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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느낌의 벼락,
순간의 섬광, 언어적 일탈

문장은 짧고 의미는 길다

문장은 짧고 의미는 길다:

짧은 문장은 느낌의 벼락이자 순간의 섬광이고 언어적 일탈이다


짧은 문장은 사물이나 현상을 상상하던 한 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게 하는 순간적 영감이 휘발되기 전에 붙잡은 의미의 임신실이다. 짧은 문장은 폭염이 일상을 뜨겁게 데워도 그늘진 한 곳에서 잉태된 서늘한 의심으로 시작된다. 작렬하는 한 낮을 바라보다 허공에 날아가는 신기루처럼 보이지 않지만 환각으로 꿈꾸었던 환상이 짙은 어둠과 함께 갑자기 휘몰아치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뇌리를 습격하는 지적 충격이 몸을 추스르는 장소에서 짧은 문장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겨울비가 추위 속을 뚫고 하강하며 생긴 상처들의 언저리를 어루만지다 늑골에 걸린 지난날의 아스라한 추억 한편에서 고독으로 응고된 긴 한숨이 짧은 문장에 달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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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뇌리에 파고들기 전에 심장에 남긴 상처다


설명을 덧붙이기 전에 민낯과 맨몸으로 다가오는 사물의 본질 앞에 숙연히 고개 숙이고 있을 때 흩날리던 낙엽이 던진 한 마디가 정처를 찾지 못하고 어디론가 미끄러지며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로 빠져들 때, 짧은 문장은 비장한 각오로 발설해 버린 안타까운 소음들이 번역된 불안하지만 불리하지 않은 소리다. 짧은 문장에 설명에 매장당하지 않고 설명으로 위장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자기 본질에 붙은 실명(實名)으로 저마다의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향연의 주인공들이다. ‘설명(說明)’을 해야 이해되는 짧은 문장으로 건축된 창문은 사람을 ‘실명(失明)’하게 만든다.


짧은 문장은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고 순차적 논리를 따라가게 만들지 않는다. 짧은 문장에는 ‘그래서’나 ‘그리고’로 이어지는 긴 설명문보다 ‘그런데’ 또는 ‘반면에’라는 반전과 역전의 드라마가 침묵 속에서 우렁차게 외치는 목소리로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상식과 통념의 껍데기를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짧은 문장에는 사소한 일도 사건이 될 수 있으며, 그 사건은 설명할 수 없는 사연과 사유를 품고 돌이킬 수 없는 사고혁명의 진원지가 기다리고 있다. 짧은 문장은 침묵으로 우거진 허공 속을 방황하다 스치는 바람결에 놀라 잠을 깬 구름이 살아온 주름으로 자기 이름값을 하는 경천동지(驚天動地)의 깨달음이다.


“시를 쓰는 것은 사실 ‘설명‘을 버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경찰관과 검사와 판사는 설명을 요구하지만 시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지요. 시 쓰기가 소설 쓰기와 다른 점은 이 설명을 포기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지점에 있습니다……시는 설명에 소환되지 않는, 해석을 거부하는, 비평의 액자에 갇히지 않는, 모습이 정해진 것이 없는 말들이지요”(214쪽). 김혜순의 《김혜순의 말- 글쓰기의 경이》 중에 나오는 말이다. 짧은 문장에는 설명의 군더더기가 붙을 여지도 없고 설명을 요구하려는 의도도 없다. 짧은 문장은 뇌리에 꽂히기 전에 심장을 파고들어 깊은 심상(心傷)을 남기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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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나를 밟고 지나간 발자국이다


이기철 시인의 ‘무엇을 말하려 시를 쓰나’라는 시에 나오는 문장이다. 짧은 문장은 생각의 발로를 믿고 따라가다 배반과 이별의 아픔도 겪고 낯가림을 하지 않는 얼굴이 바라본 첫인상의 흔적을 담아내지 않는다. 오히려 짧은 문장은 마침내 길을 따라 나서 걷다가 뒤로 생긴 발자국에서 벼랑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던 기억의 파편에 그을린 감정에서 지성을 능가하며 솟구치는 감각적 깨달음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짧은 문장이 주로 태어는 곳은 상식의 그늘에 가려진 곳, 통념의 숲에서 고정관념이 서식하는 것, 너무 자주 봐서 익숙해진 일상적 습관들의 거처다. 짧은 문장은 이런 곳을 짧은 순간에 방문하지만, 심각한 의문의 화살을 가슴에 품고 자기 몸을 던져 스스로 상처받는 한이 있더라고 몰상식한 공격을 돌발적으로 감행하다 산산이 부서진 잔해로 블록을 맞추다 어쩌다 맞춰진 단어들의 건축물이다. 먼지로 뒤덮인 뒷골목에서 숨 고르기를 하다 불현듯 내리치는 번개물과 같은 섬뜩한 놀라움이 짧은 문장에는 늘 스며들어 있는 까닭이다.


짧은 문장에는 ‘시선’이 머무는 곳에 언제나 ‘사선(死線)’을 그어놓고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의 뒤안길에서 반성하는 사람의 깊은 사색이 머물러 있다. 뿐만 아니라 짧은 문장에는 큰 그림을 그려놓고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언제나 성찰을 반복하다 기존 시각으로 고정된 앎의 터전을 뒤집어엎는 쓰라린 아픔이 앎의 상처로 얼룩져 있다. 짧은 문장은 언제나 불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내린 사람들의 평범한 보행에 숨은 위대한 행보의 의미를 파헤치다 몸속으로 파고든 낯선 통찰의 흔적들을 힘겹게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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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삶의 희로애락이 저녁노을과 함께 울려 퍼지는 세레나데다


짧은 문장은 관념의 그물로 포획하다 객사한 모래사장의 폐허에서 다시 감각의 촉수로 낯선 기호들의 의미를 채굴하고 어루만져 마침내 온기 품은 명사와 형용사로 구성된 단어가 일상을 회복하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다. 다시 본래의 구체성이 꿈틀거리며 추상화의 폭력으로 짓눌린 억압과 굴욕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날뛰는 우연의 세계로 몸을 던지다 우연의 그물에 걸린 산물이 바로 짧은 문장이다.


짧은 문장은 평소에 할 수 없는 말들이 비상한 꿈을 품고 난생처음 영감으로 건져 올린 언어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무엇을 지향하는지 모르지만 꿈틀거리는 욕망의 물줄기가 심연을 파고들어 흐를 때 자신도 모르게 태어난다. 내가 겪었던 삶의 혼란과 격동의 시간을 한 두 단어로 건축된 문장이 심장에 꽂힌 의미를 붙잡아 순간적으로 출산되는 순간, 짧지만 사유의 길이가 긴 주장을 담고 있다.


짧은 문장은 스쳐 지나가다 각인된 경험의 흔적이 이미지를 키우고 메시지를 구상하다 어느 날 뇌리에 머물다 심장으로 옮겨가면서 잉태된 부산물이다. 그 사이에 세 들어 살던 다른 생각의 파편이 심장에 숨어 살던 의미와 짝짓기를 하다 말하기도 전에 태어난 뜻밖의 생각의 자손이 짧은 문장이다. 그 문장에는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비의(悲意)가 비장하게 숨어 있다.


짧은 문장은 우여곡절의 강을 건너가 상처받은 삶을 치유하려 살아내려는 와중에 발바닥에 박힌 굳은살과 나무의 옹이처럼 도려내기 어려운 슬픔의 자국에 세월이 숙성시킨 휘청거리는 삶의 희로애락이 저녁노을과 함께 울려 퍼지는 세레나데다. 짧은 문장은 인식의 지평을 열어가다 수평에서도 넓이보다 깊이를 배우는 우발적인 깨우침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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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회심의 돌파구를 찾은 사람이 무의식 중에 내뱉는 고집스러운 기쁨이다


짧은 문장은 부질없이 불억닥치는 바람결에도 고독한 망자의 애환을 듣고 지름길이라고 달려갔지만 어느새 샛길로 벗어난 자신을 발견한 뒤 회한의 목소리로 읊조리다 생긴 삶의 얼룩과 무늬다. 짧은 문장은 줄달음치며 내뱉는 가혹한 삶의 단면들이 서글픈 감정에 휘말리며 뼛 속에 박히는 그리움을 긁으며 탄생된 그림 같은 이미지의 잔향이다.


짧은 문장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혹한의 바람 부는 참혹한 낯선 숲에서 모든 걸 벗어던진 채 나목(裸木)으로 생의 전면전을 펼치는 자작나무처럼 실존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좌절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절치부심하다 회심의 돌파구를 찾은 사람이 무의식 중에 내뱉는 고집스러운 기쁨의 찬가가 낮은 포복 자세로 스며들어 있다.


짧은 문장에는 형용사의 거품도 없고 부사의 지나친 과장도 없이 오로지 주어와 동사가 엮어나가는 파란과 파격의 삶이 남긴 정수(精髓)가 오랜 시간 숙성 끝에 성숙된 모습으로 자기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태만이 있을 뿐이다. 짧은 문장은 한 사람의 로고스와 파토스가 광란의 방식으로 뒤섞이면서 밤바다의 깊이만큼이나 적막한 심연에서 한 순간에 용솟음치는 소용돌이이다.


짧은 문장은 직관의 칼날이 수시로 꽂히고 통찰의 화살이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들며 비판의 빵에도 문을 열고 받아들이는 드넓은 아량과 안목의 관문이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하는 환희와 황홀경의 느낌이 수시로 휘몰아친다. 짧은 문장은 정상보다 비정상이 난무하고 패러독스가 의미의 독소(毒素)를 품고 곳곳에 진을 치고 기다리다 술이 덜 깬 상태로 내뱉는 취중방담이다. 말이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말이 되는 아이러니가 단도직입적으로 파고드는 격랑의 파도가 타성에 젖은 언어 꾸러미들을 후려치며 흐느끼는 신음이 바로 짧은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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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어제와 다른 앎을 낚는 낚싯바늘이다


짧은 문장은 “사육에서 정육으로 가는 붉은 길”에서 도축되기 직전의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점치듯이 사치스러운 호기심의 눈길을 접고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는 분명하지만 아무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곳으로 향하는 눈빛이다. “인식은 슬픔”이라고 니체가 말했지만 그럼에도 짧은 문장은 인식의 지평은 물론 깊이를 파고들어 어제와 다른 앎을 낚는 낚싯바늘이다.


짧은 문장의 행마다 절망과 버티다 고개 숙인 회한의 목소리가 들리고, 겪어본 고통의 의미를 해석하느라 바쁜 시인의 안간힘이 스며들며, 지나온 날들의 아름다운 추억이 휘발되기 전에 잡아두려는 되돌아봄이 사투를 벌인다. 까닭 없이 흐르는 눈물의 근원을 찾아가다 터지는 한숨에서 숨 고르기를 하려는 인생이 겪어낸 고통의 흔적이 갖는 의미가 짧은 문장에 아로새겨져 있다.


짧은 문장은 내 삶의 어둠 속에 갇힌 아픈 과거를 걷어내고, 일생을 다해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소명이 무엇인지를 조명하며, 불확실하고 불안하지만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인두 같은 문장이다. 그런 문장의 실체나 이미지가 어떤 모습인지를 설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런 문장을 순간 직감적으로 내가 원했던 문장임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게 짧은 문장의 묘미이자 마력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짧은 문장이 품고 있는 전운(戰雲)이 전율감으로 파고들 때 내 몸이 떨리고 짧은 문장은 울린다.


짧은 문장은 관념으로 포장된 이데올로기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추상적인 이념으로 덧칠되어 있지 않다. 짧은 문장은 바람에 휘둘려도 뿌리까지 뽑히지 않는 나무의 구체적인 항거이며, 손톱 밑이 갈라져 사소한 움직임에도 고통이 온몸을 파고드는 현실적인 아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단도직입적으로 알려준다. 장황하고 현란한 말보다 땡볕에 그을린 채 한 걸음 내딛는 노동자의 땀방울과 열정으로 달궈진 체온이 갖는 숭고한 의미가 짧은 문장 곳곳에 진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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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비추는 조용한 등대다


짧은 문장 전부 낮은 곳, 밑바닥의 기는 서글픔에서 탄생된다. 고층 아파트 꼭대기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거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한가로운 여유 속에서 짧은 문장은 탄생되지 않는다. 안 되는 이유보다 악조건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속삭이는 이해가 앞설 때 짧은 문장에는 서늘한 의심과 더불어 뜨거운 의문이 전대미문의 질문이 새벽을 기다리는 비장함이 서려 있다.


짧은 문장은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 시작된다. 다정하게 다가서서 세심하게 관찰하고 패턴을 찾아 통찰을 일으키고 기존 생각과 마찰이 일어나지만 기지의 세계와 결별을 선언하며 낯선 상상력을 잉태한다. 다정하게 묻고 대답하며 모든 존재가 품고 있는 발자취의 깊이에 취(醉)해가면서 몰랐던 사실을 취(取)하는 선순환의 경로에서 짧은 문장은 탄생된다.


짧은 문장은 날뛰는 우연의 바다에 뛰어들어 뜻밖의 만남에서 마주침의 지혜를 터득한 기록이다. 몸을 내던지지 않으면 만날 수 없었던 운명적인 마주침이 우리를 경이로운 깨우침의 세계로 인도하는 생각지도 못한 시작에서 비롯된다.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아픔과 슬픔의 답안지에서 새로운 앎의 상처가 기록되는 순간 짧은 문장은 가슴을 휘젓는 삶의 지혜 한 줄을 번개처럼 주워 담는다.


짧은 문장은 칼 같은 이성의 차가움과 럼주 같은 감성의 뜨거움이 교차되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시달리다 마지못해 피는 꽃의 몸부림을 함축하고 있다. 정확히 맞는 열쇠가 들어가 자물쇠를 비틀어야 비로소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듯 짧은 문장은 평범한 세상을 비틀어 비범한 세계로 들어가는 길로 안내해 준다. 버려진 평범한 불운이 과거를 생각하는 불행을 버리고 미래로 걸어가는 비범한 아름다움을 찬양할 때 짧은 문장은 번뜩이는 광휘보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비추는 조용한 등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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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그림자 속을 배회하다 불현듯 비상하는 꿈을 꾸다 추락한 뜻밖의 문장이다


한 많은 세월의 얼룩이 서글픈 사연을 머금다 목구멍 사이로 터져 나오는 순간 냉가슴 달구는 한 잔 술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때 짧은 문장은 텅 빈 종이를 바라보다 어둠을 밝히는 밤하늘의 등불이다. 하루 종일 수영하다 지쳐가는 몸을 가누며 물고기가 하품하는 순간 숱한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던 물가의 갈대가 온몸을 떨고 있을 때, 짧은 문장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빛나는 배경의 안간힘이다. 짧은 문장에는 침을 흘리기 시작하는 관념이 치명적인 암으로 전락하기 직전에 땀을 흘리며 노동으로 건져 올린 치열한 앎이 어둔 밤거리를 비추고 있다.


“누가 글을 쓰는가. 매혹의 개 같은 고통을 견디는 자들이 글을 쓴다. 블랑쇼의 책 제목대로 글쓰기는 오로지 “도래할 책”을 쓴다. 저기 책이 오고 있다. 옛것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오민석의 <문파문학> 2019 겨울호 ‘권두언’에 나오는 문장이다. 누가 짧은 문장을 쓰는가. 매혹의 개 같은 고통을 견디는 자들이 짧은 문장을 쓴다. 짧은 문장 쓰기는 오로지 도래할 문장을 쓴다. 저기 짧은 문장이 오고 있다. 옛것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사건으로서의 시를, 재현이 아닌 외상(外傷)으로서의 시를”(107쪽). 양효실의 ‘언데드의 말, 시(詩)’ 중에 나오는 말이다. 김언희 시인의 《호랑말코》 시집 해설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짧은 문장도 재현이 아니고 사건이자 외상의 산물이다. 짧은 문장은 사건을 겪으며 몸을 관통하고 남은 상흔(傷痕)이 베일에 가려진 채 며칠을 그림자 속에서 배회하다 불현듯 비상하는 꿈을 꾸다 추락한 뜻밖의 문장이다. 짧은 문장은 관념으로 포장된 관습의 겉옷을 벗겨내고 침묵하던 감각이 포효하는 순간성에 자신도 놀라는 표정에 주목하다 불현듯 태어난 뜻밖의 감탄사 모음집이다.


타성과 맞서 싸우는 안간힘과 통념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가운데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도 피하지 않고 피를 흘리는 일상을 혁명의 장소나 터전으로 삼는다. “시인과 도끼는 침묵한다. 일격을 노리”(김언희 시인의 ‘호랑말코’ 중에서)는 것처럼 짧은 문장도 망설이고 주저함도 소리가 날까 봐 깊은 들숨을 밑천으로 날숨을 참아가며 기다란 기다림으로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더 이상 잉태를 거부하고 출산을 위한 산통을 시작한다. 하지만 언제 그 문장이 출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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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느낌의 벼락이자 순간의 섬광이고 언어적 일탈이다


짧은 문장은 짧은 순간에 뇌리에 내리 꽂히는 느낌의 벼락이자 순간의 섬광이고 논리를 벗어난 느닷없는 언어적 일탈이다. 짧은 문장에는 피할 수 없는 끌림의 황홀경이 무아지경의 상태로 온몸에 힘을 빼앗아 달아나다 생각을 무찌르며 흘린 피가 땀과 눈물을 만나 피땀과 피눈물을 흘리며 서성거리는 방랑과 방황의 흔적이 역력하다. 짧은 문장은 결국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관통하며 살아오다 파국을 맞은 사람이 남기는 파란 문장, 즉 묘비명이다.


짧은 문장은 몰지각한 사람들의 변명, 몰상식한 사람들의 하소연, 몰염치한 사람들의 무례함, 문자들에게 빼앗긴 과다한 의미의 범람을 물리치려는 절치부심이 불현듯 솟구치려는 생각의 촉발들을 과감하게 거세하고 무의미한 상태로 며칠을 보내다 고갈된 의미의 텃밭에서 건져 올린 본질이 질적으로 말하고 싶은 진면목이다.


찰나의 순간에 찾아오는 번뜩임을 포착하고 벼리고 벼리다 겨우 짝짓기에 성공한 몇 개의 단어들이 서둘러 짧지만 길고 깊은 사색의 얼룩과 무늬가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짧은 문장으로 갑자기 태어난다. 절망도 아름다운 좌절을 부를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비참한 패배도 서늘한 매혹미로 간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며, 끈질긴 의문과 뜨거운 질문들 속에서 짧은 문장은 의미를 머금고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때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훌륭한”(19쪽) 짧은 문장은 탄생된다.


짧은 문장은 이중 부정을 통해 주어진 현실을 긍정하는 디오니소스적 찬가이고 구태의연함을 고발하면서도 평범한 자태가 보이는 양극단을 모두 끌어안는 포용의 속삭임이며, 진부한 현실의 표면을 공략하면서도 진실함의 이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눈부신 역설이자 변방의 이단과 파격을 옹호하면서도 중심의 생각 없는 동화를 무차별 공격하는 올곧은 혁신의 이중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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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역설과 아이러니가 살아 숨 쉬는 아포리즘의 결정판이다


짧은 문장은 긴 문장을 줄여서 탄생한 문장이 아니다. 짧은 문장은 짧은 순간에 스쳐 지나가던 촌철살인의 깨달음이 농축되어 불현듯 태어난 문장이다. 짧은 문장은 문장을 짧게 줄이는 문장 교정의 산물이 아니다. 짧은 문장은 혜성처럼 뇌리를 스치며 지나가던 안목과 혜안이 한 문장으로 축약된 절제와 급소. 역설과 아이러니가 살아 숨 쉬는 아포리즘의 결정판이다. 짧은 문장을 쓰는 특별한 비법이나 프로세스로 정리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곶감이 무르익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겉에 하얀 분가루가 생긴다. 분가루는 겉에서 덧칠해서 생긴 게 아니라 안에서 무르익는 과정에서 바깥의 공기와 접촉하면서 생긴 결과다. 즉 안에서 때가 나오면 숙성의 기다림이 만든 산물이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짧은 문장도 내면에서 숙성된 경험이 바깥의 어떤 지적 자극이나 단서를 만나는 순간 써지는 아포리즘에 가깝다.


짧은 문장은 뽑는 게 아니라 심는 것이다. 이 말은 “고경태는 제목을 뽑지 않는다. 심는다”라는 《유혹하는 에디터》라는 책의 추천사에서 뽑은 글이다. “고경태는 제목을 뽑지 않는다. 심는다. 기사를 써 던지면 그 손에서 뚝딱 스트라이크로 꽂힌다. 본문보다 더 진한 카피로 독자를 울리는 그는 한 마리 대책 없는 ‘편집 짐승’이다.”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 데스크의 추천 사다. 짧은 문장은 편집 짐승에 포위당하지 않고 야생을 누비며 기른 자생력이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갑자기 내뱉은 한 마디의 촌철살인이다.


“발견의 시학은 급소와 경락을 짚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가 길 수가 없지요. 생에도 그런 순간이 있는데, 발견은 절대 길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급소, 경락들은 죽음과 항상 가깝습니다. 바닷가에 시체가 떠밀려 오면 파리가 가장 먼저 몰려듭니다. 시인의 자리가 거기지요. 순간적인 죽음들을 항상 발견해야 합니다”(44쪽). 이성복의 《끝나지 않는 대화》에 나오는 말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짧은 문장의 시학도 급소와 경락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장이 짧을 수밖에 없다. 경이로운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 풀리지 않았던 복잡한 실타래가 갑자기 어떤 단서로 풀리기 시작할 때 찾아오는 전율하는 감동은 절대적으로 짧은 순간에 일어난다. 그 순간에 일어난 생각과 감정이 어떤 깨달음의 메시지로 번역될 때 짧은 문장이 탄생된다. 짧은 문장은 결정적인 순간, 번뜩이는 영감이 지나가는 찰나를 포착, 문장에 담고 싶은 주장이 휘발되기 전에 붙잡아 두어야 비로소 나의 기록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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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불길한 예감이 영감으로 날아든 흔적과 얼룩이다


짧은 문장은 추상적인 관념이나 거대담론을 바라보는 거시적 시각으로는 건져 올릴 수 없는 구체적인 일상성을 미시적 상상력으로 물들인 소소한 삶에 대한 낯선 경각심의 발로다. 뭔가 이전과 다른 경각심을 가지려면 모든 존재 자체에 대해서 시비나 딴지를 걸어봐야 한다. 왜 물음표는 콩나물처럼 구부러져 있고 느낌표는 직선의 끝에 점을 하나 달고 있을까? 물음표가 곡선인 까닭은 호기심이나 궁금증으로 품은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마음과 자세가 곡선이고, 느낌표가 직선인 까닭은 긴 곡선의 방황 끝에 물음표가 낳은 어느 순간 갑자기 출산한 자식이 느낌표이기 때문일까? 이성복 시인이 비유처럼 임신하면 물집이나 종기처럼 곡선형으로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출산하고 나면 곡선의 모습이 푹 꺼져서 직선으로 바뀌는 일상에서도 상상력은 비상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나뭇잎이 나무의 엄마”라는 짧은 문장은 문장은 짧지만 오랫동안 이 문장에 머물며 머뭇거리게 만든다. 정상적인 사람은 줄기가 가지를 뻗게 하고 가지 끝에 나뭇잎이 달린다는 시계열적 발상을 한다. 하지만 틱낫한 스님은 생각의 물구나무를 서서 나뭇잎이 광합성을 해야 나뭇가지에게 영양을 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틱낫한 스님은 낙엽은 땅으로 떨어져도 거름으로 변신, 다시 나무 성장에 아낌없이 도움을 주는 모습이 정확히 엄마를 닮았다는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 보고 나뭇잎이 나무의 엄마라는 짧은 문장이지만 긴 울림을 주는 통찰력을 선물해 준 것이다. 짧은 문장은 틈새에서 자란다. 너와 나 사이, 사이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김광규 시인의 ‘생각의 사이’라는 틈새에서 날아가는 새의 상상력을 포착했다.


짧은 문장은 길이는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의 깊이와 넓이는 헤아림 자체가 불가능하다. 열길 물속은 알 수 있지만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처럼 그 문장에 담긴 속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짧은 문장 안에 대상과의 치열한 관찰 싸움이 들어 있고 평범한 일상을 보고도 환상이나 공상에 젖어 살다가 순간적으로 상상력이 발동하면서 폭등하는 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심연을 할 퀸 상처 위에 꽃이 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영감으로 날아든 흔적이 숨겨져 있다. 짧은 문장은 가장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 대한 고뇌의 뿌리가 너무 깊이 내려 다시 수직으로 일어설 수 없다는 한탄이 허공을 가르는 어느 순간 감탄의 어조로 뒤바뀔 때 짧게 뇌리를 스칠 때 남긴 얼룩 속의 무늬다. 짧은 문장은 짧은 순간에 심연의 한가운데에서 폭발하는 영감의 물줄기가 심각한 갈등과 부조화의 선율 속을 빠져나오며 사그라지기 직전에 온몸으로 붙잡아 기록한 조용한 울부짖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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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느닷없이 먹구름에서 수직으로 하강하는 소나기다


끝을 알 수 없는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치를 떨며 고군분투했던 경험이 어느 날 기억의 서랍에 간직된 흔적으로 어루만져주는 한 문장을 만났을 때 무릎을 치며 기뻐했지만 다시 희미해지는 전율의 여진이 온몸을 파고든다. 중간지대를 허용하지 않는 양극단에서 애간장을 녹이는 애쓰기가 바로 쓰기로 연결되지 않는 바로 그 지점에서 갑자기 벼랑 끝에 매달린 자기를 발견하는 순간 섬찟한 두려움이 엄습할 때 극단의 순간에 결단과 함께 찾아드는 문장이 바로 짧은 문장이다.


“어머니는 아이가 만들어지는 데 협조할 따름이야. 어머니는 아이를 낳을 수는 있어도 만들 수는 없는 거지. 예술도 그렇게 일종의 임신이고 출산이지”(75쪽). 이성복의 《끝나지 않는 대화》에 나오는 말이다. 짧은 문장도 머리를 쓴다고 써지는 게 아니다. 짧은 문장은 오로지 내면의 경험을 불태울 심각한 문제의식이나 거룩한 목적의식을 만나 스파크가 튀는 순간 잉태되어 찰나적 임신기간을 거쳐 바로 출산된 문장이다. 짧은 문장은 순간적으로 잉태, 별도의 임신기간을 거치지 않고 언제 출산되는지도 모르고 세상 구경을 하러 밖으로 내던져진다.


짧은 문장을 심장에 심고 싶은 갈망이 갈급해질수록 내면의 갈등은 깊어지고 절망의 나락은 가팔라진다. 갈망과 절망 사이, 가끔 얕은 희망과 소망도 살아가다 실망만 하고 바로 도망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일수록 한 발짝 물러나 주변을 관망하고 조망하다 가끔 저만큼 앞날을 전망하며 한 문장에 담아내고 싶은 의미심장함을 오매불망 기다릴 뿐이다. 짧은 문장은 바닥보다 더 절망의 나락인 밑바닥을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 내려가서 절치부심(切齒腐心)하다 절문근사(切問近思), 즉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서부터 생각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집요함으로 일권 낸 집념의 산물이다. 울고불고 날뛰던 요란한 난리법석의 시끄러움도 매일 찾아드는 어둠으로 채색되어 기억의 강물이 되어 바다로 가버렸다.


짧은 문장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바다에 모여든 기억의 강물이 작렬하는 태양볕 덕분에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느닷없이 먹구름으로 변해서 수직으로 하강하는 소나기와 같다. 감동의 느낌표가 숨어있는 짧은 문장은 숱한 질문을 던지며 방황 끝에 갑자기 다가온 자기만의 고뇌가 서려 있는 문장이다. 차라리 갈망을 열망하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지언정 섣부른 소망에 기대하고 희망에 의지해봐야 곪아터지기 직전이지만 짓이긴 상처를 치유하는 썩은 고름은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또 헛된 희망은 밤이 되면 젖은 빨래처럼 나부끼고 머리칼이 곤두서도록 잠은 오지 않는다.” 이성복 시인의 ‘높은 나무 흰 꽃들은 燈을 세우고’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섣부른 희망은 참담한 절망을 끌어안고 절치부심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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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기발한 깨달음이 소음으로 사라지기 전에 낚시로 낚아챈 각성제다


짧은 문장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가정을 없애고 생각의 물구나무를 설 때 보이는 틀밖의 풍경에 대한 불편한 토로다. 타성에 젖은 언어로는 포착하거나 표현하기 어려운 뜻밖의 감추기 어려운 부분을 감추려다 미처 감추지 못하고 삐죽 튀어나온 부분을 적확한 언어로 순간 포착한 불편한 발견이 짧은 문장이다.


짧은 문장은 모든 편리(便利)를 불리(不利)로 만들고 정상(正常)은 비정상(非正常)으로, 자연(自然)스러운 흐름은 부자연(不自然)스러운 역행으로 뒤집어 놓고 거꾸로 아니면 반대방향에서 바라보고 들여다볼 때 퍼뜩 떠오르는 기발한 깨달음이 소음으로 사라지기 전에 낚시로 낚아챈 각성제다.


짧은 문장은 있을 때는 몰랐는데 잃어버렸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아서 내 품에 안긴 지하철 유실물처럼 평범한 일리 속에서도 비범한 진리가 들어 있음을 깨우칠 때 아주 가끔 내 몸을 관통하며 지나갔지만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남겨지는 감각의 흔적이자 지각의 퇴적물이다.


짧은 문장은 사전에 철저한 구상과 치밀한 계획으로 만들고 싶은 궁극적 이미지를 상정해 놓고 뭔가를 달성하기 위해 막노동을 하면서 막무가내로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직조되는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짧은 문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다가 복잡한 실타래가 갑자기 풀리면서 골머리를 앓던 문제의 단서가 잡히는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에서 갑자가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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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방랑하는 예술가의 몸에 아로새겨진 문신이다


짧은 문장은 구체적인 의도를 갖고 쓰기 위해 시작해서 완성되는 문장이 아니다. 오히려 짧은 문장은 일단 뭔가를 끄적이며 우발적으로 만나는 마주침이 축적되다 어느 순간 눈사람이 굴러가며 이것저것 몸에 눌어붙다 만들어지는 방랑하는 예술가의 몸에 아로새겨진 문신이다.


짧은 문장은 객관이 바라보는 사실과 주관이 몸으로 느끼는 서정 사이에서 서성거리다 심장을 파고들며 새겨진 의미심장한 주장이자 비 오는 저녁 무렵 우산 없이 외출하다 만난 사무치는 한 줄의 시다.


짧은 문장은 자음과 모음이 충돌하고 갈등을 겪으며 기나 긴 싸움 끝에 잠시 휴전을 선언하고 높아진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휴게소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다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한 줄의 카피다.


짧은 문장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서 관망하거나 전망하면서 쓴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궁지에 몰린 사람이 밑바닥을 기고 사투를 거듭하며 마침내 역전의 발판을 마련, 경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깊은 애정과 높은 긍지가 자기도 모르게 버무려지면서 순식간에 쓰인 연애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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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뇌리에서 순간적으로 정리되어 튀어나오는 형언할 수 없는 방언이다


짧은 문장은 손발을 움직여 근육이 흘리는 눈물, 땀에 젖은 노동을 하다 불현듯 찐한 먹먹함이 심장박동을 가속화시키는 가운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뇌리에서 순간적으로 정리되어 튀어나오는 형언할 수 없는 방언이다.


짧은 문장은 다른 존재들이 전경에 드러날 수 있도록 자기 자리를 지키켜 묵묵히 지원군이 되어주며 때를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과 배경 덕분에 순간적으로 돋보이며 강렬한 앎의 상처를 남기는 잊히지 않는 그림자다.


짧은 문장은 자신이 주어가 되어 대상을 수동태로 묘사할 때 나오지 않고 대상이 주체가 되어 그것이 말을 할 때까지 어쩔 수 없는 그리움으로 기다리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터지는 사물의 목소리로 작곡한 악보에서 흘러나오는 콧노래다.


짧은 문장은 불리한 사실에 담긴 진실이자 진면목을 밝혀내려는 몸부림이 편리로 가는 길목을 아예 차단하고 안갯속 희미한 불빛에 스스로를 그을리며 백련강처럼 단련하는 와중에 진리의 일면을 밝혀보려고 자신을 불사르려는 강렬한 안목이다.


짧은 문장은 터진 풍선 앞에서 불평불만하지 않고 그것의 안타까운 서러움이 말을 걸 때까지 기다렸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비바람에 나는 둥 마는 둥 날아가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내뱉는 하소연을 번역한 한 겨울 얼음 깨지는 경각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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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상상력의 날개가 느닷없이 추락하며 지르는 절규가 만든 비장의 통찰력이다


짧은 문장은 온 세상을 어둠이 포섭한 감옥 같은 순간에 성냥개비가 일으키는 섬광처럼 낮은 곳에서 보낸 고단하고 지루한 삶 덕분에 잠시라도 어둔 과거를 되돌아보다 무의식을 헤매며 돌아다니다 깜빡이는 기억의 형광등이다.


짧은 문장은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호소하며 자신의 지위를 알아달라는 눈물 나게 감동적인 문장이 아니라 흐르던 눈물을 다시 눈 속으로 집어넣으려고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그것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형용사의 슬픔이다.


짧은 문장은 플러그 구멍을 찾으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 마침내 전기가 통하는 두 개의 구멍을 찾으면 스탠드에 불이 켜지듯 관계없다고 생각되던 두 가지 이상이 일정한 패턴을 띠면서 불현듯 인연으로 맺어진 소중한 연결이라는 걸 무릎을 치며 되새김질하다 얻어걸린 상상력의 후손이다.


짧은 문장은 비 온 뒤 내리는 눈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는 허무한 반복에서도 미세한 차이를 감지, 그 속에서도 살아가는 생명체의 숨 쉬는 현상을 붙잡고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의 날개가 느닷없이 추락하며 지르는 비명과 절규가 만든 비장의 통찰력이다.


짧은 문장은 해 질 녘 어슴푸레한 허공에 거미줄을 치고 낮은 포복 자세로 숨죽이고 엎드려 기약 없이 기다리다 갑자기 거미줄이 철렁하면서 걸려든 먹잇감이 생겼어도 기뻐 날뛰면서 환호하지 않고 육중한 무게를 실낱같은 거미줄에 싣고 목표물에 접근하는 거미의 알 수 없는 힘겨운 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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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고정관념과 통념이 깨지면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자 감탄사의 시냇물이다


짧은 문장은 심장이 머리로 들어간 논리적 이성의 소리가 아니라 머리가 심장으로 들어가 차가운 이성이 감성의 아우성에 압도당해 불붙은 도화선이 폭발 일보 직전의 긴장감으로 타들어가다 내장에 갇혀 있던 고정관념과 통념이 깨지면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자 감탄사의 시냇물이다.


“나는 아름다움이 잘 알던 모습이 아닐 때의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서 짧은 문장을 읽는다. 잘 알던 아름다움과 잘 알던 자유와 잘 알던 믿음의 피부 아래, 그 아래에 갇힌 선홍빛 피를 짧은 문장은 우리에게 늘 보여준다.” 마른 나뭇가지에 내리쬐는 고요한 햇살 한 줌과 허술하게 보이지만 햇빛에 그을리는 덕분에 자양분을 만드는 벌레 먹은 나뭇잎에서도 우주와 내가 연결되어 문제없이 돌아간다는 엄정한 사실에서 몸의 소리를 들을 때, 짧은 문장은 갑자기 어두워지는 저녁의 찬공기와 함께 급습한다.


믿음의 피부 아래는 생각이 사각사각 죽어가지만 감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다. 고정관념의 뒤통수를 치고, 통념의 틀을 순식간에 깨부수며 도끼 같은 저격수로 짧은 문장도 전두엽을 파고들고 폐부를 찌르는 통렬함을 배달해 주면 좋겠다. 짧은 문장 앞에 원래 그런 당연함도 없고 물론 그렇다고 생각하는 상식의 터전도 없다. 짧은 문장에는 오로지 생각의 물구나무를 서는 역발상이 발상의 빈약함을 뒤집어엎고 기정사실도 이미 사실이 아님을 고발하는 침묵의 고함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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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신념과 철학, 소신과 의견을 주장으로만 피력하지 않고 문장 스스로 굴곡진 삶에 정면으로 몸을 던져 파란을 일으키는 혁명을 선언하고 언제나 현재진행형 상태로 자신의 몸을 단련하며 결기 어린 과감한 실천을 촉구한다. 짧은 문장을 읽고 나면 전율하는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물불 가리지 않는 격렬한 행동과 뜨거운 실천으로 현실의 질곡과 왜곡을 관통하며 치열한 전면전을 선언한다.


짧은 문장은 진리라고 믿어왔던 기존의 사유체계를 전복하고 누구나 옳다고 믿는 신념과 방향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면서 부정과 배반의 용기로 기존 사유체계를 통렬하게 전복하는 지적 희열감을 내포하고 있다. 직선으로 질주하는 현대사회의 촉급한 성과와 효율 중심의 목표달성 논리에 곡선의 우회적 깨달음의 복음을 전파하는 주인공도 짧은 문장이다. 짧은 문장에는 예언자적 안목과 각성의 소리가 잠재되어 있어 그걸 읽는 순간 과감한 결단과 결연한 행동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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