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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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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Jun 25. 2024

지하실 피크닉, 여름의 공동 육아_240622

미국 생활 309일 차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한국도 덥다고 하던데 여기 뉴욕도 만만치 않다. 낮 최고 기온이 이미 35도고 밤은 열대야다. 아직 6월인데! 우리 어른들의 탓인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ㅠㅠ


이 더운 날 애 데리고 또 주말을 어떻게 보내나 싶었는데, 딸내미 친구 시드니네에서 피크닉에 초대를 해줬다. 날름 가겠다고 했다. 진정한 휴식은 플레이데이트에서만 온다.


처음에는 피크닉 장소를 듣고 괜찮을까 싶었다. 시드니네 건물 지하실 옆 작은 테라스 공간이었는데, 뉴욕에 온 지 오래지 않았을 때 늦가을에 한번 가본 적이 있었다. 하늘은 뚫려있지만, 휑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뉴욕에 적응을 해서 그런지 여름이라 그런지, 이번에는 그 장소가 꽤 좋았다. 뉴욕에서 드물게 이상한 냄새 없이 깔끔했고, 예전에는 빼짝 말라있던 화분들도 파릇파릇했다. 지하실 옆에 있다 보니 하늘이 뚫려 있어도 건물의 그늘이 져서 조금 버틸만했다.


큰 화분들 덕에 지하같은 느낌도 없다


우리 건물에도 비슷한 공간이 있는데, 그냥 시멘트 마감만 되어 있고 남은 수리 자재 같은 걸 던져놨다. 주민들은 아예 접근도 안된다. 나중에 온 파이퍼네와 얘기하다 보니, 그 건물도 마찬가지란다. 그 건물은 다들 집주인들이 사는 데도 이 공간을 못 쓰게 한다고 했다. 그 공간을 관리하려면 관리비가 오른다고. 시드니네는 엄마 아빠가 둘 다 명문대 출신의 전문직이고, 조부모들도 모두 여유가 있는 중상류층인데 그래서 건물도 관리가 잘 되는 곳을 골랐나 보다.


파티오 한쪽에는 음식들과 의자를 가져다 놓고, 한쪽에는 물을 틀어놨다. 딸내미 같은 반의 다른 친구 파이퍼네도 오고, 이미 낯이 익은 시드니네 이웃 벨라네도 왔다. 애들은 물 있는 쪽과 지하실을 오가며 놀고, 어른들은 시드니네가 준비해 놓은 샌드위치, 과일, 디저트를 먹으며 놀았다. 딸내미는 노느라 어지간하면 우리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이렇게 좋을 수가 ㅎㅎ


미국서 이정도면 엄청 준비한거다


2시간쯤 놀다 보니 비가 왔는데, 그땐 또 시드니네 집으로 올라가서 2시간을 더 놀았다. 나중에 다들 가길래 우리도 4시쯤 나왔는데, 시드니와 딸내미는 헤어지기 싫다고 거의 울먹였다.


우리가 오늘 한 거라곤 쿠키 한 상자 사서 들고 간 것 밖에 없는데, 하루 진짜 잘 보냈다. 아는 사람 없는 낯선 동네에 이사를 왔는데 이웃 중에 (1) 공동 육아가 절실히 필요하고, (2) 특히 딸내미와 공동 육아를 하고 싶어 하고 (시드니가 친하게 지내는 아이가 많이 없는데, 딸내미랑은 친하다), (3) 대대로 이 지역 로컬에, (4) 여유가 있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넉넉하게 준비해 우리를 초대하는 이웃이 있다니. 진짜 운이 좋다. 우리도 시드니네에, 그리고 다른 이웃들에게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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