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31-2일 차
학교 다닐 때 달리기를 하면 난 어김없이 꼴찌였다. 맨날 꼴찌만 하는 달리기가 좋아질 리 없었다. 남편이 조금씩 달리다 마라톤까지 하게 되도 나는 달리기를 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연수 작가의 달리기에 대한 산문을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그걸 내가 할 생각은 안해봤고, 이사와서 뉴욕에서 제일 유명한 센트럴파크 달리기 코스가 바로 집 근처가 되어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번 출장 온 고모부와 저녁을 먹는데, 역시나 달리기를 좋아하는 고모부가 센트럴파크에서 달리고 싶어서 뉴욕으로 이사오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아니 대체 얼마나 좋으면 이사 오고 싶을 정도지? 흥미가 돋았다. 그래서 몸이 회복하길 기다려 달리기에 도전했다.
일차 시도는 어제, 1킬로 달리기. 센트럴파크까지는 왕복하면 끝나는 거리라 더 가까운 리버사이드파크로 다녀왔다. 초등학교 때 오래 달리기를 하면 1킬로 였는데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할 만 했다.
그래서 오늘 이차 시도, 센트럴파크에 도전했다. 막상 가려니 귀찮았는데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아침에 달리기를 다녀온 남편이 이제 낙엽이 져서 센트럴파크가 너무 예쁘다고 했다. 생전 뭐 예쁜지 모르는 사람이 ㅎㅎ 그 한마디에 바로 달리기에 나섰다. ㅎㅎ
가을의 센트럴파크를 달리는 기분이란… 끝내줬다. 왕복 3키로 쯤을 걷다 뛰다 했는데 힘들어도 힘든 줄도 몰랐다. 약간 흐렸지만 날씨는 시원하니 딱 좋았고,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바닥에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밟혔고, 다리가 무거워질수록 ㅎㅎ 마음이 가벼워졌다.
달리니 주변의 풍경이 내게 들어오는 속도도 딱 좋았다. 걸을 때는 풍경은 천천히 구경할 수 있어도 마음 급한 내겐 풍경의 변화가 너무 느렸고, 차를 타면 너무 빨리 지나가 풍경을 음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니 풍경이 적당한 속도로 지나가 즐기기 좋았다.
딱 이틀 뛰었는데 매일 매일 뛰고 싶어졌다. 벌써 내일 언제 어떻게 뛸 지를 궁리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깅 코스 중 한군데를 옆에 두고 살면서 안 달리는 게 말이 안된다. 달릴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갈 때까지 매일 뛰어야지.
몸을 움직여서도 그렇고,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서도 그렇고, 에너지가 솟아난다. (난 참 쉽게 들뜬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