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읽고
사랑은 잼이 아니라 샐러드다
사랑은 용광로가 아니라 모자이크, 가방이 아니라 보자기의 마음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44쪽). “사랑은 모든 사물을 잼처럼 혼동시키지 않고 샐러드처럼 혼연일체로 만든다”(45쪽). 2025년 아쿠타와 수상작인 스즈키 유이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소설책에 나오는 문장이다. 홍차 티백에 적힌 이 낯선 문장 하나를 보고 평생 괴테를 연구해 온 학자 도이치는 자신도 모르는 괴테의 문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과연 이 문장이 괴테가 한 말인지를 백방으로 찾아보지만 결국 출처를 찾아낼 수 없었다. 절치부심 끝에 결국 가족과 함께 문장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독일로 떠나는 여정에 오른다. 티백에 적힌 한 문장 때문에 주인공 도이치가 명언의 출처를 찾아 독일까지 떠나는 문장 찾아 삼만리 같은 여정은 작은 문장 하나가 한 사람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같은 책에서 저자는 “잼적 세계란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든 상태, 샐러드적 세계란 사물이 개별적 구체성을 유지한 채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는 상태”(41쪽)라고 잼과 샐러드에 비유하여 두 가지 차이점을 사랑에 대입하여 설명한다.
우선, 잼과 샐러드로 비유한 사랑의 의미는 ‘개별성을 지키느냐, 아니면 소멸시키느냐’라는 차이로 나눌 수 있다. 사랑이 잼처럼 이루어진다면, 온갖 재료는 불 위에서 푹 끓여지고 힘없이 으깨져 결국 본래의 모양과 질감을 다 잃고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서로가 지닌 고유한 맛과 빛깔도 흐려져 버리고, 결국 한데 뒤섞여버리는 것이다. 이런 사랑에서는 나와 상대, 각자만의 색깔과 개성이 모두 뭉개지고 희석된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느새 내가 누구였는지조차 잊고, 마치 투명하게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 버리는, 그래서 조금은 슬프고 위태로운 장면이 펼쳐지는 셈이다.
하지만 샐러드 같은 사랑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삭아삭한 양상추, 탱글탱글한 방울토마토, 그리고 고소한 치즈까지, 각 재료는 저마다의 모양과 맛, 식감을 고스란히 지닌 채 자리하고, 서로 모여 하나의 화려하고 풍성한 요리를 만들어낸다. 이런 사랑은 각자의 고유한 색깔과 개성을 존중하고 간직하면서도, 함께 어우러져 더 멋진 조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서로의 다름’이 힘없이 녹아 하나가 되어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름이 서로를 살아나게 한다. 다름과 다름이 조화를 이루는 속에서 만들어지는 ‘화이부동’의 아름다움, 이게 바로 샐러드처럼 사랑하는 모습일 것이다.
잼과 샐러드로 나뉘는 사랑의 또 다른 차이점도 꽤 뚜렷하다. 잼은 모든 재료가 뜨거운 불 앞에서 견디며 혼연일체가 되는 과정에서, 저마다의 개성은 흐려지고 하나로 통일된다. 결국 단맛 하나가 두드러질 뿐, 각 재료의 고유한 향과 맛은 그 속에 묻혀버린다. 이런 사랑이라면,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관계라기보다는, 아무 무늬 없이 평평하고 밋밋한 관계, 어느새 내가 누구였는지도 모르게 되어버린 그런 사랑으로 변할 위험이 크다.
반면 샐러드는 완전히 다르다. 각 재료가 지닌 맛, 식감, 향이 어우러지지만 각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킨 채로 존재하고, 여기에 취향껏 곁들인 새콤달콤한 드레싱이 각각의 매력을 더 빛나게 만들어준다. 이처럼 사랑도, 서로 다른 환경과 생각, 가치관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각가의 강점은 살려주고 약점은 다독이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여정이다. 때론 내게 없는 특별한 다름이 상대에게 영감이 되어, 두 사람 사이에 아주 멋진 변화와 성장이 싹틀 수 있다. 그렇게 사랑은 샐러드처럼—서로 다른 재료들이 자신의 빛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한 접시에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로 피어난다.
잼과 샐러드에 비유되는 사랑의 세 번째 의미상의 차이는 바로 단조로운 반복과 다채로운 경험의 깊이에서 비롯된다. 잼이 한 번 만들어지면 그 형태와 맛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식탁 위에 오른 순간부터 마지막 한 스푼까지, 변함없이 똑같은 맛을 내며 우리에게 익숙한 경험만을 내민다. 이런 사랑은 어느새 관계에 예측 가능성과 단조로움을 불러오고, 결국 따분함에 빠져버리기 쉽다. 새로운 배우나 성장 없이 그저 멈춰 있기에, 금세 지루함으로 가득 차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번 완성되면 오랜 시간 같은 맛과 향으로 고여 있는 잼처럼, 그런 사랑은 결국 사랑을 추상명사로만 남겨 정체된 공간에 가둬버리는 셈이 된다.
반대로 샐러드는 한 접시 안에서도 각양각색의 색감과 식감, 그리고 맛들이 어우러져, 먹을 때마다 색다른 경험이 펼쳐진다. 한 입을 베어 물 때마다 다른 재료들이 함께 어우러져 입안에서 작은 축제가 벌어진다. 지루할 틈 없이 풍미의 변주가 쉴 새 없이 이어지니, 매 순간 새로운 즐거움과 돌발의 묘미를 준다. 사랑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각기 다른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감정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얻는다. 사랑하는 만큼 더 넓고 깊어지며,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숨 쉬고 변화한다. 서로가 서로를 통해 ‘제2의 나’로 벗어나며, 함께 성장해 가는 기쁨을 온몸으로 누릴 수 있다.
결국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는 말은, 진정한 사랑이란 서로를 녹여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온전히 인정하면서, 함께 어우러져 더 아름답고 풍성한 그림을 완성해 간다는 뜻 아닐까. 잼 같은 사랑은 어쩌면 지나치게 완벽한 일치를 좇다 서로를 잃어버리는 불완전한 만남에 가깝다. 그에 비해, 샐러드 같은 사랑은 늘 새롭게 태어나면서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혼연일체’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첫 사람, 첫사랑을 만나는 듯 설렘으로 매번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이자, 다채로운 색채로 펼쳐지는 인생의 파노라마인 셈이다.
저자가 든 잼과 샐러드의 비유는 용광로와 모자이크를 통해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흔히 미국 문화를 두고 각자의 개성을 모두 녹여 하나로 뒤섞는 ‘용광로’에 비유하고, 캐나다 문화는 다양한 개성이 자기 빛을 내며 서로 더 빛나게 하는 ‘모자이크’에 빗대어 이야기하곤 한다.
먼저, 용광로와 모자이크가 사랑에 대해 던지는 첫 번째 의미상의 차이는 바로 ‘융해와 소멸’, 그리고 ‘개별성의 보존’에 관한 것이다. 용광로의 혼돈은 각 재료의 개별성을 힘으로 녹여 없애 버린다.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쇳조각들이 제 빛깔과 모양, 고유한 성질을 온전히 잃고 하나의 무거운 덩어리로 변하는 모습처럼, 사랑이 이와 같이 흘러간다면 두 사람의 특별한 매력은 감쪽같이 녹아내려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사라지는 쓰라린 아픔을 남길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을 잃어버린 채 외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셈이다.
반면 모자이크가 만들어내는 ‘조화’는 사뭇 다르다.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조각이 저마다의 빛깔과 결을 고스란히 품은 채,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 각 조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자리를 찾아가면서 전체 작품 속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활력이 되어 준다. 만약 사랑이 이렇다면, 서로의 고유한 개성은 물론 다름까지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그 차이점이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를 한층 더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원천이 된다. 서로 다른 색채가 어우러진 화려한 하모니가 울려 퍼지는 사랑, 바로 그런 그림 한 폭이 펼쳐지는 것이다.
용광로와 모자이크가 사랑에 알려주는 두 번째 의미는 ‘창조적 조화’와 ‘파괴적 변화’의 대비에서 엿볼 수 있다. 용광로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한 덩이로 합쳐지지만, 그 과정은 폭력적이다. 각각의 재료에게 본질적인 변화를 강요하고,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으라고 명령하는 힘이다. 사랑이 용광로라면 상대에게 큰 희생과 변화를 끝없이 요구하고, 마침내는 서로가 서로를 억지로 바꾸려 든다.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빚으려는 압박, 그리고 거기에 순응해 버리는 무기력 속에,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반대로 모자이크를 만드는 손길은 조각 하나하나를 소중히 고르고, 어울릴 자리를 섬세하게 찾아 건넨다. 파괴가 아닌 연결과 어울림으로 탄생하는 모자이크의 과정에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끝까지 보듬으며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낸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존중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어울려 나가는 여정 속에 진짜 사랑이 자라난다. 상대를 소중한 하나의 조각으로 여기는 따뜻함, 존중과 배려가 사랑의 밑바탕에 진하게 스민다.
마지막으로, 용광로와 모자이크가 사랑에 던지는 세 번째 의미의 차이는 바로 ‘깊이의 부재’와 ‘풍요의 심연’이다. 용광로에서 나온 결과물이 겉보기엔 매끄럽고 단단할지 몰라도, 그 속엔 본래의 다채로운 기억과 이야기가 사라진 채 그저 하나의 덩어리만 남는다. 그러다 보면 관계도 점점 단조로워지고, 깊은 감정과 이해 없이 외형만 남는 획일적 사랑에 갇힐 수밖에 없다.
반대로 모자이크는 자그마한 조각마다 고유의 색채와 질감, 저마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전체의 그림을 완성한다. 서로 다른 삶과 경험, 감정이 모여 한 폭의 다채롭고 풍요로운 세계를 엮어가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마음에 새기고, 다양한 빛깔로 어우러질 때, 사랑은 깊어지고 삶은 한 층 더 아름다워진다. 모자이크 같은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든든하게 지지하며, 끝없이 새로워지는 감동으로 하나의 세계를 그려나간다.
잼과 샐러드, 용광로와 모자이크의 차이점은 가방과 보자기의 차이점에 비추어 사랑을 비유해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랑이 “잼처럼 혼동시키지 않고 샐러드처럼 혼연일체로 만든다”는 메시지를 ‘가방’과 ‘보자기’의 은유에 대입해서 다시 한번 사랑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어 갈 수 있다.
가방과 보자기가 사랑을 대하는 방식의 첫 번째 의미 차이는 ‘개별성에 대한 압박’과 ‘품위 있는 포용’에서 시작된다. 가방은 기본적으로 물건을 담아 운반하는 데 초점을 맞춘 기능적 도구다. 딱 정해진 그릇 안에 물건을 억지로 욱여넣다 보면, 각자의 모양은 쉽게 찌그러지거나 부딪히며 원형을 잃곤 한다. 가방이라는 세계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어서, 타인의 개성도 내 기준에 맞추어질 때만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마치 제멋대로 만든 잼이 제 색깔을 잃고 뒤섞이듯, 다양한 모습들이 가방 안에서 서로 눌리거나 압축된다. 사랑도 이럴 때가 있다. 상대를 나에게 맞추라고 강요하다 보면, 서로의 고유함은 사라지고 호흡마저 답답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보자기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보자기는 물건 하나하나의 모양을 품에 안기듯 자연스럽게 감싼다. 오히려 물건이 중심이 되고, 보자기는 그에 자신을 맡긴다. 상대방의 개성이 내 안에서 녹아 없어지는 대신, 그 빛깔을 그대로 살릴 수 있도록 아낌없이 배려하고 존중하는 정신이 보자기에는 깃들어 있다. 물건의 곡선을 따라 유려하게 감아내는 보자기는, 어디 내놓아도 각 물건의 특징이 은은히 드러나게 한다. 샐러드에 들어간 채소들의 색이나, 모자이크 한 조각 한 조각이 조화롭게 빛나는 모습처럼, 보자기는 차이를 인정하며 포용하는 미덕이 몸에 배어 있다. 사랑이 보자기 같다면, 나와 네가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마저 내 품으로 감싸 안으며 각자의 빛깔이 더욱 또렷해지도록 북돋는 숭고한 과정일 것이다.
가방과 보자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 번째 의미의 차이는 ‘획일적 기능성’과 ‘진심 어린 의미 부여’의 대조다. 가방은 늘 효율과 실용성을 앞세운다. 빠르고 간편하게 담았다 꺼낼 수 있고, 한 번에 많은 것을 넣으려 애쓴다. 내용물 자체보다, ‘운반’이라는 목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쉽다. 용광로에서 쏟아져 나오는 쇳덩이처럼 결과물들은 제각기 특색 없는 표정을 하고 있다. 사랑마저도 이렇게 실용성 혹은 일방적 목표에만 몰두하다 보면,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를 남기지 못한 채 관계라는 틀만 겨우 유지하게 된다. 다음 목적지로 효율적으로 이동하려면 가방에 속도를 맞춰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상대를 더 깊이 들여다보거나 의미를 부여할 여유 없이, 빨리 담고 빨리 꺼내야 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반면 보자기로 무언가를 싼다는 건, 그 자체로 특별한 마음과 정성이 담긴 의식이다. 하나씩 차분히 고르고, 펼치고, 예쁘게 묶는 과정이 선물의 포장 만큼이나 소중하게 이어진다. 마치 작은 모자이크 조각을 손끝으로 한 땀씩 끼워 맞추는 것처럼, 보자기로 무엇을 감싼다는 건 단순한 운반을 넘어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나 존중의 상징이 된다. 사랑이 보자기라면, 상대의 작은 흔들림까지도 소중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정성을 다해 보듬으며, 관계 속에서 탄생하는 모든 순간을 값지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내 입장을 밀어붙이기보다, 상대의 처지와 감정을 삼켜내며 부드럽게 포개는 배려가 자연스럽게 배어난다.
마지막 세 번째 의미의 차이는 ‘외부의 틀 속에서 규정된 관계’와 ‘내면에서 피어나는 조화’로 흔들린다. 가방은 이미 완성된 외형을 지닌다. 무엇이 닿아도 자기는 쉽게 변하지 않으며, 내용물을 자신의 틀에 맞추려 든다. 재료가 본래의 생명력을 잃고 하나로 으깨어진 잼처럼, 가방은 외부의 강요된 틀 안에서만 질서를 허락한다. 이러한 사랑은, 진실한 감정이나 내면적 소통보다 타인의 시선이나 정해진 역할극 속에 갇혀 버린다. 상대방의 취향이나 감정은 부차적일 뿐, 나 자신의 만족에만 몰두하는 태도로 흐르기 쉽다.
이에 비해 보자기는 내면을 감쌀 때마다 다르게 변모한다. 내용물의 생김새와 배열에 따라, 보자기의 실루엣이 다채롭게 피어난다. 샐러드의 재료들이 하나하나의 자리에서 조화를 이루고, 모자이크의 작은 돌들이 모여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 내듯, 보자기는 외양이 아니라 본질이 결정하는 조화와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사랑이 보자기라면, 바깥의 시선이나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두 사람이 진실하게 나누는 마음과 개성이 부드러운 융합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관계의 꽃이 피어난다.
가방이 주는 편리함도 있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보자기처럼 상대를 섬세하게 감싸 안고, 그 자체로 의미를 더하는 관계가 더 깊고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울 때 사랑의 의미와 가치가 살아 숨 쉴 수 있다. 잼과 샐러드, 용광로와 모자이크, 가방과 보자기의 차이점이 사랑에 던져주는 시사점은 “작가가 사상가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나뭇잎 한 장으로 자신의 숲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168쪽)이라는 저자의 주장에서 영감을 받고 쓴 글이다. 작가의 책을 보다가 밑줄 친 한 문장이 내 가슴으로 날아든 영감의 나뭇잎 한 장이 된 셈이다. 잼과 샐러드 비유는 용광로와 모자이크, 가방과 보자기를 은유적으로 비유하며 사유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