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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홀러 류 씨 Sep 27. 2017

D-100

프로 워홀러 정년퇴직을 백일 앞두고.

1) 

대만 워홀 생활이 오늘(9월 27)을 기준으로 100일 남았다. 대만 워홀이 끝남과 동시에 나의 긴 워킹 홀리데이 생활도 함께 끝난다. 나는 왜 만 서른두 살인 걸까. 내 인생에서 어디를 빼서 워홀로 바꿨어야 했나 찾아봐도 딱히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일본 비자 준비가 2년 반이나 걸린 게 좀 시간이 아깝지만 어쩌겠는가, 비자받는 데에 1년 반이나 걸린 것을. 일본 유학도,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학교를 졸업한 것도 어딘가에서 워홀로 바꾸기엔 소중하고 얻은 게 많은 시간이었다. 특히 한국에서 다시 학교를 다니던 시기에 배운 게 많고 나 자신도 여러 방면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느끼기에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잘 한 것은 수묵화를 배운 것과 사진을 배운 것. 수묵화는 개인적으로 주 1회 화실(현재는 선생님께서 그만두심.ㅠㅜ)을 다녔고, 사진은 학교에서 교양 수업 한 학기, 언론정보학부의 전공 수업 한 학기, 총 두 학기를 같은 선생님(https://www.facebook.com/ghjeon)의 수업으로 수강했다. 아마 순수하게 수업을 통해 환골탈태한 건 내가 역대급이 아닐까 싶다.


2)

대만 생활이 100일 남았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당황스럽다. 아무것도 한 게 없이 260일이 지나갔다. 그중 180일은 더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였을 거다. 해야지, 하고 싶어 라고 생각한 것들 중 이룬 게 있을까. 돈에 쪼들려 허덕이며 보낸 여덟 달이었다. 9월부터는 슬슬 카메라도 들고나가려고 하는데 아직 덥고, 휴일을 통째로 외출에 쓰기에는 내 체력이 그만하지 못하다.


3)

슬슬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9월 초에 귀국 항공권을 구입했다. 평소라면 직전에 구입하는데 이번엔 남동생이 만들어 준 PP 가족 카드로 9월 안에 뭐가 됐든 결제해야 해서 항공권을 미리 구매해야 했다. 송산 공항을 통해 김포 공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결국엔 타오위안 공항에서 일본 오키나와(?!)를 경유해 인천 공항으로 돌아간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뭐. 

타이베이는 비자가 만료되는 2018년 1월 5일에 떠나고, 한국에는 대만 워홀을 떠난 날로부터 정확히 1년이 되는 2018년 1월 10일에 돌아가게 된다.


4)

한국에 돌아가서 어디서 무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서울에서 계속 지내기엔 부모님이 서울 집은 그대로 두고 천안으로 내려가셔 생활하고 계시기 때문에 심적으로 불편함이 있다. 아빠가 천안에서 혼자 지내는 것이 마음에 걸려 엄마가 천안으로 내려가 가끔 서울에 올라오시는 생활을 하고 계신데, 내가 서울에서 지내면 엄마는 또 혼자 지내는 요리도 못하는 딸이 신경이 쓰일 것이다. 내가 아무리 나이가 30대 중반이라고 해도 부모님에겐 영원한 '자식'일 뿐이니까. 연세가 70대인 고모들도 막둥이 남동생인 아빠를 아끼시는 걸 보면 아빤 60대 중반의 연세에도 고모들에게 '막둥이'일 뿐이더라. 나이 차이가 좀 있는 내 남동생도 곧 서른이지만 내겐 그저 한 없이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예쁜 동생인 걸.(정작 본인이 싫어해서..) 가족은 나이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처음엔 한국의 국내 여행은 거의 해본 적이 없으니 팔도를 한 달씩 체류하며 국내 일주를 하면서 지낼까 했지만 계산을 해보니 내가 가진 돈이 너무 없다.(난 대만에선 가불 요정이니까~*) 그래서 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도시에서 체류하면서 워킹홀리데이로 지내는 건 어떤가 생각해보았다. 제주를 유력 후보지로 두고 부산, 경주, 부여, 공주, 순천, 여수 등도 고려해보기로 했다. 전세를 구할 돈도 월세로 지낼 돈도 없으니 숙소 제공이나 지원이 되는 곳을 구해야 한다.


5)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래서 내년부터 제주도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기로 했다. 정년퇴직하고 계약직으로 생명 연장한 기분이다. 제주도와는 인연이 없다. 주변에 제주도 출신은 정말 많은데 정작 나는 1994년인가에 1996년에 학교 걸스카우트에서 수련회, 2000년 5월 고1 때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 게 전부다. 그래도 제주도로 가는 건 완전 확정이다. 가는 시기는 귀국하자마자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정확한 날짜는 미정이다. 그래서 요즘 마음이 붕 떴다. 남은 대만 생활에 집중하고 싶어도 집중이 안 된다. 자세한 이야기는 모든 게 다 '확정'이 되면 할 생각이다. 나는 그저 제주도로 가는 이야기를 너무 하고 싶었다.


6)

남은 대만에서의 100일은- 밀린 걸 하기엔 시간이 없으니 살던 대로 살다 가야겠다. 중국어는 여전히 손도 못 대고 있고 더워서 집에만 있지만 여행은 당일치기라도 최대한으로 다녀오려고 생각 중이다. 더위가 한 풀 꺾였나 싶었는데 다시 또 낮엔 기온이 35~37도까지 올라가 노트북에 손을 얹고 있을 수 있는 건 밤 11시 이후나 가능하다. 브런치에 올리던 것도 올리고, 워홀 통신원도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여행도 다니고 사진도 찍고 밥도 먹고 일도 하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1월 5일이 오겠지. 왠지 그날은 기분이 묘할 것 같다.


7)

와, 올리고 보니 이 글이 백 번째 글이다! 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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