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매일매일, 와비사비> 리뷰
와비사비, 무엇인가?
-<매일매일, 와비사비> Review-
정신없이 사는 요즘, 단순한 삶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문학 이외에 다른 책을 읽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에 알게 된 <매일매일, 와비사비>라는 도서는 소개 글을 보자마자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히 들었다. 단순하고 질감이 좋을 것 같은 표지가 마음에 들었고, 일본 문화와 철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더 관심 있게 본 책인 것 같다.
최근 들어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를 주위에서 종종 듣곤 한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겠다고 개인 sns 계정에 물건을 하나씩 버리는 사람도 보고, 미니멀리즘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버림으로써 새 삶을 개척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알게 됐다. 물질적인 욕심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것들만을 지니고 살아가려는 모습들, 나는 그런 모습들에 또 다른 환상을 가졌었다. 버려야지 행복해지는구나, 하고 말이다. <매일매일, 와비사비> 책을 읽게 된 이유도 비슷하다. 정돈되고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은데, 이 책에서는 미니멀리즘 같은 것들을 이야기해주겠지?라고 기대하고 읽어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편견이기도 했다. 와비사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미니멀 라이프 자체도 집착이 될 수 있다. 와비사비의 가장 중요한 철학인 불 완벽성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완벽하게 깔끔한 집을 꿈꾸는 것 때문에 더 골머리를 앓을 수 있다.
그래서 본론에 앞서 와비사비는 미니멀 라이프랑 다르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복잡하고 뒤엉킨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와비사비 철학 또한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특징 중 하나는 심플함이다. 그래서 영화 중에선 슬로라이프(?) 장르를 즐겨보는데, 일본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이기도 하다. 잔잔하고 별다른 특징 없는 스토리가 흥미롭다기보다는, 단순히 영상의 주인공이 허허벌판을 뛰어도, 조용한 곳에서 체조를 해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 힐링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지루하긴 하지만 나름이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라고 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취미이기도 하다. 또 각종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접하면서, 일본의 다도문화나 신사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었는데, 그 부분은 책에서 잘 다뤄줘서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할 와비사비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실 이 책의 저자도 와비사비를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다고 수십 번 넘게 말을 했다. 여러 예시를 들어주고, 비슷한 단어들을 나열해줘도 와비사비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책 중반 부분부터는 그냥 내 나름대로 와비사비는 이런 거야,라고 정의를 내리고 읽었다.
「 와비(단순함) + 사비(시간의 흐름)」
사람마다 와비사비에 대한 생각은 다 다를 것이다. 어떤 분은 와비사비 정의를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조용한 곳에서 차를 마신다든지, 손님들이 떠난 방을 혼자 정리하면서 와비사비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와비사비를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은 한정돼있지 않다. 누구든지 경험할 수 있고 경험하는 것이다.
와비사비의 철학
1. 사람은 영원하지 않으며 불 완벽한 존재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완벽해지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2.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라.
3. 결과보단 결과를 얻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사실 와비사비의 마음을 갖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 경우를 이야기하자면, 나는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인간관계에 무진장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먹이사슬이니 경쟁 사회니 하면서 스스로를 경쟁력 없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상태이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와비사비가 행복에 대한 방향점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점점 책 중반부로 갈수록 와비사비의 개념이 막연하게 느껴졌다. '와비사비의 마인드가 정신건강에 좋다는 건 잘 알겠는데, 그렇게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건가? 아무리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다고 하지만, 정말 마음먹는 게 쉬운 건가?' 그래서 결국 나중에는 읽다가 거부감까지 들어 책을 덮어버리기도 했다.
나는 많은 장소에서 이 책을 읽었다. 책을 한 곳에 앉아서 진득이 보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특히 비문학은 더 그런 것 같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책을 보곤 했다. 버스에서도 보고 집, 도서관, 빈 강의실 등등 많은 분위기를 경험했다. 그리고 말했다시피, 와비사비에 대한 막연함이 생겨 책을 덮고 싶을 무렵에, 학교의 빈 강의실 창가 자리에서 책을 읽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곳, 창밖에는 예쁜 벚꽃나무가 피어있고 하교하는 학생들의 수다스러운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전자시계의 일정한 음과 저녁 6시의 서늘한 햇빛은 서로 조화를 이뤘다. 그리고 처음으로 고요 속에서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약 20분 정도 침묵을 유지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글자를 따라갔다. 무언가에 깊게 빠져든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고요함을 눈치챘을 때, 그 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바로 와비사비를 경험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 책의 많은 부분들을 접었다.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들을 기억해 두기 위해서였다.
<매일매일, 와비사비>는 8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절반은 살면서 내가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상 깊게 본 구절들을 같이 공유하려고 한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 사람, 생각들 가운데서 찾으라. 때로는 인생이 순환하고, 영원하지 않으며, 짧고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성찰하라는 의미다. 가능성과 호기심에 마음을 열어두라는 의미다. 더 단순한 삶이 주는 선물을 찾으라는 의미다. <61p>
사람들은 선 사상이 그저 차분함, 덧없음, 더없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요. 하지만 사실 선 사상은 불행, 외로움, 걱정, 괴로움 감정 등과 같은 어려움을 어떻게 마주 하느냐에 관한 철학입니다. <115p>
자신의 불충분함을 일깨워주는 사람을 동경하고 추종하는 이유는 그들에게서 완벽함이라는 비현실적인 이상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의 가치관과 롤모델을 바꾸어야 한다. <123p>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에게서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은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해. 심지어 내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에게서도." A의 관대함은 그 혜택을 받는 이에게도 익명의 선물이지만 A 자신에게도 관계를 유쾌하게 해주는 선물이었다. <165p>
존경하는 사람을 마음속에 떠올려보라. 아마 그 사람은 지금 여러분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에게서 늙음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 젊어 보이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만 아름다움과 지혜는 경시한다. <119p>
삶을 살아가면서 평정을 유지하는 건 꼭 필요하다. 누군가와 트러블이 있을 때, 무언가에 집중해야 할 때, 미래를 생각할 때 등등 중요한 순간 와비사비의 철학은 빛을 발할 것이다. 사실 와비사비는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다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누구에게나 그럴 자격은 있으니 말이다.
지구 상의 모든 것들이 불완전의 선에서 춤을 추고 있다. 어느 하나 소외되는 것 없이. 그러니 완벽함을 당연한 것이라 여기지 말자. 문제 제공자를 탓하려고만 하지 말자. 달라지는 건 상처의 깊이뿐이니. 낡은 것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자. 새로움의 결과는 결국 낡음이니, 모든 것은 결국 돌아오게 된다.
책 소개
덴마크의 라곰, 핀란드의 휘게 그동안 라이프스타일로 각광받았다. 2019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무엇일까? <트렌드 코리아 2019>는 '와비사비'를 꼽았다. 그동안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북유럽 삶의 방식이었다면 동양의 라이프스타일인 와비사비는 우리에게 훨씬 익숙하다. 부족함에서 만족을 느끼고, 오래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와비사비 라이프스타일을 구체화한 사람은 놀랍게도 동양인이 아니라 서양인들이었다. 일본인들의 삶에 녹아 있지만, 너무 자연스러워 언어로 설명하지 못했던 와비사비의 철학에 서양인들은 주목했다. 이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그들에게 와비사비는 지금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고, 부족하고 모자란 것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매력적인 삶의 지혜였던 것이다.
<매일매일, 와비사비>의 저자 베스 켐프턴은 대학에서 동아시아를 연구하며 동양의 문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20년간 일본에서 살아온 그는 영국인으로서 동양의 철학과 아름다움을 이방인의 눈으로 관찰해왔다. 서양인들에게는 생소했지만, 꼭 구체화하고, 알리고 싶은 삶의 방식이었던 ‘와비사비’에 그는 매료되었고, 와비사비의 생활방식과 철학을 연구했다. 더럼 대학교 동아시아연구학과 재학 시절에는 한국어를 1년 동안 배우기도 했고, 한글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기도 했다. 또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통역사로 근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과 직업을 사랑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이력은 와비사비를 단순히 미학적인 측면뿐 아니라, 삶의 영역 깊숙이 관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와비사비를 철학으로 접근해 일과 삶, 인간관계 등 전 영역에 적용하는 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 책은 객관적이고 탐구적인 연구자가 와비사비의 기원과 역사를 찾는 탐구이며, 감성적인 언어로 와비사비를 삶에서 발견하는 한 영국인 여성의 이야기이며,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부족하지만 아름다움 지금의 나와 나의 현재를 긍정할 수 있게 돕는 자기계발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주제는 저자가 20년간 연구하고 매료되었던 와비사비의 철학으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