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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없이 실력도 없다!

색다른 ‘시행착오(실패)’가 어제와 다른 판단착오를 줄여준다!

실패 없이 실력도 없다

색다른 시행착오(실패)’가 어제와 다른 판단착오를 줄여준다!



아산나눔재단이 청소년들의 기업가정신을 키워주기 위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마련된 ‘2024 아산 유스프러너 데모데이’에 초중고교 학생, 교사, 학부모, 스타트업 및 행정부처 관계자 등 약 2천여명의 참관객이 참여했다. ‘꿈의 항해(The Quest)’라는 콘셉트로, 청소년들이 스타트업 현직자나 또래 친구들과 함께 기업가정신을 도전적으로 육성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찾아가는 여정을 지원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였다.



나는 올해 처음 마련된 ‘실패 페스티벌’ 세션에서 실패 없이 실력도 없다는 주제로 메인 강연을 했는데, 강연 시작전에 강연장을 둘러볼 느낌은 오늘 강연은 실패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강한 확신이 들 정도로 강연장은 소란이 치솟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전시회를 겸하는 그 넓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한 야외 강연장처럼 마련된 곳에서 난생 처음 강연하는 도전을 경험했다. 나의 강연 뒤에 펼쳐진 ‘천하제일 망함 대회’처럼 내 강연도 천하제일 망하는 지름길로 가는 배를 탄 기분이다.



그런데 강의를 안 할 수도 없고 일단 상황파악을 한다음 강연자료를 즉석에서 대폭 줄이고 흥미를 이끌면서 재미와 의미를 다 잡는 시나리오로 수정했다. 무대 위에 올라가서 30여년 강연을 해본 경험을 살려 가장 큰 목소리로 열정적인 강연을 시작했다. 프로는 상황과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는 게 나의 철칙, 무대는 열렸고 강연은 시작되었다.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강렬한 목소리로 좌중을 제압하면서 본래 시나리오와는 다르게 청중의 호기심과 주의를 집중해서 오늘 준비한 실패의 6가지 의미를 나의 경험적 깨달음에 비추어 하나씩 풀어나갔다.



청중의 눈동자는 빛나기 시작했고, 몰입감이 증가하고 있다는 직감적 판단이 들면서 엄청난 관중의 시끄러운 데모행사에도 불구하고 나의 강연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에 짧은 질문을 던져 관중의 주의집중을 유도하면서 나의 100번째 책, #코나투스 도 선물로 주었다. 준비해간 강연자료대로 하지 않고 에피소드를 통해 깨달은 경험적 실패로부터 배운 교훈을 중심으로 50분간 열강을 하면서 관중들의 열광을 끌어내, 강연장의 열기는 폭염을 능가할 정도로 감동의 도가니탕을 만들었다고 자평한다.


실패의 첫 번째 의미는 “다시 하라”는 재도전이다. 네 살 아들이 스마트 폰으로 게임을 하다가‘fail’이 뜨자 좋아했다. 의아해진 아버지가 묻는다. ‘fail이 무슨 뜻인지 아니?’ ‘응, 아빠, 실패라는 뜻이잖아.’ ‘그러면 실패가 무슨 뜻인지는 아니?’ ‘그럼, 아빠. 다시 하라는 거잖아.’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에 나오는 말이다. 어른들이 실패에 대한 해석과 자못 다른 아이들의 실패에 대한 해석은 실패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재해석해보는 본보기가 된다. 이런 점에서 Fail이라는 영어 단어의 의미는 “First Attempt In Learning”, 즉 처음으로 시도해보면서 배우는 과정이다.



두 번째 실패의 의미는 가능성의 발견이다. 돼지는 목뼈 구조상 일정한 각도 이상 목을 들지 못해서 평생 하늘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슬픈 짐승이다. 그런데 돼지가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걷다가 발을 잘 못 디뎌서 넘어지는 것이다. 넘어져야 신세계를 볼 수 있다. 세상에는 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푸른 하늘도 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볼 수 없었던 하늘을 넘어지면 볼 수 있다. 우리는 가끔 넘어져야 평상시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단 어제와 다르게 실패를 해봐야 새로운 실력을 쌓을 수 있다. 비슷한 실패가 반복된다는 의미는 어제와 다르게 도전하지 않고 실패에서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는 증표다.



실패의 세 번째 의미는 방법 개발이다. 법은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없지만 방법은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 법은 책상에서 만들지만 방법은 반드시 어제와 다르게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개발할 수 있는 실천의 산물이다. 자전거 국토완주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면서 친구하고 섬진강 자전거 종주를 위해 버스에 자전거를 실고 고속도로를 3시간째 가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가 심각한 어조로 “교수님, 우리가 버스를 잘 못 탔다”는 것이다. 이 버스가 전라남도 강진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섬진강을 가려면 전라북도 강진행 버시를 탔어야 하는데. 그 순간 친구를 야단치는 심판자형 질문을 던져 질책하지 않고 학습자형 질문을 던져 가능성이나 대안을 탐색하는 질문을 던졌다. 버스 잘 못 탄 것은 기정사실이니까, 그럼 우리가 지금 상황에서 난국을 돌파하는 좋은 대안은 없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버스 기사를 설득해보겠다고. 우리는 정말 버스 기사를 설득, 고속도로 중간에서 버스를 세우고 가까운 톨게이트를 찾아 섬진강 자전거 도로를 종주했다. 난국을 돌파하는 학습자형 질문을 던져 법대로 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 실패의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것이다.



실패의 네 번째 의미는 당연함의 부정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신념도 몸으로 겪어보지 않고서는 통념인지를 알 수 없다. 2015년 킬리만자로 정상 등반 마지막 날, 4700m 베이스 캠프에서 밤 11시에 정상으로 향하는 출발 와중에 어둠이 걷히고 먼동이 터오기 전에 올라 가도 올라 가도 정상은 우리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위기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런데 진퇴양난의 위기는 없었다.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 가면 옆으로 가면 길이 보인다는 사실을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깨달았다. 문은 앞문과 뒷문만 있는 게 아니라 옆문도 있다. 눈을 돌려 관점을 바꾸고 질문을 던지면 새로운 관문이 열린다. 마침내 정상을 등반하고 내려올 때,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는 고은 시인님의 시가 생각났다. 하지만 이 시도 잘 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밤 11시에 정상등반 여정을 시작, 잠을 못자고 출발해서 내려갈 때 졸려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래서 이 시를 이렇게 바꾸었다. “내려갈 때도 못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이처럼 우리가 옳다고 믿고 있는 신념도 통념일 수 있음을 겪어봐야 알 수 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보면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갈매는 근시라서 멀리 못 본다. 



    실패의 다섯 번째 의미는 상상력의 촉발이다. 수도공고를 다니면서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증 첫 번째 도전 체험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던 적이 있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실패경험이기도 했던 용접기능사 자격증 시험에서 용접기 온도조절을 잘 못하는 바람에 철판에 그만 구멍이 크게 뚫어져버렸다. 순간 들었던 생각은 어차피 불합격된 것으로 판명될 것이기에 화풀이로 철판에 구멍을 크게 뚫어본 적이 있다. 그 덕분에 철판만 생각하면 보름달이 연상된다. 용접 실패 경험 덕분에 철판을 생각하면 보름달이 연상되는 경험적 상상력이 생긴다. 경험적 상상력만이 창조로 연결된다. 경험해보지 못한 상상은 공상이나 망상, 환상이나 몽상으로 전락한다. 실패 경험을 거울 삼아 다시 연습 끝에 재도전해서 전기용접 기능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의 기쁨은 상상을 초월했다. 연상은 경험이 재료다. 경험을 바꾸지 않으면 연상도 바뀌지 않는다. 막걸리 하면 연상되는 단어다. 주로 등산을 갔다 오거나 비오는 날, 파전, 등상이다. 우리는 주로 비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를 마셔본 경험 덕분에 막걸리와 관련된 연상세계가 생긴 것이다. 이제 막걸리를 비오는 날 마시지 말고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빈속에 3병 정도 마시고 취해서 회사를 못 갔던 아픈 경험이 있으면 이제 막걸리는 비오는 날이 아니라 새벽을 떠올리게 만드는 단어로 바뀐다.



실패에 대한 마지막 의미는 자기 정체성의 발견이다. 실패를 해보지 않으면 나의 코나투스가 통하는 일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코나투스는 마주침의 산물이다. 해보지 않고서는 나에게 기쁨을 주는 일인지, 슬픔이나 아픔을 주는 일인지 알 수 없다. 한 때 드럼치는 사람이 멋있어 보여서 3년간 연습하고 공연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생각만큼 드럼 실력은 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악보를 외우다시피 해서 몇 번의 공연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드럼 공연 전날 다리가 떨리는 경험이 반복된다는 걸 알고, 나에게 공연은 코나투스가 통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반면에 강연하기 전날은 기쁨이 배가되면서 코나투스가 폭등하는 경험을 반복해서 할 때 나의 삶은 명랑하고 행복해진다. 



실패는 거울이자 창문이다. 성공은 사람을 자만하게 만들 수 있지만 실패는 사람을 겸손하게 반성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거울에 비추어 냉철하게 자기반성을 거듭하면서 실패를 통해 색다른 깨달음의 즐거움도 맛보면서 어제와 다른 실력이 쌓인다. 실패를 통해 축적된 실력은 이제 세상을 어제와 다르게 내다볼 수 있는 관점과 시각의 창문을 만든다. 새로운 관점으로 내다보는 관점의 창문은 나를 색다른 관문으로 이끄는 또 다른 출발점이자 모멘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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