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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폴스 Feb 02. 2021

전설의 초등교사

학교를 옮길 때 이삿짐센터를 부르는 교사


 하루 만에 교실 이동을 마치려 했지만, 짐을 옮기는데 만 하루가 가버렸다. 결국 짐 정리는 내일로 미뤄야 했다. 다음날, 새로운 교실로 출근해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를 끝내고, 한쪽에 가득 쌓인 짐을 풀려고 하니 한숨이 나왔다. 짐을 싸는 것도 일이었는데, 그 많은 짐을 고대로 푸는 것도 일이었다.    

  

 교사, 특히 초등교사는 맥시멀 리스트가 되기 쉽다. 중고등학교 교사는 자신의 과목만 지도하기에 그 분야의 자료와 교구를 갖추면 된다. 게다가 중학교에 근무하면 중1~중3, 고등학교에 머물면 고등학생에 맞춰 준비할 수 있다. 반면 초등교사는 전 과목을 가르치고, 1학년에서부터 6학년 모두 담임을 맡을 수 있어 폭넓게 준비해야 한다. 또한 집중력이 짧은 초등학생의 발달 특성상 매 차시 활동을 해야 해서 필요한 교구가 많다. 초등교사는 중고등학교 교사보다 온갖 물건이 있는 만물상 교사가 될 확률이 높다.      


 초등학교에 몇 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학교를 옮길 때마다 이삿짐 트럭을 부르는 교사다. 짐을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아 1.5t 트럭을 불러 이삿짐센터 아저씨와 짐을 옮긴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전설의 교사가 될 만큼은 아니지만, 교직 경력과 교사의 짐이 비례하는 속도를 볼 때 내가 전설의 교사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내 교실에 유독 물건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선생님도 이걸 쓰던데 나도 써야 하지 않을까?’

 ‘이 연수에서 이걸 활용했는데 좋아 보였어. 나도 한 번 해봐야지.’ 

 ‘다른 반 선생님들이 빌려달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혹시 나중에 쓸 일이 있지 않을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나 하는 두려움과 걱정 때문이었다. 아이스크림몰, 티쳐몰, 슈퍼쌤 등 다양한 교육업체에서 매달 신상 교구를 출시한다. 내가 새로운 교구를 계속해서 산다고 해도 걱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교실에 가득 찬 물건의 대부분은 예비용이다. 언제 사용할지도 모르고, 몇 년 동안 잊고 영영 사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1년 동안 수업에 필요한 소모품이나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만 학급운영비나 학습준비물 예산으로 구매하면 될 텐데 나는 왜 그렇게 불안하고 두려워했던 것일까. 많은 물건을 사서 불안감을 줄이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미니멀 리스트인 사사키 후미오는 1년 사계절 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앞으로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1년에 한 번도 쓸 일이 없는 물건을 곁에 둘 필요가 없다고 한다.      


 나는 상자에 담긴 물건들을 다시 분류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모두 골랐다. 또한 작년에는 사용했지만, 올해는 쓰지 않을 것 같은 물건도 골랐다. 여전히 언젠가 사용할 때가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들었지만 과감하게 물건 정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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