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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Feb 05. 2022

두 발을 땅에 딱 붙이고 서서

무언가를 제대로 마주하는 애정과 용기

배구 만화를 봤다. 이번 설 연휴는 날짜가 좋아 쉬는 날이 넉넉했고(무려 5일) 마음도 여유로워, 우연히 보게 된 tv만화에도 흔쾌히 시간을 냈다. 무언가에 빠지는 건 순간이라고, 그날 저녁부터 연휴 내내 밤을 꼴딱꼴딱 새우며 만화를 봤다.


청춘, 성장, 청소년, 스포츠물답게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열정적이고 포기를 모른다. 팀이 되어 함께 공을 주고받으며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다. 공을 뺏기고 점수를 내주기도 하고 반대로 공을 빼앗아오기도 한다. 점수를 내주는 게 기정사실일지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눈앞의 공에 최선을 다한다. 악착같이 싸우고 배우며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각자 나름의 마음가짐으로 배구를 포기하지 않는다. 좌절하고 슬퍼하고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는 장면들은 '에이 만화니깐 저렇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울고 웃게 했다.


현실은 만화와는 다르다. 현실에서는 배구만 하고 있을 수 없다. 학교 수업도 들어야 하고 다른 친구들과도 어느 정도 친목을 쌓아야 하며 집에도 가야 하고 진로도 생각해야 한다. 고작 부활동에 고등학생이 낙제를 근근이 면하면서까지 하루 종일 배구를 한다? 진로가 배구선수가 아니라면 어불성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렇게 온몸으로 공을 맞으면 다음 날 일어날 수 없다!(확신한다 요즘 내가 운동 중이거든) 만화에선 근육통 따윈 보여주지 않겠지. 마치 드라마에서 트림하고 화장실에서 힘주는 주인공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감안한다 해도, 무언가를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은(그게 뭐가 되었든) 늘 아주 멋지고 반짝인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그것은 두 발을 땅에 굳게 붙이고 있는 이미지다.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제대로 그것을 마주 본다. 후들대는 다리일지라도 제 힘으로 올곧게 서 있는 것 같다. 단단하게 찬란하다.


나는 나의 20대를 온통 케이크와 쿠키로 채웠다. 나에겐 제과가 그런 존재다. 마음을 다해 좋아하고 몰두하는 무언가. 그리고 요즘엔 음식이 그러하다. 만화 속 주인공의 눈빛처럼 반짝반짝 내 눈을 빛나게 하는 무언가가 나에겐 디저트이고 음식이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마주할 때, 무조건 전력으로 달려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생에 딱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라고 믿는다.(50미터 단거리처럼 좋아할 수도 있고 42킬로미터 마라톤처럼 좋아할 수도 있다)

가늘고 길게 꾸준하게 마주할 수도 있고, 짧고 굵게 온 힘을 다할 수도 있다. 어떤 종류냐에 따라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마음을 다하는 것 아닐까. 진지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해보는 자세 아닐까.


그게 뭐가 됐든, 진심을 다해 내 마음 앞의 것들을 마주하고 싶다. 크고 작음을 구별하지 않고 득과 실을 따지지 않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좋아하고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마주하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의 시선은 닫고 오로지 내 시선으로 내 마음속을 들여다봐야 하니깐.


단단하게 찬란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 배구 만화는 '하이큐'라는 만화입니다

일본에서 제작됐고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이 있더라구요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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