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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Apr 15. 2024

퀴즈보단 가족(링컨센터 어린이 공연, 센트럴파크 소풍)

미국생활 241일 차



내일 오후엔 퀴즈가 있다. 내가 절절 매고 있는 통계 과목이라 걱정이 많다. 하지만 오늘은 오전에는 딸내미와 어린이 공연을, 오후에는 센트럴 파크 소풍을 갔다. ㅎㅎㅎ


어린이 공연은 원래 독박 육아를 할 남편을 위해 알아본 것으로 남편과 아이 표만 끊다가, ‘아이고 이런 거 같이 다니려고 뉴욕 왔지’ 싶어서 내 것까지 끊었다. 아침에 40분 정도만 일찍 나서서 공부를 하다가 함께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냥 링컨센터만 가도 너무 좋다.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어린이 공연이었다. 벌써 세 번째 인가 가는 건데, 갈 때마다 ‘이래서 비싼 생활비 내고 여건 안 좋은 뉴욕에 굳이 사나’ 싶다. 이제까지 본 공연도 공연자 대 아이의 비율이 1:3 정도 되었는데, 이번에는 1:2였다. 그러다 보니 완전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다른 공연도 그랬지만) 공연 시작 전부터 공연 관련 물품들을 대기실에 비치해 두고, 공연 시작할 시간이 되면 공연자들이 나와서 아이와 한 명 한 명 소통하며 공연장으로 자연스레 들어가도록 유도한다. 이 나이 때 아이를 위한 공연은 딱히 대사가 별로 없고, 여러 가지 마임이나 음악으로 소통한다. 이번에도 한 시간 동안 10가지인가 테마로 여러 가지 촉감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진행되었다. 아이는 내내 눈을 반짝거리며 재밌게 참여했다.


공연 주제와 공연자에게 미리 익숙해지도록 유도하는 중 ㅎㅎ


매 공연마다 적어도 한 회차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특별 배려하는 공연으로 배정이 된다. 이 공연은 이번이 그런 회차였다. 자폐가 심한 듯한 아이가 있었는데 좁은 공연장에 들어오지 않아도 되도록 공연장 문을 열고 복도에 앉았다. 그리고 그 아이를 위해 공연자들이 매 번 나가서 공연을 해주었다. 어떤 새 모형은 너무 커서 문을 통과하기가 어려워 보였는데, 별도 새 모형을 준비해 그걸 들고나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렇게까지 전문 공연자들과 아이가 상호작용하는 공연인데, 인당 5불만 내면 된다. (5불 이상 원하는 만큼만 내면 되는 공연이라… 학생인 우리 부부는 인당 5불 씩만 냈다.) 한국이면 딱히 상호작용이 많지 않은 단체 공연이 인당 5만 원은 하는데, 진짜 이럴 때는 날로 먹는 느낌이다.


마침 링컨센터에서 여러 가지 행사도 하는 날이라, 딸내미는 바로 크래프트 하는 장소로 향했다. 거기서 아이가 하는 걸 보다가 시간이 길어질 것 같고 너무 피곤해져서 먼저 집에 왔다.


끈적이는 플라스틱 줄로 아이가 만든 작품. 종이에 꾹 누르면 절로 붙는다. 신기. 이거 가지고 처음 크래프트 해보는데 이런거 혼자 만든 딸내미도 신기 ㅎㅎ


30분 알람을 맞춰 낮잠을 자고, 간단하게 냉동 김밥을 데워 먹고 학교에 갔다. 1시간 조금 넘게 공부를 했을까. 남편이 아이랑 센트럴 파크에 갔다고 사진을 보내는데 햇살이 너무 좋았다. 내내 비 오고 흐리다가 오래간만에 날씨가 좋아서 햇살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 햇살이 너무 좋다고 수군거리더니 놀러 나간 것도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ㅎㅎ)


그리고 보통은 나갈 때 항상 샌드위치나 볶음밥을 챙겨나가는데 오늘은 가기 전에 잠깐이라도 공부하느라 그렇게 못했다. 남편한테 사 먹으라고 했더니 역시나 햄버거를 하나 사서 아이와 나눠 먹고 자기는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뭘 더 사 먹으라고는 했지만 남편은 그럴 일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원래 워낙 안 쓰는 사람인 데다 환율도 1400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ㅋㅋ 남편과 아이 먹거리를 더 챙겨준다는 핑계로 나도 센트럴 파크로 향했다. ㅋㅋ


센트럴 파크의 가장 큰 잔디밭 중 하나인 Sheep meadow에서 둘이 놀고 있다길래 그리로 갔는데, 아니 나는 거기서 무슨 공연이라도 열리는 줄 알았다. 진짜 잔디밭 반 사람 반의 느낌이었다. 오래간만에 날씨가 좋아서 뉴요커들 모두 센트럴 파크로 뛰쳐나온 듯했다.


실제로 보면 더 버글버글. 폰도 잘 안 터졌다.


역시나 몸만 덜렁 뛰쳐나온 남편과 아이가 나를 반겼다. 가져간 돗자리를 깔고 데워 간 냉동 김밥에 과일, 견과류, 주스를 먹었다. 아이와 뒹굴거리고, 아이가 찍어주는 사진도 찍고, 아이와 남편이 달리는 걸 돗자리 위에서 구경했다. 1시간 반 정도 있었는데 그냥 멍하니 있어도 행복했다. 나오길 천 번 만 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랑 자는 척 컨셉 사진 찍는 중 ㅎㅎ


졸업과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공부보다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진다. 물론 궁금한 분야는 열심히 보지만, 시험 점수 조금 더 잘 받겠다고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아 진다. 다시 일을 하게 되면, 둘째를 낳은 직후에는 이런 시간을 가지기가 얼마나 힘든지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걸 잘 아는 상태에서, 다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게 정말 행운인 것 같다. 조금 살아보고, 다시 청춘을 사는 느낌이다.




+) 어제는 우울의 결정체 같은 일기를 썼는데, 오늘은 행복의 결정체 같은 일기를 쓰니 스스로도 웃긴다. ㅋㅋ 역시 사람은 햇빛도 받고, 가족과도 시간을 보내고, 놀아야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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