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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노을 아래,
촌철살인의 문장을 좇다

가을 노을 아래, 촌철살인의 문장을 좇다


가을의 노을이 아름다운 계절, 늦은 오후 카페에 세계적인 철학자, 문학가, 시인, 카피라이터가 모여서 촌철살인의 의미심장한 짧은 문장이 기억에 남은 이유와 그런 짧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 평소에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은지 저마다 주장한 핵심 개념이나 원리에 비추어 토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사회자는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이다. 세계적인 지성이 한 자리에 모여 심금을 울리는 짧은 문장에 대한 저마다의 식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언어 철학자, 언어는 의미가 이니 사용이라고 주장한 비트겐수타인

세계적인 문호, 《파우스트》의 저자 괴테

심금을 울리는 문학가,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의 저자, 헤르만 헤세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전방위적 망치 철학자, 프리드리리 니체의 아모르 파티나 영원 회귀

시적 순간을 영감으로 번역하는 함민복 시인

세계적인 카피 라이터, 광고계의 교황,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


늦은 오후, 따뜻한 햇빛이 드리운 고즈넉한 카페. 창밖에는 붉게 물든 단풍과 노을로 가을의 정취가 한껏 무르익어 있다. 부드러운 재즈 선율이 흐르고, 둥근 테이블에는 세계적인 지성인들이 모여 커피와 차를 나누고 있다. 이들의 시선에는 호기심과 여유가 동시에 묻어난다.


유영만 교수: (환한 미소로 좌중을 둘러보며) 안녕하세요, 여러분. 늦가을 기운이 물씬 풍기는 이 멋진 오후에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신 비트겐슈타인 선생님, 괴테 선생님, 헤르만 헤세 선생님, 니체 선생님, 함민복 시인님, 데이비드 오길비 회장님께 각각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짧은 문장에 담긴 언어는 의미가 아니라 사용이다


저는 오늘 이 특별한 모임의 사회를 맡은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입니다. 사실 이렇게 모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누구보다 ‘짧지만 강렬한 문장’으로 시대를 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온 분들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 모두가 ‘촌철살인’이라고 부르는 그런 짧은 문장들이 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지, 또 지금 시대에 그런 문장을 쓰려면 평소에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여러분의 철학과 경험을 바탕으로 마음껏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자, 그럼 먼저 언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선생님께 여쭤볼게요. ‘언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비트겐슈타인: (안경을 고쳐 쓰며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짧은 문장이 왜 깊이 기억에 남는지 말씀하셨죠? 제가 《철학적 탐구》에서 자주 강조한 것은, 언어란 결국 ‘사용’으로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언어의 의미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죠. 예를 들어 “물 먹지 말고, 물처럼 살아라”라는 말을 보세요. 같은 ‘물’이라는 소리지만, 앞은 해고된다는 뜻이고, 뒤는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의미로 쓰여요. 이렇게 하나의 문장이 우리의 기억에 깊이 각인된다는 것은, 그 문장이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어떤 식으로 쓰이고, 우리 행동과 생각을 어떻게 건드리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문장이 남는 건 그 의미가 우리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비트겐슈타인: 짧은 문장이 효과적인 이유는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 문장의 '사용' 맥락이 바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군더더기가 사라질수록 문장의 기능은 더 또렷해지고, 영향력도 커지죠. 그래서 이런 문장을 쓰려면 언어가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세심하게 살펴보고, 우리가 전달하려는 내용이 어떤 '언어 게임' 안에서 가장 잘 작동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사용'을 통해 의미가 살아나는 겁니다.


여기서 언어 게임이란, 특정 상황이나 목적 안에서 언어가 쓰이고, 바로 그런 맥락 때문에 의미가 확실해지는 과정을 말합니다. 각 상황, 즉 언어 게임마다 저마다의 규칙과 쓰임새가 있다고 보면 돼요. 결국 언어는 우리가 실제 어떤 상황(게임)에서 '써 볼 때'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갑자기 “체크 메이트!”라고 외친다면, 그 뜻을 아는 사람은 듣자마자 '장기'나 '체스' 게임이 연상될 거예요. 그 게임 속에서 “체크 메이트!”란 '왕이 잡혔다, 게임 끝!'이라는 의미죠. 그런데 길을 걷다 누군가 뜬금없이 “체크 메이트!”라고 하면 “저 사람 왜 저래?” 싶을 겁니다. 길거리엔 '체스 게임'이라는 맥락이 없으니,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죠. 이런 식으로 언어 게임은 그 틀 안에서만 의미가 또렷해지고, 문장이 길어질수록 그 맥락을 벗어난 불필요한 정보가 섞일 가능성이 커집니다. 반면, 짧은 문장은 한 가지 언어 게임에 집중할 수 있으니, 의미가 쉽게 흩어지지 않죠.


예를 들어, 급박하게 건물에 불이 났을 때 “현재 이곳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여러분의 안전을 위하여 모든 짐을 버려두시고 즉시 비상계단을 이용하여 바깥으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는 것보다, “불이야! 대피!”라고 외치는 쪽이 훨씬 즉각적으로 반응을 끌어냅니다. 이처럼 언어가 실제 사용되는 맥락에서 짧은 문장이 갖는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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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생태학자님 말씀처럼, 짧은 문장은 꼭 필요한 말만 남기고 문장이 놓인 ‘언어 게임’ 안에서 그 역할과 영향력을 극대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달할 내용을 어떤 ‘언어 게임’ 안에 잘 담을지 고민할수록, 짧고 힘 있는 문장을 만드는 능력도 더 분명해지는 거죠.


짧은 문장은 삶의 거울이다


유영만 교수: 정말 공감이 됩니다! ‘언어는 사용이다’라는 말이 이렇게 멋지게 와 닿을 줄은 몰랐어요. 실제로 문장이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느낍니다. 다음은 괴테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한데요. 괴테 선생님께서는 짧은 문장의 힘을 어떻게 보셨을까요?


괴테: (인자한 미소로 좌중을 바라보며) 비트겐슈타인의 날카로운 통찰에 깊이 공감합니다. 제 생각에 짧은 문장은 마치 거울 같습니다. 삶의 진실이나 인간의 본질을 가장 맑고 순수하게 비추는 거울이지요. 긴 이야기 속에서도 결국 마음에 남는 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강렬한 한두 줄일 때가 많죠. 예를 들어, 《파우스트 1》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24쪽)라는 문장은, 인간의 본질과 역설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포착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짧은 문장이 오히려 사람들이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곱씹으며 곧장 마음에 남지요.


괴테: 이런 문장은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깨닫지 못했던 진실을 깨우쳐줍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이나 사랑, 고뇌, 삶의 한계와 같은 보편적인 경험을 간결하게 압축해내서, 시대와 국경을 넘어서 모두의 공감을 부르는 거죠. 그런데 이런 문장을 쓰려면 결국 '삶' 자체를 깊이 들여다보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간 본성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살아가는 내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탐구하면서, 그 복잡한 무언가를 힘 있게 한 줄로 집약하는 직관을 키워야 하니까요.


유영만 교수: 와... ‘삶의 거울’이라니, 괴테 선생님의 말씀에서 정말 깊은 울림이 전해지네요. 짧은 한마디가 우리 마음을 비추는 거울 같다는 표현이 참 인상적이에요.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네요! 이제 우리 마음속에 소년 시절의 꿈을 심어주셨던 헤르만 헤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인데요, 어떤 말씀을 들려주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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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삶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헤르만 헤세: (따뜻하고 사려 깊은 눈빛으로 주위를 바라보며) 괴테 선생님 말씀처럼, 때로는 짧은 문장이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쓴 《데미안》이나 《싯다르타》, 그리고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소설에서도 주인공들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죠.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짧고 강렬한 문장들은, 길을 잃은 이들에게 등대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깊은 성찰의 순간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서 받는 감동과 놀라운 통찰은 오랫동안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내 삶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기도 하죠.


헤르만 헤세: 그런 문장이 유독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이유는, 우리 영혼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질문이나 갈망에 직접적으로 닿기 때문일 겁니다. 어쩌면 독자들은 그런 짧은 문장에서 저마다의 ‘데미안’이나 ‘싯다르타’를 마주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네요. 이처럼 영혼을 흔드는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진실해야 합니다. 꾸미거나 감추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간결하게 표현하려는 용기가 필요하죠. 외부의 소음보다는 내면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연습도 중요합니다. 겉으로 들려오는 수많은 ‘좋은 소리’들은, 내면을 통과해 깊이 각인되지 않는 한 결국 소음에 불과하거든요. 삶의 흔적이 내 안에 색으로 남고, 그걸 받아들여 스스로를 위로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의식하지 못한 사이, 강렬한 통찰이 담긴 짧은 문장이 번개처럼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유영만 교수: 와... 헤세 선생님 말씀, 진짜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저도 제 안의 데미안을 한 번 만나보고 싶어졌어요! 진정한 ‘나다움’을 찾는 게 바로 짧은 문장이 가진 힘이군요. 멋집니다! 그럼, 이번에는 조금 더 파격적인 니체 선생님을 모셔볼까요? 철학의 망치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니체 선생님은 짧은 문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 정말 궁금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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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통념을 깨부수는 생각 망치다


니체: (강렬한 눈빛으로 잔을 내려놓으며) 흠, 모두 의미 있는 말씀들이네요.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제가 보기에 ‘촌철살인’이라는 말 자체에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짧은 쇳조각이 사람을 해칠 만큼 강렬하듯, 짧은 문장도 기존의 사고방식을 통째로 흔들고,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내야 하죠. 저는 항상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신념이나 가치관, 모두가 따르는 도덕이나 규율조차도 의심해 봅니다. 이 모든 것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누가, 어떤 의도로 그 규율을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근본적인 가정 자체를 뒤집는 데 몰두합니다.


니체: 기억에 남는 문장이란, 독자에게 일종의 충격을 주는 한 줄이어야 합니다. 익숙하게 받아들여진 진리에 의문을 던지고, 굳은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망치 같은 역할을 해야지요. 가령 ‘아모르 파티’, 즉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이 짧은 말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도, 단순히 운명에 순응하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운명을 긍정하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용기’가 필요하죠. 기존의 질서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낼 수 있는 철학자의 자세,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뛰어넘으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제가 그 동안 서구철학을 지배해온 로고스 중심의 이성 철학을 근본부터 부셔버리고 몸이 욕망하는 철학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던 것도 용기와 저만의 의지 덕분입니다. 제 이름 니체도 세계 최초로 한자로 써서 니체(尼體)라고 표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니 체력을 알아라”는 경구이기도 하고 니체(尼體)는 신체(身體)가 커다란 이성이고 그 동안 이성이라고 생각했던 이성은 작은 이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의도로 창작한 개념입니다. 신체가 삶의 전체(全體)를 차지하며 몸을 등한시한 서구 철학을 전면적으로 해체(解體)하려는 불온한 의도가 반영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핵심을 찌르는 ‘정직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소음에 불과할 뿐입니다.


유영만 교수: 니체 선생님 말씀에 완전 정신이 번쩍 드네요! 짧은 문장이 새로운 생각으로 이끄는 생각 망치 같은 존재라니! 저도 제 생각 망치를 망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타성을 깨부수고 낯선 지식과 통찰을 출산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싶네요! 너무너무 멋지세요! 자, 이번에는 우리 시대의 언어 연금술사이자 역지사지의 달인, 함민복 시인님께 바통을 넘기겠습니다! 시인님은 짧은 문장에서 어떤 시적 순간들을 발견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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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평범한 일상에서 태어나는 시다


함민복 시인: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눈빛으로) 하하, 저는 거창한 철학자분들 옆에 앉아 있으려니 괜히 부끄럽네요. 저는 그저 일상 속의 작은 순간들을 언어로 옮기려는 사람일 뿐입니다. 짧은 문장이 기억에 남는 건, 아마도 그것이 가장 소박하고 진실된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낸 시집, 《모든 경계에 꽃이 핀다》에서 주장한 것처럼 이질적 지식 사이의 차이를 존중해주고 서로 다른 관점을 융합해야 제3의 지식이 꽃으로 핍니다.짧은 문장은 경계를 넘나드는 용기와 다름과 차이를 인정할 때 강렬한 불꽃을 일으키며 어둔 삶을 밝히는 촌철살인의 깨달음을 잉태한 짧은 문장이 탄생합니다. 그래야 ‘가을’이라는 시에서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라는 감성적 문장이 감각을 깊게 자극하는 깨달음으로 화답합니다.


함민복 시인: 예를 들어, AI에게 손가락이 왜 10개냐고 물어보면 틀에 박힌 답을 찾아다 줍니다. 저는 어느날 지나가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가락은 왜 10개일까? 곰곰이 생각하며 상상력의 날개를 펴다 임신기간이 10개원인 점에 착안, ‘성선설’이라는 시에서 “어머님 배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라는 놀라운 발상을 했습니다. 이런 문장은 복잡한 의미보다는 한 장면이나 감정을 순간적으로 살아 있게 전해줍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 문장을 읽으면서 저마다의 경험이나 추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그 덕분에 더 깊이 공감하고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문장을 쓰려면 특별한 기술보다는 ‘자세히 바라보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평소 무심코 넘겼던 것들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그게 내 마음에 어떤 울림을 주는지 섬세하게 느껴보는 거죠. 따끈따끈한 갓 지은 밥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 속에 숨어 있던 이야기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거예요.


유영만 교수: 와아! 함민복 시인님 말씀에 완전 공감 100배에요! 저도 주변을 더 자세히 봐야겠어요! 평범한 것도 시가 될 수 있다니, 완전 마법 같아요! 마지막으로, 짧은 문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 온 세계적인 카피라이터, 데이비드 오길비 회장님! 프랑스 경제지 ‘엑스팡시옹’은 산업혁명에 크게 이바지한 서른 명을 거명하면서 에디슨, 아인슈타인, 레닌, 마르크스 등에 이어 일곱째로 오길비의 이름을 올리고 ‘현대 광고의 교황’이라고 적었을 정도로 회장님의 카피 작성 비법은 뭘지 궁금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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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은 설명하지 않고 설득한다


데이비드 오길비: (자신감 있고 명쾌한 목소리로) 좋습니다, 저에게 질문이 왔군요. 저는 예술가가 아니라 장사꾼입니다. 하지만 짧은 문장의 위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저의 영역에서 ‘촌철살인’이란, 소비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아 행동으로 이끄는 문장입니다. 저는 길게 설명하지 않고 단 한 마디로 고객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설득을 하죠. 설명하면 머리가 아프지만 설득하면 감동받고 바로 카드를 긁게 만드는 행동을 유발합니다. 놀라운 비법이자 마술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데이비드 오길비: 왜 짧은 문장이 기억에 남느냐? 단순합니다.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길고 장황한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의 메시지는 번개처럼 빠르고 명확하게 고객의 머리와 가슴에 박혀야 합니다. 제 철학은 ‘정보를 주는 동시에 유혹하라’입니다. “롤스로이스가 시속 60마일로 달릴 때 가장 시끄러운 소리는 전자시계 소리입니다.” 이 한 문장은 롤스로이스의 품격과 정숙함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제품의 '정숙성'이라는 장점을 화려한 수사 대신 구체적인 사실로 표현했습니다. 당시 롤스로이스 엔지니어가 이 카피를 읽고 “망할 놈의 시계 소리도 어떻게 해야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카피는 제품의 품질을 입증했습니다. 이런 문장을 쓰려면, 첫째, 당신의 청중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욕망, 필요, 언어를 파악해야 합니다. 둘째, 당신이 팔고자 하는 것의 본질적인 이점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모든 불필요한 단어를 제거하고, 오직 핵심적인 가치만을 남기십시오. 셋째, 끊임없이 테스트하십시오. 어떤 문장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직접 실험하고 배우십시오. 이 세 가지 노력이 없다면, 당신의 문장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겁니다.


유영만 교수: 우와아아! 역시 광고의 신! 오길비 회장님 말씀 완전 핵심만 콕콕 짚어주시네요! 역시 광고계의 교황답습니다. 짧은 문장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군요! 우리 지식생태학자도 이런 촌철살인 같은 문장을 쓸 수 있도록 오늘 말씀들 잘 새겨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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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 교수: (다시 모두를 둘러보며) 여러분, 오늘 정말 귀한 말씀들을 많이 들은 것 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 선생님의 ‘언어는 사용이다’라는 말씀이 문장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고, 괴테 선생님을 통해서는 삶의 본질을 담아내는 거울 같은 문장을 배웠죠. 또 헤르만 헤세 선생님의 내면의 울림과 솔직함이 녹아 있는 문장, 니체 선생님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망치 같은 문장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함민복 시인님의 따뜻한 시선으로 일상의 시를 발견하는 즐거움, 그리고 데이비드 오길비 회장님의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문장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짧은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안에 삶의 본질이 녹아 있고,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여 마침내 행동으로까지 이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장을 쓰기 위해선 ‘관찰’, ‘성찰’, ‘용기’, ‘정직함’, ‘진실함’, ‘청중을 향한 이해’, ‘핵심을 꿰뚫는 압축’, ‘끊임없는 실험’ 같은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모두가 따뜻한 박수를 주고받으며 미소 짓는 사이, 깊어가는 가을밤의 여운이 번져갑니다. 창밖에는 어느새 노을이 져가고, 하늘에는 별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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