 기반으로 생각하는 기반은 물론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꿈의 크기도 줄어듭니다. 나아가 스케일이 작아지면 똑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틀에 박히게 되고 많은 제한을 만들어 스스로 주어진 판에 박혀버리게 만듭니다. 스케일은 일이나 계획 따위의 틀이나 범위입니다. 스승님은 가급적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정확한 프로세스를 고민하기 이전에 우리가 지향하는 원대한 목적의식과 견딜 수 없는 난관돌파에 대한 의지, 그걸 실현하고 싶은 강렬한 열망으로 함께 도달하고 싶은 미지의 이미지를 함께 그려보는 상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삶은 계획대로 풀리지 않고 생각한 대로 실현되지 않는 일이 더 많아 언제나 문제 투성이입니다. 문제가 없는 삶이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얽힌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가면서 내가 이런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 일을 통해 나는 무슨 의미와 가치를 창조할 것이고, 그 과정에 몰입하는 나는 진정 즐거움으로 만끽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게 우선적인 전제조건이다. 함께 도달하고 싶은 꿈의 목적지에 이르는 여정에서 스케일을 스스로 조정하면서 심장 뛰는 삶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지혜를 몸소 가르쳐주신 사람이 스승님입니다.



스승님은 따듯한 손길로 맞이해 주는 스폰서이자 언제나 전경으로 등장하게 만들어주는 배경입니다


스승님은 스파르타식으로 강하게 훈련시키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따듯한 온기를 품고 손 내밀어주는 영원한 스폰서(sponsor)입니다. 타자에게는 따듯한 봄기운을 담아 보살피고 어루만져 주지만 자신에게는 한겨울 서릿발처럼 냉혹하게 대하라는 양면성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옳지 않은 일, 함께 지키기로 약속한 규칙과 원칙에 위배되는 생각과 행동을 하면 죽비처럼 사정없이 내리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온기 품은 눈길로 그동안의 힘든 배움 여정을 위로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위로는 괜찮다는 달콤한 유혹의 마사지가 아닙니다.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지금부터는 더 냉정하게 자신을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반성하고 성찰하라는 각성의 메시지입니다. 더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살아가면서 배움의 경지에 오르는 여정에 게으름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를 애초부터 잘라버리는 스승님의 가혹한 가리킴의 신호탄입니다. 스승님은 구체적인 방법으로 가르침을 주기보다 함께 가보자는 제안을 던져 놓고 거기까지 가는 방법을 스로 탐색하면서 방향을 찾아가는 가리킴의 메시지를 제자와 함께 공유합니다. 스승님이 후원자로 자리매김을 하는 까닭은 제자가 갖춰야 할 덕목과 자세, 자질과 역량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지원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화두가 되는 이슈를 논의한 다음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을 함께 모색하는 과정에서 믿고 기다려주는 든든한 밑받침으로서의 응원입니다.


스승님은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언제나 제자를 향해  밝혀줍니다. 함께 꿈을 꾸고 공부하는 여정에서 일이를 발견하는 즐거움 속에서 진리를 찾아가는 고단한 여정에서도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서 제자들이 전경에 드러날 수 있도록 배경으로 작용합니다. 장미꽃이 더욱 돋보이도록 스승님은 언제나 안개꽃이 되어 제자들의 진가를 고스란히 드러내줍니다. 힘든 난관에 직면해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솔선수범의 리더상을 몸으로 보여주면서도 스승님은 함께 만든 위대한 학문적 성취결과에 대해서는 늘 바깥으로 빠져 있습니다. 스승님은 제자들 덕분에 이룬 사회적 합작품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깨달을 수 있도록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관찰합니다. 스승님은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언제나 연구하고 개발하는 배움의 길목에서 에스프레소 커피처럼 모든 커피에 다 들어가면서 본인의 행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언제나 책임은 다 지면서도 성공의 주인공은 제자로 만들어줍니다. 팀으로 함께 하면서도 스타플레이어는 제자가 될 수 있도록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소프라노나 테너의 목소리가 더 울려 퍼지도록 알토는 자기 본분을 다하면서도 자기 존재를 자랑하지 않듯, 스승님은 언제나 주어진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면서도 밤하늘처럼 제자들을 별이 빛나게 해 줍니다.



스승님은 창의적 스파크로 스투디움과 같은 틀에 박힌 자극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스승님은 창조의 스파크(spark)를 선물로 주는 사람입니다. 창조의 스파크는 아무 때나 튀지 않습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비로소 연상장벽이 깨지면서 다양한 이종결합이나 이연연상(二連聯想)이 일어나면서 창조의 스파크가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주역의 사자성어, 물극필반(物極必反)처럼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전을 시작하듯, 창의성을 촉발기 키는 데이터 베이스 안에 다양한 연상재료들이 범람할 정도로 축적되면서 문제의식이나 위기의식을 만나면서 목적의식을 품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스승님은 빠른 길보다 돌아가는 길 속에서 우회적 깨달음의 선물을 줍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실패를 체험하는 마주침을 통해 그 속에서 깨우침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여건과 무대를 마련해 줍니다. 직간접적인 경험적 재료가 양적으로 축적되면서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양자도약 현상이 일어납니다. 스승님은 제자가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판단착오를 줄일 수 있는 경이로운 놀라움이 창조의 스파크로 화답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멀리서 지켜봅니다.


스승님은 스투디움(studium)의 자극보다 푼크툼(punctum)의 자극을 선물로 주시는 시각적 각성자입니다. 스투디움은 작품을 보는 사람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공유되는 길들여진 감정입니다. 이에 반해 푼크툼은 ‘작은 구멍’ 혹은 뾰족한 물체에 찔려 입은 부상‘이란 뜻으로,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감정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화살같이 날아와 폐부를 찌르는 낯선 자극이자 상처가 바로 푼크툼입니다. 스승님은 푼크툼의 세계로 보이게 만든 낯선 개념을 습득하게 함으로써 그저 그렇게 보였던 세계가 다른 자극으로 각인되면서 깊은 앎의 상처가 만들 수 있게 다양한 자극에 노출시켜 줍니다. 스투디움 같은 스테레오 타입 자극에서 벗어나 낯선 자극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오감각을 열게 만드는 과정이 바로 스승님이 우리에게 주는 배움이라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결국 익숙한 스투디움으로서의 상황을 푼크툼으로서의 낯선 맥락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입니다. 스승님은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만나 특이한 경험을 어제와 다른 차이를 반복하면서 뜻밖의 깨달음을 얻게 끊임없이 낯선 자극을 제공하는 자극설계자입니다. 



스승님은 새로운 스키마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드는 스위치입니다


스승님은 스키마(schema)입니다. 스키마는 외부의 환경에 적응하도록 환경을 조작하는 감각적, 행동적, 인지적 지식과 기술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스승님을 만나기 전의 스키마는 미숙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은 물론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능력도 미천했습니다. 스승님을 만나는 순간 이전의 스키마는 혁명적인 변신을 거듭합니다. 칸트에게 스키마는 선험적인 동시에 감성적인 상상력의 소산입니다. 하지만 선험적인 스키마도 어떤 스승님을 만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감성적 지각능력을 습득,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기반으로 작용합니다. 새로운 스키마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어떤 사상(事象)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근본적인 틀과 형식도 혁신적으로 변화됩니다. 스승님을 만나는 위력은 바로 새로운 스키마를 지님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인식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데 있습니다. 기존의 익숙한 코드를 탈코드화시켜 새로운 해석적 프레임이 생기도록 부단히 노력을 거듭하면서 자신만의 코드로 재무장할 때 이전과 전혀 다른 스키마로 재코드화를 거듭하며 성장을 넘어 성숙을 지향합니다.


스승님은 스위치(switch)입니다. 스위치는 어둠을 빛으로 전환시키고, 빛을 다시 어둠으로 되돌리는 마법의 전환점을 마련합니다. 스승님과의 만남 자체가 스위치입니다. 인생은 스승님과의 만남 이전과 이후로 구분됩니다. 스승님을 만나기 전에 암담한 현실 속에서 막막한 미래를 두려움과 불간감 속에서 감내하며 지내다 스승님을 만나고 난 이후부터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는 계기가 됩니다. 스승님은 언제나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 배움의 과정임을 몸으로 보여줍니다.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갈수록 사고방식의 혁명이 일어나는 지점을 여러 번 만납니다. 사람은 이런 모멘텀의 순간에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스승님이라는 스위치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며 새로운 운명을 창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스승님은 머무는 자리 나 영토에 안주하기보다 낯선 세계로 부단히 탈주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학문적 영토를 구축하는 일에 게으름이 개입되지 않도록 격려하고 배려하는 전환기입니다. 



스승님은 굽히며 기다리는 스프링에서 자기 보존의 욕망을 찾아내는 스피노자입니다


스승님은 스프링(spring)입니다. 험난한 세상의 무게가 짓눌러도 눌림을 당했다 다시 힘을 비축해서 치솟아 오르는 내성의 소중함을 몸소 가르쳐주신 분입니다. 굽힘은 좌절과 절망, 포기와 의욕상실이 아니라 더 멀리 뛰기 위한 준비동작이자 치밀한 의중입니다. 굽힌 굴곡에 숨은 내공이 급류가 흐르는 강물도 뛰어넘어 이쪽에서 저쪽으로 도약한 저력입니다. 스승님은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낮은 곳으로 임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비략을 몸으로 보여주시는 솔선수범의 모델입니다. 스승님은 굽힘 속에서 진정한 힘을 비축했다가 힘든 순간에 힘이 들어가게 단련하는 산증인입니다. 스승은 비록 지금은 짓눌려 있지만 짓눌려 있는 동안에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고 거기서도 교훈을 얻어내려는 집요한 학습자이기도 합니다. 스프링은 또한 봄입니다. 어제와 다르게 보는 방식을 바꿔서 봄을 맞이하는 순간 늘 반복되었던 봄도 어제와 다르게 반복해서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스승님은 우리에게 어제와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을 기를 수 있도록 눈높이와 각도를 바꿔가는 연습기회를 마련해 줍니다.


나에게 스승님은 스피노자(Spinoza)의 코나투스를 일깨우는 사람입니다. 종교적 파문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외로움보다 고독력으로 버티고 견디며 렌즈를 깎았습니다. 반복되는 루틴(routine)으로 루트(root)를 내린 덕분에 아래로 뻗은 뿌리의 깊이를 심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뿌리가 깊어야 세상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뿌리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실존을 지속하려는 본능적 노력이자 관성이며 자신의 존재를 더욱 강화시키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힘이 바로 코나투스입니다. 스승님은 자신의 코나투스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와 무대를 마련해 주는 보이지 않는 후원자입니다. 스승님은 다른 사람의 코나투스에 물들어 복사본 인생을 살기보다 나의 본능적 욕망의 물줄기를 잡고 나답게 살아가면서 원본의 가치를 드높이는 삶을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의 근원지입니다. 타자의 욕망(慾望)을 욕망하다 욕(辱)만 나오는 인생을 끊어버리고 나에게 기쁨을 주는 코나투스대로 살아가는 삶만이 가장 행복한 삶임을 일생을 통해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스승님입니다.



스승님은 자기만의 스토리로 대체불가능한 스타일을 창조합니다


스승님은 무엇이든지 앉아서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스타트해서 도전하는 자기만의 스토리(story)를 만들어가는 길로 안내해 줍니다. 남의 개념이나 논리,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사고의 식민지로 종속되어 살아가지 않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나감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감동적인 선물을 줄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되는 길을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스승님입니다. 스승님은 그래서 입으로 가르치지 않고 몸으로 보여줍니다. 관념의 제단에서 아래로 명령하거나 지시하는 가르침보다 제자보다 더 낮은 현장에서 현실과 싸우며 진실이라는 보석을 몸으로 캐냅니다. 스승님은 관념적 머리의 언어로 가르치며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 몸소 겪어본 구체적인 신체성이 가미된 몸의 언어로 설득합니다. 스승님은 ‘교육학’을 책으로 가르치지 않고 ‘교육’을 현장에서 몸으로 가리킵니다. 스승님은 지리학을 책상머리에 논하지 않고 김정호처럼 발로 뛰면서 현장 지리를 대동여지도로 완성합니다. 스승님은 경영학을 통계적 논리와 숫자로 가르치지 않고 삶에서 주고받음의 미덕을 삶의 경영으로 보여줍니다. 나만의 고유한 문제의식과 서사가 담긴 나만의 이야기로 세상을 가장 아름답고 나답게 바꿔가는 영원한 미완성의 여정을 몸으로 보여주시는 스승님입니다.


스승님은 스타일(style)을 창조합니다. 스타일은 자기만의 고유한 컬러에서 비롯됩니다. 색깔은 그 사람만이 드러나는 맛깔난 사람다움의 증표입니다. 색깔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저마가의 삶의 색깔로 색다르게 살면 저절로 남다는 독특한 스타일이 드러납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컬러를 갖고 컬러풀(colorful)한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움의 극치가 바로 컬러풀한 인생입니다. 스타일은 남과의 비교에서 나오지 않고 전보다 잘하려는 본능적 욕망의 추구에서 나옵니다. 결핍이나 부족한 게 충족되면 거기서 끝나는 한시적인 욕구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끝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욕망이 그 사람의 스타일을 만들어갑니다. 욕구는 남과 비교하지만 욕망은 어제의 나와 비교합니다. 욕구는 남과 동일해지려고 부단히 꾸미지만 욕망은 어제와 달라지기 위해 자신을 가꿉니다. 스타일은 인위적으로 창조하는 게 아닙니다. 스타일은 대체불가능한 나만의 단독적인 고유함에서 비롯되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이자 카리스마입니다. 스승님은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저마다의 고유한 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해 누구의 삶과도 비교불가능하고 대체 불가능한 단독적인 인생을 몸으로 알려준 화신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238쪽). 신영복 교수님의 《처음처럼》에 나오는 말입니다. 더 낮은 자세로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물을 포용하는 바다의 지혜를 배웁니다. 가르치지 않지만 가르치는 진정한 스승님의 길이 무엇인지 배움의 여정에 열정을 더해가려고 합니다. 여정도 열정도 끝이 없습니다. 언제나 오늘 지금 이 순간에 보여준 수준에서 잠시 멈춰 서 있을 뿐, 영원한 미완성 교향곡을 연주하기 위한 여정에서 어제와 다르게 열정적으로 몰입하며 만끽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나를 취(醉)하게 만드는 취향(趣向)을 만끽하며 읽고 쓰고 전달하는 삶은 다른 사람도 취(醉)하게 만듭니다. 흠뻑 취해야 홀딱 빠질 수 있고, 빠져야 빠져나오기 어려워 이전과 다른 감동에 어제와 다르게 빠질 수 있습니다. 취(醉)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깨달음의 향연을 자기 방식대로 즐길 수 있고 취(取)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스승님의 철학과 삶에 흠뻑 빠져 당신들이 전해준 소중한 삶의 교훈을 취했습니다. 제가 늘 비추어 생각하고 판단하며 삶의 지침으로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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