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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Nov 13. 2019

제 결정이 옳았음을 보여주세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존중하기로 했다

드넓은 영토, 그리고 감회

우리의 땅은 굉장히 넓어졌다. 잇따른 전쟁 승전보로 우리의 영토는 기존에 비해 10배에 달하는 수준 이르렀다


왕국 전체로 보면 작은 땅일 수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 비교일 뿐이다. 현재 우리 연맹의 세력 왕국 전체를 놓고 봐도 절대  않은 상황이다.


왕국 지도를 펼쳐 놓으니 우리 연맹의 땅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많은 연맹원들이 자리하고 있다.


반신반의하며 처음 게임에 접속해 어리둥절하며 렙업을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연맹을 만들고, 무자비한 공격을 당하고, 쫓기고 쫓겼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귀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작은 땅을 얻지 못했더라면... 생에는 가정이 없다고 했던가...


'하......... 현실 속에서는 짧은 나날들이었건만, 게임 속에서는 낮과 밤이 수없이 흘렀구나......'

새롭게 얻은 땅에서 마주친
낯익은 연맹

우리가 새롭게 흡수한 땅 위쪽에 낯익은 연맹 센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우리의 위쪽에 있다가 전쟁에 패해 쫓겨난 연맹이.


그들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가 쫓기고 쫓기던 시절... 그리고 귀인을 만나 새롭게 작은 땅을 얻었던 그때... 그들은 해당 지역에서 꽤 강성한 연맹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전투력 측면에서는 우리보다 상대적 우위를 보였으나 그들은 우리에게 먼저 평화협정을 제안해왔었다. 물론 그들의 평화협정 제안은 꽤 권위적인 측면이 있긴 했다.

 

영어로 주고받은 메일이었기에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메일 속에 드러난 그들의 문장 속에는 배려보다는 그들이 더 세력이 우위에 있음을 드러냈다. 말이 좋아 평화협정 제안이지... 사실상은 명령이었다.


'우리랑 평화협정 할래? 싫으면 전쟁이야'라는 식이랄까.


해당 메일을 임원방에 공유하자, 임원 중에 영어를 좀 하는 분은 그들의 메일이 제안이 아니라 '강요'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응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얻은 작은 땅마저 잃을 수 없었다. 당장 기분 나쁘다고 그들과 전쟁을 치를 수 없다. 무자비한 공격을 당한 우리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했다. 전쟁에 나설 병사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성소를 뺏기고 쫓겨난 그들

그들은 세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을 분 아니라, 성소도 하나 가지고 있었다. 게임 속에서 성소는 모두가 가지고 싶은 대상이. 그렇기에 명분이 없더라도 성소를 점령하기 위한 전쟁은 언제나 용인됐다. 단 성소, 제단, 관문을 점령하지 않은 연맹과의 전쟁은 명분이 없을 경우 본맹에서 승인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성소는 득보다 실이 많았던 것 같다. 우리 아래에 있던 연맹 관문을 점령하고 위로 올라온 이유도 결국 성소 때문이었다.


물론 명분 없는 무차별적인 진격이 본맹의 개입을 이끌었고, 결국 그들은 본 맹의 저지로 성소를 우리에게 넘겨야만 했지만...


위로 치고 올라오는 이들의 매서운 공격을 당하자,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함께 싸워줄 것을. 하지만 우리는 나설 수 없었다. 그들을 공격한 이들 우리와 같은 연맹 소속이었다. 연맹 간 전쟁은 금지였기에 우리는 그들의 포악함을 알지만 공격받는 연맹을 도울 수 없었다. 그들을 돕는다는 것은 연맹 전체와 싸우겠다는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뿐이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맹주에게 메일을 썼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

친애하는 맹주님

우리는 당신이 공격받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도울 수도 없는 상황임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우리 연맹은 서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를 어기게 될 경우 연맹 차원에서 제재를 당하게 되고 결국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드리겠습니다. 당신이 그들의 공격을 받는 동안 우리는 당신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공격을 잘 방어한다면 우리의 평화협정은 유효함을 거듭 확인합니다.

부디 그들의 공격을 잘 방어하시길 기원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결과는...

그들은 결국 전쟁에서 패배했. 그들을 공격한 이들은 그들에게 작은 땅 하나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영토에서 쫓겨나게 됐다.


사실 그들을 공격한 연맹은 왕국 서버 내에서도 영토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연맹 중 하나다. 여기 게임 속 용어로 '육식'의 전형적인 모습다. 무차별적인 공격과 오로지 세력 확장을 위한 게임 방식이랄까.


우리의 가치와는 대조적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게임 방식을 비난할 순 없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전쟁게임으로 설계 자체가 땅따먹기를 하도록 되어있어서다.

반갑다 친구야

처음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던 그들이기에 새롭게 얻은 땅 위에 자리 잡은 그들 연맹 이름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혹시 그들이 우리를 경계하지는 않을까'하는 마음에 맹주에게 메일을 썼다. 우리의 합병 소식을 알리는 한편, 이전에 우리의 평화협정은 유효하다고 언급하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사실 메일을 쓰면서 기분이 묘했다. 그들에게 처음 평화협정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그들이 세력 우위를 점하며 손을 먼저 내밀었는데... 며칠 사이에 상황은 정반대로 역전됐고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해치지 않으니 안심하라'며 손을 내미는 상황이 됐으니 말이다.

연락 줘서 고마워

해당 맹주도 내게 반가움을 표했다. 그들은 내게 거듭 요청했다. 평화 속에서 옥수수 농사짓고, 나무 캐고, 돌멩이 주우며 게임을 하길 원하니 우리 위의 작은 땅만 허락해달라고 말이다.


나는 그들의 요구에 빠르게 회신했다. 난 당신의 땅을 공격할 생각이 없고 당신의 땅에서 즐거운 게임을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맹주는 매우 고마워했고, 그들은 자신들이 개척하고 있는 땅 안에서 만족하겠다고 내게 거듭 의사를 전해왔다.

자꾸 마음이 쓰이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전리품으로 얻은 광활한 땅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다들 갑작스럽게 넓어진 땅이 많아져서인지 어리둥절하는 모습이었다.


대화를 나눠보니 추가 경험치를 주는 성소는 중요하지만 땅의 크기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임원들의 그런 마음을 알게 되자, 마음속에서 위쪽에 작은 땅에 의지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그들에게로 자꾸 마음이 갔다.


난 잘 안다. 땅이 넓어지면 보기에는 좋지만 사실상 적의 침입에 대응하기 어려움이 있다. 무분별한 확산은 나의 리스크를 더욱 확대시키는 셈이 다는 것을.


그래서 마음이 쓰였던 연맹 맹주에게 다시 메일을 썼다

친애하는 맹주님.

우리는 현재 우리의 영토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효과적인 영토 관리에 대한 부분입니다.

현재 맹주님의 땅은 위쪽으로 한정되어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산하 연맹이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명칭만 바꾸시면 됩니다. 우리의 산하 연맹이 되시면 첫째, 우리와 같은 연맹으로부터 공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둘째 현재의 좁은 영토에서 더 넓은 영토를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조만간 저희 외교 담당 임원이 맹주님께 공식적으로 메일을 드릴 것입니다. 관련해서 미리 논의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맹주님께 제가 사전에 말씀 올려드립니다.
맹주님,
저와 저의 연맹원들은
함께하며 게임을 즐기고 싶습니다

이틀 정도가 지났다. 해당 맹주로부터 답장이 왔다. 정중한 거절이 담긴 메일이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게임 방식이 분명했고 무엇보다 그들은 그 무엇보다 현재 맹주와 임원, 연맹원 모두가 함께 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난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우리가 초반에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공격받고 난 후 우리 연맹원들이 더욱 단합이 되었던 그런 모습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알겠다고 답하고 그로부터 다시 이틀이 지났다.

맹주님 메일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친애하는 맹주님"이라는 제목으로 메일이 도착했다. 해당 맹주였다. 그는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우리의 산하 연맹으로 들어오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나는 다시 메일을 보냈다.

친애하는 맹주님

저는 맹주님 연맹의 존재 가치를 존중합니다. 맹주님 연맹이 우리 산하 연맹이 되어 처음에 세웠던 연맹의 기치(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내세우는 태도나 주장)가 사라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맹주님과 연맹원분들 모두가 하나 되어 함께하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앞으로도 하나가 되어 주세요. 저희 산하 연맹이 아니어도 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맹주님의 연맹과 평화를 이어갈 것입니다.

비록 연맹은 다르지만, 현실 속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으로써, 그리고 사람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우리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즐겁게 게임을 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난 기쁜 마음으로 맹주에게 또다시!!! 메일을 보냈다.

친애하는 맹주님

이렇게 기쁜 소식을 알리게 되어 뿌듯합니다. 오늘 우리 연맹에서는 임원 회의가 있었고, 우리가 가진 영토의 일부를 맹주님께 넘겨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연맹원 모두가 동의하였으니, 부디 번거롭다 생각 마시고 해당 영토로 연맹 센터를 옮기시고 즐거운 게임을 하시길 바랍니다.

다만 당부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 결정은 저의 직권으로 제안된 것도 있지만 모든 구성원들이 동의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첫째, 맹주님 땅에서 우리 연맹원이 채집을 하더라도 절대로 공격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둘째, 제가 보내드린 지도를 보시고 아래로의 확장은 그 선까지만 부탁드립니다.
셋째, 저희 영토로 오셔서 채집을 하실 때에는 절대로 똥(자원을 남기는 경우)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혹시나 우리 연맹원이 채집하고 똥을 남겼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부디 저희 연맹원분들이 맹주님께 땅을 나눠드리자고 제안한 저를 원망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제 결정이 옳았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보다 넓어진 새로운 땅에서 연맹원 분들과 즐거운 게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돌고 도는 세상

리가 지금의 땅을 얻어 힘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귀인을 만나 작은 땅을 얻은 것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넓은 땅을 차지했고 우리는 다시 작은 땅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우리가 가진 일부를 나눠줬다. 그들에게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귀인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 세력뿐 아니라 우리의 세력도 커지고 있다. 물론 게임 속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속화된다.


현질(현금을 결제하여 아이템을 사는 행위)을 하는 이들의 전투력은 현질을 하지 않는 이들을 압도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질을 하지 않는 유저는 한계점에 봉착하게 될 것이고 현질을 하는 이들은 그 벽을 뛰어넘을 것이다.


내가 이 게임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 역시도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히게 되고 멸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쉬지 않고 접속하는 이유는 맹주이기 때문이다. 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벌써 70명이 넘어섰다. 비록 게임 속이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싸여가고 있다. 나에 대한 그들의 믿음에 실망을 안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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