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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으로 읽어야 ‘질적’으로 다르게 읽힌다

‘시적’으로 읽어야 ‘질적’으로 다르게 읽힌다


“너는 안아도 안아도 다 안을 수 없는 두근거리는 무한이야.”

김혜순 시인의 ‘기상특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지금까지 읽은 책도 마찬가지다.


“책은 읽어도 읽어도 다 읽을 수 없는 두근거리는 무한이야.”

읽으면 읽을수록 심장에 박히는 의미는 많아지지만

아직 심장 밖에서 의미의 정처나 출처를 찾지 못하고

오늘밤도 방황하는 의미의 방랑객은

새벽이슬에 젖어 찬란한 영롱함으로 

날이 밝아옴을 초조해하고 있다.



책은 내가 읽기 전에도

감출길 없는 부끄러움으로 ‘주저하는 입술’이며

문장속에 갇힌 단어들의 ‘무모한 날개짓’이자

거들떠 보기 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폭탄의 심리학이다.


어떤 책은

서늘한 열정과

단도직입으로 뇌리를 급습하고

어떤 책은

순간의 번뜩임과

촌철살인으로 난관을 꿰뚫어버린다.



어떤 책에는

천둥번개가 몰고온 비바람의 난폭함이 숨어 있고

어떤 책에는

폭설로 막힌 진퇴양난의 어리둥절이 

새벽을 향하는 고된 기다림을 맞이한다.


어떤 책에는 안간힘으로 버티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발버둥이 소리없이 들리고

정신 근육으로 극복할 수 없는

딜레마와 아이러니가 수시로 출몰한다.



어떤 책에는 

어찌할 수 없는 삶의 

흔들리는 불안함이 서려있고,

‘어차피’와 ‘차라리’ 사이에서 

마음 조리는 엉거주춤이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책에는

피로서 삶을 증명하려는 

결단의 서슬퍼런 칼이 

행간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고

폭염의 열기에도 아랑곳 않고

시뻘건 불의 희미한 조명아래서

‘정육점의 언어’로 자기 살을 끊어내고 있다.



어떤 책에는

한 많은 세월의 흔적이 통곡으로 얼룩져

앞뒤로 흔들리는 몸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아픔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여 엮여 있고

내 힘으로 독해가 불가능한 

삶의 비밀코드가 굳게 잠긴 자물쇠로 

어떤 열쇠의 침입도 거부하는 

처절함이 처연하게 놓여 있다.


어떤 책에는

순간적으로 스치는 찰나의 깨달음이

미쳐 어둔 동굴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덫에 걸린 쥐처럼 두려움에 떨며

공포심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아 한탄을 내뱉는다.



어떤 책에는

우울한 그림자 뒤에서 

울고 있는 문장들을 데리고

촘촘히 박힌 별들에게 안부인사 전해주며

내일 꿈에 그리는 나들이를 준비하는 

분주한 모습이 곳곳에 숨어 있다.


어떤 책에는 

가을의 낭만을 노래하는

귀뚜라미 노래가 새벽 이슬에 실려

서릿발의 냉담한 반응을

애써 무시하고 방관하려는 

노력의 허무함이 행간마다 서려 있다.


이정록의 ‘더딘 사랑’이 전하는 말,

“달은 윙크 한 번 하는 데 

한달이나 걸린다“고 하지만

책은 한 페이지 넘어가다말고

사연과 사유가 뒤범벅되어 

사고의 불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데

하루 종일 걸린다.



어떤 책에는 

사심이나 사기의 장막을 걷어내고

충절어린 진심으로 과녁을 뚫어버리는 

피끓는 언어의 총알이 

생각의 폭풍우를 무릅쓰고

구름에 스며드는지도 모른 채

햇빛에 그을리며 갈 길을 잃고 있다.


모든 책은

시적으로 읽어야 철학적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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