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의 시대 꼭꼭 씹어먹는 밥 한 그릇
전염병이 창궐한 시기. 그간 집과 가게만을 오가며 몸을 사리고 또 사렸건만 마지막과 마지막에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격리 중이다. 신규 확진이 11만 명에 육박한다는 오늘 아침 기사와 주위의 심상치 않은 소식들로 미루어 보면 코로나에 안 걸리는 게 가능하긴 할까 싶을 정도로 확산이 빠르긴 하다. 성큼 다가온 전염병은 이제껏 잘 버틴 온 날들을 무색하게, 나의 시간을 멈춰놨다.
출근을 체념하고 나니 마음은 되려 가볍다. 시간에 쫓기지 않아 그런지 기상시간은 더 빨라졌다.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창문을 열어 밖을 본다.(잠에서 깨는 나의 아침 루틴인데,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를 쐬면 금세 정신이 든다) 어두운 하늘을 밝히는 건 의외로 드문드문 켜져 있는 집집마다의 불빛이다. 고요를 깨는 낮은 자동차 엔진 소리도 있고 의외로 사람도 몇몇 걸어 다닌다.
가게도 마트도, 운동도 못 가는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대개 정적인 것들 뿐이다. 책을 읽고 넷플릭스를 시청하고 밥을 먹고 공부를 한다. 출퇴근 사이사이, 잠자기 전 틈틈이 하는 몇 가지 일의 시간을 아주 길게 그리고 조금 지루하게 해내는 기분이지만 어찌어찌 한 칸 방에서의 시간도 잘 흘러간다.
함께 먹던 밥에서 혼자 먹는 밥으로 형태가 바뀌었다.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먹던 식사는 트레이에 밥을 담아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는 형태가 되었다. 국과 밥과 몇 가지의 찬과 수저 한벌. 나의 식사를 이렇게 제대로 들여다본 일이 있을까. 여기 차려진 한 그릇은 오롯이 내 배속으로 사라지리. 세상에 밥과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경건하게 내 앞의 한 끼를 마주해 본다.
핸드폰도 책도 음악도 없이 고요히 식사를 한다.(음악도 인스타도 유튜브도 책도 이미 밥 먹기 전 충분히 과했다) 밥을 한 숟갈 떠 입에 넣고 꼭꼭 씹는다. 현미와 병아리콩, 율무와 보리가 들어간 밥알들이 입 안에서 이리저리 구르며 꾹꾹 씹힌다. 씹는 횟수도 세어본다. 평소엔 밥과 반찬을 입에 넣고 씹어 삼키기 바빴다면 오늘은 한번 두 번, 마음속으로 씹는 횟수도 세어보며 밥맛을 음미한다.
더덕을 하나 집어 입에 넣는다. 잣가루를 묻힌 뽀얀 더덕은 이번에 엄마가 새로 만들어 본 음식인데, 첫맛은 고소하고 쌉싸름하다 뒤에는 단맛이 올라온다. 아삭! 하고 씹히더니 더덕의 향긋한 향과 수분감이 입안 가득 퍼진다. 졸인 시래기는 또 어떻고. 시래기의 국물 떨어질까, 얼른 밥 위에 시래기를 얹고 숟가락 채로 입에 넣는다. 짭조름하고 구수한 된장과 시래기 맛에 나도 모르게 밥이 꿀떡 넘어간다. 북어를 넣은 시원한 계란북엇국을 떠 후르르 입에 넣어 콩나물과 함께 씹는다. 국물 맛이 시원하다는 표현은 분명 북엇국에서 시작되었으리라.
숟가락과 젓가락을 쥐고 한술 한술 떠먹는다. 잔잔한 일본 영화 속 주인공이 고요하고 단정하게 밥을 먹는 것처럼 숟가락이 식기에 부딪히는 소리를 줄이고 밥과 반찬을 씹는 기분을 느끼며 음식이 배로 들어가는 감각에 집중한다. 혀에 감도는 맛을 음미한다. 이제껏 나는 미각만 중요시했다. 직업도 '맛'에 포커스를 맞춘 일이다 보니 혀를 예민하게 만드는 일에만 집중했다. 더 기민하게 맛을 찾아내고 느끼며 즐거워했다. 식(食)은 입의 영역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빈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 그릇들을 보니 배는 물론이요 마음까지 부르다. 많은 일들을 제대로 잘하고 싶어 하면서 나는 정작 밥 먹는 거 하나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나 보다. 제대로 먹은 밥은 몸과 마음을 돌본다. 에너지를 준다. 조금 낯간지럽게 표현하면 지구의 기운을 받는 것도 같다. 가장 낮은 땅의 기운부터 저 높은 하늘의 기운까지 한 그릇 밥에 담긴다.
밥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살아있다면 무릇 먹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 밥 잘 챙겨 먹자. 배만 채우는 거 말고 마음까지도 든든해지는 뜨끈한 한 그릇 밥으로. 한입한입 꼭꼭 씹어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