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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 Aug 06. 2024

밤 9시까지 노는 아이들

책상에 앉힐 것인가? 책상에 앉을 것인가?

아침부터 지구 반대편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내용인즉슨 6살 손녀가 공부는 안 하고 하루 종일 노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또래아이들은..."이라며 말을 덧붙이셨다. 틈틈이 딸아이 사진을 공유해 드리는데 그것을 보시고 하는 말씀이다.

맞다. 내 아이는 아침에 눈을 뜨면 지쳐 잠이 들 때까지 하루종일 논다. 나름의 사회생활에 논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할머니 기준에서는 맞다.

땅 파면서 노는 아이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내 유년 시절 둘째 가면 서러워할 정도로 치맛바람을 휘날리셨고 내 기억으로 나는 굉장히 저학년 때부터 교과에서 스포츠까지 개인교습을 했었다. 일례로 매일 엄청난 양의 구몬 수학을 다 풀어야만 밖에 나가 놀 수 있었는데 내가 수학문제를 다 풀 즈음이면 해가 어둑어둑해져 동네 아이들은 저녁을 먹으러 집에 들어가고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집 앞 놀이터에 나가 또래 아이들과 놀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웃프지만 이게 내 유년시절이다.

그랬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한다면 그 역시도 반박할 여지는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손녀를 보고 있는 할머니의 마음이 타들어갈 수밖에...

아무 데나 눕는 아이


요즘 일몰 시간은 저녁 8시 50분 즈음인데 여기 아이들은 해가 질 때까지 논다. 밤 9시까지 집 밖의 놀이터는 아이들 소리로 시끌벅적하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고요해진다. 그중 내 딸아이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어 해 질 무렵 아이를 찾으러 놀이터에 나가보는 것이 일상이다.

함께 땅 파는 아이들

매일 매달리기, 킥보드, 클라이밍으로 단련되어서 그런지 아이들의 체력이 대단하다. 주말은 아침 먹고 나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점심, 저녁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밖에서 노는데 헤어질 때는 아쉬워하며 또다시 내일을 기약한다.

매달리기와 외줄 타기를 즐기는 아이




새까맣게 그을려 잇몸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딸아이를 보며, 나는 마냥 마음이 편할까?

냉정하게 보자면 다 같이 놀고 있지만 여기 아이들과 내 아이는 상황이 다르다. 우선 내 아이는 영주권이 없다. 그래서 스위스 시스템 안에서 직업을 구하고 사회 일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는 여기 아이들과 상황이 다르다.

둘째, 아이는 독일어를 아직 하지 못한다. 동네 친구들은 모국어가 독일어이기에 영어를 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2개 국어를 구사하는 것이지만 내 아이는 지금 기본적인 언어가 안 되는 상황이다. 이곳의 대학을 생각하자면 빨리 독일어를 배우게 해야 한다.

셋째, 당장 5년 후, 10년 후 우리가 어디에 있을지 불투명하다. 남편은 여기에 permanent job으로 왔지만 이민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그 무게는 엄청나 우리는 처음부터 이민을 고려하진 않았다.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착을 하거나 지구의 또 다른 어딘가에 있겠지 하는 생각이다.

동네 수영장에서 노는 아이들

이러한 불안함을 감수하고도 내가 아이를 자유롭게 두는 것은 내 경험이 상당 부분 작용한다.

놀이터에 나가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놀아보지 못한 나의 수학 실력은 보잘것없다. 어렸을 때 일찍부터 더하기 빼기 하다 평생 더하기 빼기밖에 못할 수도 있다는 물리학과 교수친구의 우스갯소리가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공부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미리부터 애써 힘 뺄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속 마음이다. 다만 아이와 같이 책을 읽고 같이 배우려 노력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그 누가 사람마다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섣불리 판단할 수 있는가. 사람은 모두가 저마다의 잠재성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이를 믿고 하루하루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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