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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Nov 16. 2024

시장에 가면 연근을 고릅니다. 암놈으로

잘 챙겨 먹는 것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깎기가 귀찮아 잘 안 먹게 되는 과일은 (당연하게도) 미리 깎아 냉장고에 넣어두면 틈틈이 꺼내 자주 먹을 수 있다. 배가 고파진 후에 주방에 들어가면, 대충 빨리 먹을 수 있는 식사를 준비하게 되는 것과도 마찬가지. 배가 조금 덜 고플 때부터 식사 준비를, 혹은 시간이 날 때 조금씩 식사 준비를 해놓으면 (이 또한 당연하게도) 매일의 식사 준비가 부담스럽지 않다.


연근은 암수가 있는데, 보통은 살이 많이 차 있는 암놈(암연근)으로 집어 오는 것이 좋다. 암연근은 짧고 똥똥하게 생겼는데, 팔 때 양 끝이 막힌 ::연근 하나의 모양으로 그대로 파는 경우가 많아, 암연근을 사면 연근의 구멍 사이사이에 흙이 없다는 이점이 있다. (수놈은 길고 얇아 그대로 팔기보단 동강 내어 파는 경우가 많다. 연근 단면이 보인다면 자른 연근. 자른 연근은 구멍 사이로 흙이 들어가 속이 거뭇하고 세척이 힘들다)

결론 :: 암놈을 사면 살도 많고 세척도 쉽다.

이제는 보이지 않습니까. 암연근이!


가지도, 대파도, 당근도, 감자도, 전부 고르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계절에 따라, 시기에 따라 그 노하우가 전부 다르니- 매주 가는 시장이라도 매번 새롭다. 단지 소쿠리에 담긴 3천 원짜리 채소라 보면 섭섭하지. 나누는 짧은 대화에서도 끊임없이 농부들의 지혜 같은 것을 캐낸다. 파는 이가 알려주는 조리법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겪어봐야만 안달까! 물건을 보는 눈이 생기는 것 같아 뿌듯하고 재밌다.


<쉽고 간단한데> <속 편안하고 맛있는> 식사가 중요해졌다. 예전엔 쉽고 + 맛있고 + 건강한 것은 같이 갈 수 없는 개념의 합이다-라고 지레짐작해버렸는데,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나만의 작은 실험 같은 요리로 끼니를 채운다. 나만의 작은 노하우를 쌓는다.


잘 챙겨 먹는 것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하나씩 쌓은 작은 것들을 언젠가 함께 나누어도 좋겠다. 잘 챙겨 먹는 건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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