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바로 ‘딥러닝(Deep Learning)’입니다. 딥러닝은 인간의 뇌 작동 원리를 모방한 인공신경망을 토대로 반복해서 학습하게 함으로써 일정한 패턴과 규칙을 깨닫게 만드는 학습입니다. 예를 들면 럭비공과 축구공을 주고 럭비공이 무엇인지를 알아맞히게 하는, 즉 문제와 정답을 모두 알려주고 반복학습을 통해 정답을 맞히는 학습방식도 있고, 답을 가르쳐주지 않고 반복해서 원하는 정답의 공통된 속성이나 패턴을 찾아가게 만드는 학습방식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답을 맞히면 보상을 강화하고 틀리면 처벌을 최소화시켜 정답을 맞히는 방향으로 강화시키는 학습방식이 있습니다. 딥러닝이 결정적으로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게 된 계기는 하드웨어의 발전을 들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강력한 성능을 가진 GPU(그래픽 처리 장치)와 HBM(고대역폭 메모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규모 데이터량을 빠른 속도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딥러닝은 전통적인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함은 물론 처리하는 데이터 규모나 양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한 층 더 고도화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머신러닝이 수많은 데이터 패턴을 보여주고 단순히 주어진 한계 내에서 스스로 따라서하는 학습하는 배우는 기계라면 딥러닝은 인간의 신경망을 모방, 마치 인간의 두뇌가 학습하는 방식을 모방하며 인간의 뇌처럼 배우는 기계입니다. 딥러닝은 반복해서 문제를 풀면서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판단착오를 줄여나가는 놀라운 학습방식입니다. 틀린 문제를 만나면 다시 고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오차를 최소한으로 줄여나가며 점차 예측능력도 높여나갑니다. 마치 암기식 학습을 하는 것처럼 반복해서 공부하면서 딥러닝은 틀렸으면 왜 틀렸는지, 틀린 점에 주목하면서 다음 문제를 틀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학습하면서 틀리고 확률을 앞단의 문제 풀이 과정에서 나타난 오차를 줄여나가는 학습입니다.
모방하고 연합만 반복하면 가능성을 능가하는 학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AI가 자주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학습방식은 모방 학습(Imitation Learning)입니다. 모방 학습은 롤모델이나 해당 분야의 경지에 이른 전문가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서 수행함으로써 목표로 삼고 있는 행동을 반복해서 배우고 익히는 학습입니다. 모방학습은 전문가가 해당 분야의 전문성 경지에 어떻게 이르게 되었는지를 정리해 놓은 각종 참고서나 일정한 프로세스로 정립된 매뉴얼을 활용해서 학습하는 방식입니다. 과목별 대표적인 일타강사가 시험에 나올법한 문제를 선별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지를 마치 족집게 과외를 받듯이 학습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효율적인 학습 방법이기는 하지만 상황이 전혀 맥락으로 일반화시켜 확산 적용하기에는 여전히 한계나 문제가 많습니다. 매뉴얼에 처방된 논리나 프로세스대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과정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적 식견과 안목에는 여전히 역부족입니다. 이런 점에서 족집게 과외 강사가 가르쳐주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기존의 학원 교육은 주어진 매뉴얼이나 사전에 처방된 로드맵을 그대로 따라가는 모범생만 대량 양산할 뿐, 자칫하면 인공지능에 지배당할 수 있습니다.
AI가 자주 사용하는 학습 방법 중에 ‘연합 학습(Federated Learning)’도 있습니다. 연합 학습은 다수의 로컬 클라이언트에 연결된 학습자가 주어진 문제에 대한 단서나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중앙 서버에 연결되어 일어나는 일종의 집단지성이 공유되는 협력학습입니다. 협력학습은 문제 해결에 필요한 다양한 데이터를 중앙 서버 컴퓨터를 활용해서 공유하거나, 아니면 컴퓨터 자체를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공유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나 학습 결과를 공유합니다. 연합학습의 강점은 혼자 해결하면 어려운 문제를 집단적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함으로써 각자의 특성과 역할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시너지 효과를 내는 협동이나 협력을 통해 문제해결의 효율은 물론 효과성이나 정확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가장 쉬우면서도 흔하게 실행할 수 있는 연합학습은 각자의 휴대폰으로 주어진 문제를 풀거나 관련 데이터를 공유하면서 학습결과를 하나의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하고 접근하는 방식입니다. 연합을 해도 엉뚱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익숙한 것도 낯설게 조합하는 방식을 설계하지 않는 연합 학습은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학습하기 어렵습니다. 흔해 빠진 평범한 일상에서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다르게 바라보면 얼마든지 낯선 상상력을 잉태하는 비범한 뜻밖의 조합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생성학습은 창발적 상호작용에서 비롯됩니다
AI가 학습하는 방법 중에 학교나 학원에서 수행하는 수동적인 암기식 학습과 주입식 교육과 가장 큰 차이점을 보여주는 학습방법이 바로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입니다. 강화학습이 기존의 AI 학습방법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은 고정된 정적 데이터셋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기존 환경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대응하면서 수집된 역동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주어진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보완해 나가는 학습방식이라는 점입니다. AI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환경과 소프트웨어 에이전트 간의 시행착오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음 문제 해결과정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는 학습방식입니다.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모험심과 탐험심을 기반으로 어제와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면서 마침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학습방식입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학습하는 에이전트는 사전에 처방된 매뉴얼이나 목적지로 안내하는 지도도 없다. 사전 프로그래밍 없이 작업성과에 대한 보상 메트릭을 기반으로 자신에게 더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 과정을 반복하는 가운데 최적의 해결대안을 찾아냅니다. 높은 리스크에 도전하는 학습을 반복할수록 높은 성과가 따라오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학습방식이 바로 강화학습입니다.
마지막으로 최첨단 AI의 특징을 대변하는 ‘생성 학습(Generative Learning)’이 있습니다. 생성 학습은 우선 기존의 창작물을 모방하는 과정으로 시작합니다. 원본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사본이 대량 양산되는 까닭입니다. 모방단계를 거친 생성형 학습은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변형하거나 융합을 통해 이전 창작물과 다른 모습이나 이미지를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기존의 것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재조합하거나 연결한 결과입니다. 단순히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서 방대한 기존 데이터를 자유롭게 조합, 융합, 변형 적용함으로써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만들어냅니다. 기존의 AI가 창작한 작품과 차별화될수록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하지만 생성형 AI 또는 생성 학습에서 ‘생성(generation)’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해 보면 생성 학습 역시 인간 학습에 비해 치명적인 한계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AI가 만드는 ‘생성’은 규칙이나 알고리듬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활용해서 탈맥락적으로 양산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생성(becomming)은 프로그램화된 시스템으로 작동하지 않고 주어진 맥락적 특수성이나 그 맥락과 인간이 창발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복잡한 관련성을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와중에 우발적으로 만들어집니다(참고: 김성우, 2024, 프레히트, 2022). 생성형 AI는 한 번 사용한 데이터를 재사용하여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문장을 재생산하거나 그림 또는 음악을 합성, 창작물을 만들어내지만 창작자의 문제의식이나 창작자가 주어진 대상이나 상황과 상호작용하면서 창발 되는 감각적 느낌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창작은 창작 주체와 작품 간의 창발적 상호작용(Emergent Interaction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지수나 변수들을 수용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우발적 마주침이 생각지도 못한 깨우침으로 축적되는 가운데 일어나는 생각지도 못한 사회역사적 성취물입니다. 인공지능의 생성형 학습은 배우는 주체와 객체, 사고와 언어,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긴밀한 상호작용이나 변증법적 교섭을 통한 창발적 창작(becoming) 없이 기존의 방대한 빅데이터 언어 창고에서 늘 새롭게 생성(generation)할 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생성 학습은 생성(becoming) 없는 생성(generation) 학습일 뿐이다(김성우, 2024).
창의적인 학습은 경험과 독서, 인간관계와 사고를 언어로 벼릴 때 일어납니다
저자의 100번째 책, 《코나투스》에서 자기만의 일생이론을 구축하기 위한 성장 방정식을 아래와 같이 제안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 공식으로 인공지능이 능가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고 발휘될 수 있는지를 지금까지 설명한 인공지능의 학습방식과 차별화시켜 설명해보려 합니다.
y=er²t/l
이 공식에서 y는 인공지능이 흉내내기 어려운 창작물을 뜻한다. e는 경험(experience), r은 독서(reading), 다른 r은 인간간계(relanship) t는 생각(thinking) l은 언어(language)다. 인공지능을 능가하는 학습이 일어나려면 인공지능처럼 체험이나 경험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경험적 깨달음의 산물을 모방하거나 연결 또는 강화시켜 기존 데이터의 다른 버전으로 생성하는 학습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을 능가하는 창작품은 계획적이고 단속적인 체험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어제의 경험이 오늘의 경험과 연결되면서 연속적인 깨달음이 축적되면서 자기만의 서사나 이야기를 창조해야 합니다. 내가 삶의 주도권을 쥐고 내 몸이 직접 겪어보는 우발적인 경험이 반복되어야 인공지능은 물론 다른 사람과 대체불가능한 나만의 서사가 탄생됩니다. 삶은 계획된 대로 풀리지 않는 미지수와 변수들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하면서 예측불허의 불확실한 세계로 매일같이 다르게 구성됩니다.
둘째, 창의적인 학습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넘어서 다른 자극을 받을 때 타성에 젖지 않고 탄성이 일어나면서 지금까지의 삶과는 차원이 다른 감탄사가 연발되는 감동이 밀려옵니다. 나의 경험에 갇힐수록 내 경험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좌정관천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커지는 까닭입니다. AI를 능가하는 창의적 학습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겪어본 사람들이 저마다의 콘텍스트에서 특유의 문제의식으로 풀어낸 텍스트를 읽어낼 때 생깁니다. 모든 텍스트는 콘텍스트의 산물입니다. 콘텍스트 없이 텍스트를 대량 양산하는 천재가 바로 AI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저마의 사연과 배경이 스며들어 있는 콘텍스트에서 몸으로 겪어본 자기만의 스토리를 일정한 이야기의 흐름으로 희로애락을 버무려 씨줄과 날줄로 직조해 냅니다. 특정한 콘텍스트에서 탄생된 텍스를 자기 경험에 비추어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자기 지식으로 재창조하는 독서를 하는 인간만이 이전과 다른 문제의식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텍스트를 창작해 낼 수 있습니다.
낯선 인간관계와 공감능력이 어제와 다른 인간으로 거듭나게 만듭니다
셋째, 창의적인 학습은 나에게 낯선 인간적 자극을 줄 수 있는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서 비롯됩니다. 나와 경험은 물론 살아온 배경도 비슷하고 철학적 신념이나 가치관도 비슷하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색다른 인간적 마주침의 기회를 제공해주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나에게 낯선 인간적 깨우침의 자극을 줄 수 없습니다. 익숙한 인간관계 속에 틀어박히면 사고방식도 틀에 박힙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마음만 먹으면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습니다. 창의적 산물은 낯선 생각과 충돌하거나 모순될 때 돌파구를 마련하는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대안이 모색됩니다. 모든 창작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과 마주치는 역동적인 만남에서 신체적 반응이나 대응과정에서 창발 되는 감각적 각성의 축적이 어느 순간 기적을 일으키며 탄생하는 사회적 관계의 합작품입니다. AI는 프로그램화된 프로세스대로 움직이는 탈맥락적인 논리적 기계입니다. “의미는 논리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맥락과 관계 속에서 포착된다. 우리의 사고는 분위기와 뉘앙스, 복잡한 관련성을 온몸으로 느끼는 섬세한 감각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주체는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선행 지식의 지평 속에서 나타난다”(37쪽).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이트의 《인공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에 나오는 말입니다. 모든 의미는 논리적 사유의 산물이라기보다 맥락적 상호작용으로 시시각각 다른 의미심장함으로 거듭납니다.
넷째, 아무리 색다른 경험을 하고 책을 많이 읽고 낯선 마주침이 일어나는 인간적 자극을 많이 받아도 자기 주체적으로 해석해 낼 수 있는 사유체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되거나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은 머리와 가슴의 합작품입니다. 생각 사(思)를 분석해 보면 밭 전(田)과 마음 심(心)의 합성어입니다. 밭을 의미하는 전은 본래 인간의 숨골을 뜻하는 상형문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 사의 윗부분은 머리나 이성을 아랫부분은 가슴이나 감성을 의미합니다. 생각한다는 말은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관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은 머리가 하는 논리적 생각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머리가 관여되는 논리적 생각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각을 능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공지능은 복잡한 관계 속에 존재하는 일정한 패턴이나 결론을 도출하는 논리적 추론과정은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공지능을 능가하는 인간지성의 핵심은 감수성, 가슴으로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측은지심에서 비롯 됩니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생각하는 공감능력이 발동될 때 인간은 물불 안 가리고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상상력을 발동시켜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 발 벗고 나섭니다. 하지만 공감능력은 책상에서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몸을 던져 타자의 입장에서 행동하고 생각할 때 비로소 싹이 트는 인간의 숭고한 미덕입니다.
창의적인 학습은 경험적 깨달음을 자기만의 언어로 벼리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다섯째, 창의적 학습은 결국 언어라는 생각의 옷을 입고 세상으로 나옵니다. 경험과 독서,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기존 생각을 그대로 동일하게 재현(representation) 하지 않고 자기만의 독창적인 생각으로 색다른 언어로 표현(presentation)할 때 다른 사람에게도 선물(present)이 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언어는 100% 다른 사람의 언어입니다. 본인이 겪어본 몸의 경험을 언어로 번역한 게 없습니다. 구체적이고 상황적이지만 자신의 체험이나 경험으로 녹여낸 언어가 아니가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머리의 언어는 맴돌고 막히지만 몸의 언어는 꽂히고 먹힙니다. 머리의 언어는 시어머니가 아프면 머리가 아픈 것처럼 이해타산을 따지는 언어입니다. 머리가 아픈 까닭은 나하고 관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몸의 언어는 친정 엄마가 아프면 가슴이 아픈 것처럼 이해타산이 아니라 나에게 손해가 됨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픔처럼 생각하며 몸을 던질 때 탄생합니다. 창의적 학습은 머리의 언어가 아니라 몸의 언어로 벼리고 벼려서 더 적확한 언어를 창조할 때 꽃이 핍니다.
AI 시대에는 사실적 정보를 조합, 논리적 의미를 도출하거나 파편화된 정보를 암기하는 선행학습이나 단순한 복습은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를 푸는 모범생 육성 교육보다 인공지능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질문을 던져 놓고 답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이전과 다른 호기심과 열정으로 정답이 아니라 해답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탐험학습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현실적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위험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머리를 쓰지 않고 궁금한 게 생기면 반사적으로 인공지능에게 답을 구하는 인공지능 의존적 인간지능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인공지능을 능가하는 인간지성이 되기 위해서는 어제보다 어렵고 위험하며 더럽다고 생각하는 3D(difficult, dangerous, dirty) 분야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씨름하면서 뇌리를 공략할 때 세상을 다르게 생각하고 바라보는 심리(心理)와 원리(原理)도 창발 될 수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어렵고 위험하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일을 기계에게 위임하고 그 사이에 인간이 머리를 쓰지 않으면 용불용설에 의해 인간의 두뇌작용은 현격하게 감퇴를 거듭합니다. 극단적으로 인공지능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는 극단적인 경우에 몰릴 수도 있습니다.
창의적인 학습은 고민하고 궁리하는 가운데 터집니다
“인공지능은 고민하지 않는다. 시키는 일을 아주 잘 해낼 뿐이다. 이제 중요한 차이가 드러났다. 생각의 고장은 사람에게만 있다. 요컨대 사람이니까 고민한다. 고민이 시작되면 다음단계는 궁리다. 궁리란 해결책을 찾으려는 갖가지 노력과 시도다. 인공지능은 궁리하지 못한다”(144쪽). 김재인의 《AI 빅뱅》에 나오는 말입니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고민하거나 궁리하지 않습니다. 고민한다는 문제는 정답을 논리적으로 찾을 때 보다 정답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답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대안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부각될 때 생긴다. 이런 문제는 당사자가 주어진 상황에서 직접 부딪혔을 때 직감적으로 판단하는 딜레마 상황을 감지했을 때 더욱 고민의 깊이도 깊어지며 궁리를 거듭하다 궁지에 몰렸을 때 갑자기 궁즉통(窮卽通)의 원리에 따라 새로운 대안이 창발적으로 부각될 때가 있습니다. 딜레마 상황에서 일어나는 학습은 사전에 수립된 계획이나 처방적 매뉴얼대로 풀리지 않을 때 상황적 맥락이 요구하는 정보를 임기응변적으로 가용하게 만들 때 일어납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뜻밖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방법은 틀어 박힌 채 틀에 박힌 발상을 반복하기보다 당연함을 부정하는 뜻밖의 발상을 일삼거나 엉뚱한 상상력을 느닷없이 적용해서 기상천외한 연결이나 조합을 대책 없이 시도하며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타성에 젖은 고정관념이나 통념을 깨는 동심과 재미있게 놀아보려는 유희충동을 살리려는 열정에서 비롯됩니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고뇌하거나 궁리하면서 이전과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은 오로지 외부에서 뭔가 문제의식에 노출되었거나 실행명령을 받았을 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모색합니다. 인공지능의 학습은 자신이 어떤 심각한 분노나 풀리지 않는 문제를 끌어안고 밤잠을 설쳐가면서 고뇌를 거듭하는 가운에 일어나는 학습이 아닙니다. 아무리 탁월한 학습능력을 갖고 있어도 그런 학습능력으로 무엇을 왜 해결해야 되는지, 그걸 해결함으로써 자신의 학습능력은 이전과 어떤 점에서 신장되는지, 더 근본적으로는 그런 능력의 신장이 자신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나 의미심장함이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않습니다. 논리적이고 기계적인 의미생산이 의미심장함으로 다가오지 않는 까닭은 기존의 통용되는 의미를 주어진 맥락에서 재해석하거나 일리 있는 의미를 자기 문제 상황에 적용하면서 보편적으로 공감되는 또 다른 의미로 재창조되는 과정에 담긴 의미를 해석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의식이나 열정 없이 외부의 수행명령을 순식간에 해석한 다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인간이 원하는 답을 양산하거나 창작하는 속도감에 감탄사를 연발할수록 효율적으로 성과는 드높아지고 있지만 그 과정 안에서 효과적으로 내가 성장하지 않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쓸데없는 기우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