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앎을 선전하고 평가하는 강의, 삶으로 앎을 선동하고 증명하는 강연
의미를 머리에 꽂아 선전하는 골 때리는 ‘강의’와
의미를 심장에 꽂아 선동하는 의미심장한 ‘강연’의 차이
강연(講演)을 네이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일정한 주제에 대하여 청중 앞에서 강의 형식으로 말함”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강의(講義)는 “학문이나 기술의 일정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여 가르침”이라고 뜻풀이를 한다. 이처럼 두 가지 뜻의 차이를 보면 강연과 강의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강의는 학교나 조직 내에서 일정기간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소규모 정기적 활동이고, 강연은 외부 청중이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일회성으로 이루어지는 대규모 비정기적 활동이라는 의미에 국한시켜 생각해 본다.
전문지식을 일정기간 전달하는 강의와 교양을 필요할 때마다 전달하는 강연
강의는 특정 청중을 대상으로 일정기간 주기적으로 반복되며 무엇을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교육내용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반면에 강연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비정기적으로 일어나는 일회성 행사에 가깝다. 일정기간 반복되는 강의는 청중도 고정되어 있고 가르치는 내용도 한 번 정해지면 변함없이 반복된다. 하지만 강연은 할 때마다 청중이 바뀌고 교육내용도 청중에 따라 수시로 바뀌면서 일어나는 비형식적 프로그램이다. 물론 강연도 연중기획으로 일정한 청중을 대상으로 반복해서 일어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사 한 명이 일정기간 주도하지 않고 분야별 전문 강사가 저마다의 주제와 내용을 달리하여 전달한다는 점에서 표준화된 일반적인 강의와는 다르다. 흔히 체계적으로 프로그램화된 일반적인 강의는 한 사람이 일정기간 한 가지 주제를 갖고 비교적 오랫동안 진행한다.
강의는 학술적이거나 전문적 지식을 기반으로 일정기간 주어진 시간에 반복해서 일어나는 교육활동이다. 반면에 강연은 학술적이거나 전문적인 내용도 없지 않아 있지만 주로 대중적이거나 일반적인 교양 수준의 내용이 대세를 이룬다. 강의는 해당 분야의 전문적 자격증이나 학위를 취득할 목적으로 수강하는 경우가 많아서 기간도 비교적 길고 내용의 깊이 측면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된다. 강연에서는 각종 취미 활동이나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기 계발이나 경제적 부를 축적함으로써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법이 중시되면서 삶의 주도권을 갖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익힌다. 더 심화된 내용을 공부하고 싶다면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통해 전문성의 깊이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연계되는 경우도 있다.
5% 겸손하게 설명하는 강의와 5% 오버해서 설득하는 강연
강의는 비교적 소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해당 분야의 지식이나 경험이 많은 강사가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5% 겸손한 자세로 교과서적 지식과 깨달음을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둔다. 강연은 경험적 지혜를 자신의 독창적인 관점으로 해석, 평범한 사실도 비범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과 식견을 5% 오버(여기서 오버는 청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해서 식지 않는 열정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공연이자 향연이다. 5% 오버하는 강연에는 반드시 두 가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첫째는 산전수전 겪으면서 깨달은 경험적 지혜이고, 두 번째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해석해 내는 독특한 관점이다. 자신의 몸으로 깨달은 경험적 지혜가 부족하거나 진정성이 실종된 상태로 5% 오버하는 강연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5% 겸손한 강의는 경험적 깨달음이 부족할 때 책상 지식과 남의 경험을 근간으로 복구할 수 있지만 살갗을 파고드는 감동이 없다. 겸손한 강의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청중이 소규모일 때 오히려 잘 통하는 전략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대규모 청중 앞에서 5% 겸손하게 강의를 하면 주의집중은 물론 재미와 의미를 주지 못하고 심지어 비난의 화살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강의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겸손한 설명이 통용되지만 강연에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공부를 많이 한 학자의 학자연하는 설명식 논조는 강의에서 통하지만 대규모 청중이 저마다의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강연에서는 설득력이 없다. 강의에서는 메시지와 메신저가 분리되어 강사의 삶과 무관한 전문 내용을 논리적으로 전달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연에서는 강사의 삶과 무관한 메시지는 먹히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강연에서는 메신저 자신이 메시지가 되는 경우, 더욱 강력한 설득력과 전달력을 지닐 수 있다.
기지(旣知)로 이해를 추구하는 강의와 미지(未知)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강연
알량한 앎이나 관념적 사유로 각색한 설명체계로 삶을 재단하거나 평가하는 지식보다 뼈저린 고통체험으로 건져 올린 깨달음이나 실천적 지혜가 폐부를 찌르고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강의는 강사가 갑이고 청자가 을이지만 강연은 강사가 을이고 청중이 갑이다. 강의는 평가가 좋지 않아도 다음이 보장될 수도 있지만 강연은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지 못하면 거기서 멈춘다. 강의는 평가가 지극히 좋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다음 학기에도 개설된다. 강의는 고객이 원하는 내용보다 강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로 해서 강의평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다음번에 개설된다. 주도권을 강사가 쥐고 있는 강의에 비해 강연은 철저하게 고객만족과 감동을 주지 못하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다. 자기 삶을 걸고 혼신의 힘을 다해 전달하는 강연은 그 자체가 자신의 삶이자 메시지다.
강의는 이미 알고 있는 기지(旣知)를 설명해서 의미를 머리에 꽂아 이해를 추구한다. 하지만 강연은 청중이 상상하는 미지(未知)의 세계로 향하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의미를 심장에 꽂아 의미심장하게 만드는 감동을 추구한다. 강의는 해당 분야의 공부를 책상에서 열심히 한 사람이 논리적 설명으로 주의를 끌지만 강연은 해당 분야에 대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몸으로 체득한 깨우침을 감성적으로 설득해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강의는 해당 분야를 강의할 수 있는 이론적 지식과 자격증을 무기로 내세우지만 실제 본인의 경험으로 깨달은 지혜가 부족해서 의미는 있으나 재미없는 스토리로 각인되는 경우가 많다. 강의는 보편적 양식에 호소하면서 전달자의 주장을 선전(propaganda)하지만 강연은 구체적인 상식을 기반으로 청중의 입장이 움직일 수 있도록 선동(agitation)한다.
머리의 언어로 선전하는 강의와 몸의 언어로 선동하는 강연
선전은 기존 이론적 입장에 근거해서 논증하며 자기주장이 옳음을 입증하려는 설명이고, 선동은 대중의 정서에 호소할만한 사실을 기반으로 자기주장이 더 옳음을 호소하는 설득이다. 선전은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며 자기주장을 펼치는 반면에 선동은 사실적 경험에 비추어 자기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음을 피력한다. 선전은 그래서 강의하는 사람이 논리적 증거를 제시하며 청중의 이해를 촉구하며 입장의 동일함을 강조함으로써 특정한 입장을 지지하게 만드는데 주목적을 두고 있다. 반면에 선동은 이해보다는 지금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중대한 문제나 절박한 화두를 강조함으로써 심리적인 동요를 일으켜 지금 당장 결연한 행동을 촉발하거나 즉각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감정적 자극이다. 선전은 주로 강의를 통해 반복해서 전달함으로써 우리와 그들의 입장 차이를 이해시키는데 주력하지만 선동은 강연을 통해 대중의 정서를 자극, 사안의 긴급성으로 인해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실천의 필요성을 강렬한 감정으로 촉구하는데 중점을 둔다.
강의는 모범생의 언어 또는 머리의 언어로 양식에 호소하는 선전가 스타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강연은 모험생의 언어 또는 몸의 언어로 상식에 호소하는 선동가 스타일로 전달된다. 머리의 언어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또는 주어진 맥락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줘야 되는지에 대한 맥락적 사유 없이 사전에 준비한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할 때 사용되는 언어다. 머리의 언어에는 타자의 생각이나 감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미 빈틈없는 논리로 짜여 있다. 이에 반해 몸의 언어는 상대방이 지금 어떤 상황에서 무슨 고민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를 몸으로 감지한 다음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될지를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낸다. 몸의 언어에는 타자의 감정이나 생각, 주어진 맥락적 정보가 시시각각으로 반영된다. 머리의 언어는 설명과 이해를 추구하지만 몸의 언어는 설득과 감동을 추구한다.
앎으로 삶을 평가하는 강의와 삶으로 앎을 증명하는 강연
강의는 복사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주장을 근간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지만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 의미도 전달하는 당사자에게는 와닿는 메시지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의미해질 수 있다. 복사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만의 색다름보다 남다름을 추구하면서 비교 대상을 밖의 다른 사람으로 규정해 놓고 남보다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원본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강연은 자기만의 독특한 경험에서 고유한 서사나 이야기를 직조해서, 대체불가능한 스타일이나 컬러를 창조하며 전보다 잘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강연은 재미있으면서도 의미가 심장에 꽂힌다. 재미없는 의미는 견딜 수 없는 답답함이고 의미 없는 재미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강의는 간접 경험으로 얻은 객관적 사실이나 진리를 전달하는데 주력하지만, 강연은 직접 경험으로 터득한 주관적 의견이나 신념, 경험적 깨달음을 일정한 논리체계로 정리한 일리(一理)를 그것이 탄생된 상황적 맥락과 함께 몸으로 보여준다.
강의는 입으로 말하고 머리로 진리를 설명하며 앎으로 삶을 평가하고 재단한다. 강연은 몸으로 말하고 느낌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삶으로 앎을 증명한다. 설명으로 사람을 이해시키는 강의전략으로는 불특정 다수가 기다리고 있는 강연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강연을 통해 청중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자기 특유의 언어로 벼리고 벼려서 금시초문의 깨달음을 변주해야 한다. 들어본 이야기지만 강사의 독특한 재해석으로 빛나보이 거나 상식이 뒤집혀 식상한 이야기도 관점을 바꿔 새롭게 바라보는 안목을 심어주지 못하면 다시 무대에 오르는 강연이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독창적인 논리체계로 정리한 다음 진정성을 갖고 청중의 마음을 훔치는 마음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강연하는 사람이 염두에 두고 실천해야 할 금언이 있다. 물건을 훔치면 범인이지만 마음을 훔치면 연인이 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