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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Nov 17. 2019

맹주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전투왕이 떠났다...그가 내게 남긴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맹주님, 메시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사실 난 소심한 사람이다. 내 마음이 그렇다. 연맹원들이 개인 메시지를 보낸다거나,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다고 내게 말을 건네면 덜컥 겁부터 난다. 현실 속 사람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크고 깊어서인지, 게임 속에서도 난 지레 겁부터 먹는다.


이번에도 늘 내가 우리 연맹의 자랑으로 여겼던 선봉장... 그가 우리 연맹을 떠났다. 그는 최근 2주 정도 고민이 많아 보였다. 그에게 우리 연맹은 작은 우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장비 같았던 전투왕

그는 초기부터 나와 함께 했던 유저다. 우리가 혹독한 공격을 받았을 때부터 나와 함께 해줬다. 그는 전쟁을 외치며 힘을 키울 것을 늘 내게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은근하게 달래면 마음이 늘 풀어지곤 했다. 장비처럼 전투를 향한 그의 열정은 들끓곤 했지만 나의 만류엔 늘 순순히 응했다. 물론 그의 전쟁 본능은 순식간에 우리 연맹의 최고 전투력을 지닌 자로 거듭나다. 과감한 투자와 함께 사령관 조합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연구했다.


또란 그는 전투게임에서의 본질을 잘 간파하고 있었다. 전투 게임의 속성상 전투력이 낮으면 연맹 자체가 존립하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에 그는 우리 연맹이 다 강해져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다소 인간미가 떨어지더라도 강력한 룰을 만들어 연맹원들의 전투력 상승을 강력하게 이끌어야 한다고 나를 채근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주장을 100% 들어주지 못했다. 그의 호전적인 송향을 잘 맞춰주지 못했다. 그에게 나는 어쩌면 유약한 맹주로 비쳤을 수도 있다. 그게 늘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다.

2주 전쯤부터...

오픈톡방에서 그의 말수가 현격히 줄었다. 게임 내 채팅방에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고민이 많음을... 오로지 전투력 상승이 중요하전쟁을 즐기는 성향인데 나는 전쟁보다는 외교를 통한 평화를 더 선호했으니... 그리고 우리 연맹원들 대다수가 농사꾼 성향이 강한 것도 그에게는 불만이었을 수 있다. 우리는 되도록이면 현질을 피하려는 성향이 강한 유저가 대부분 이어서다.


그는 우리 연맹에서 꼭 필요한 존재였다. 전투력과 사령관을 키우려는 유저에게는 그의 노하우 전수가 굉장한 것이어서다. 그는 단시일 내에 집중해서 렙업을 하는 방법을 안다. 또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사령관 간의 조합도 잘 파악하고 있다.


사실 연맹 초기에 그는 이런저런 자기만의 의견을 내면서 연맹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맹 운영 방식에 불만적스러운 면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직감이 들어 최근에는 그에 대한 애정을 더 드러내려고 했다. 그가 접속한 걸 확인하면 전체 대화방에 "전투왕님 오셨씁니꽈~~~♡ 보고 싶었습니다"라며 애교를 떨어보려 애썼다. 수차례!!!


아마 그는 지난 2주간 이런 상태였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머리로는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어 떠나고 싶다가도, 사람을 생각하면 떠날 수 없는 그런...'


결국 그는 떠나기로 결심하고 내게 감사하단 인사를 전하며 떠났다. 난 그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냥 떠나는 게 미안했던지 내게 앞으로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달라는 말을 남겼다. 난 그 마음이 고마웠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사실 전투왕의 이탈이 내게 주는 시사점은 크다. 이제 우리도  슬슬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서 결제가 수반돼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투력은 더디게 오르게 돼 결제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차이는 점점 벌어지게 된다.


그동안 난 연맹원분들의 결제 알람을 보면 늘 강조하던 말이 있다.


'계획적인 현질이 우리의 게임의 즐거움을 더욱 배가 되게 합니다. 하지만 무계획적인 현질은 정신건강에 해롭습니다'라고. 현질한 사람이 있으면 전체방을 통해 현질보다는 잦은 접속으로 캐릭터를 키우는 게 중요하다 조언하기도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매월 현질을 하고 있다. 맹주이기에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에서다. 물론 매월 결제 한도를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관리하고 있다. 첫 달에는 아무 생각 없이 아이템을 지르다 보니 적은 금액이었는데 반복되어 금방 1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비록 난 게임을 하며 현질을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현질 하는 것에 대해 '잘한다 잘한다'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기 않으려 애써왔다. 현실 속 주머니 사정으로 인하여 현질이 어려운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현실에서의 어려움이 게임 속에서까지 대물림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게임 개발자가 현질을 하도록 설계한 시스템을 뛰어넘고 싶었다. 마치 매트릭스 영화 속 니오(NEO)처럼...

하지만.....

이제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온 듯하다.


- 게임을 접을 것인가 아니면 계속할 것인가...

- 내가 맹주 자리를 내놓을 것인가... 아니면 맹주 자리를 고수할 것인가...


아주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한다. 나를 믿고 함께 해주는 이들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 게임을 계속해야 한다면 구성원들의 전투력이 올라야 한다. 그러려면 현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맹주인 내가 사람들을 리드하지 못한다면, 우리 연맹은 중장기적인 지속가능을 위해 합병을 통한 성장을 꾀해야 한다. 이 경우 불가피하게 내가 있는 맹주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줘야 한다.

때마침 들려온 합병 소식

본맹에서 나를 찾는다. 이제 우리 왕국 서버가 곧 외부에 공개될 시기가 임박해진 데 따른 것이다. 타 서버에는 전투력이 1000만 이상인 유저도 많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우리 연맹은 아직 전투력이 400만 이상이 없다. 유일하게 500만에 달했던 전투왕은 나가고 없다....


서버가 오픈되면 다른 왕국에서 군림하던 고레벨 유저가 우리 서버에 쳐들어올 수 있다. 왕국을 휘젓고 다니며 왕국 내 약한 연맹을 골라 공격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우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전투력 싸움이니...


우리가 전투력을 키우거나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합병을 통해서 우리 연맹을 위해 전쟁이 나면 맞서 싸워줄 선봉장을 영입해야 한다. 그것마저도 힘들다전투력 높은 연맹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게임을 지속할 수 있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난 늘 의사결정 시에 임원들의 의견을 듣는다. 이번에는 임원들이 내 거취와 관련되어 있다고 판단했는지 의견을 쉽게 내않았다.


우리 연맹에서 활발히 활동해주시는 유저도 있으니 연맹원들의 의견도 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연맹방에도 관련 내용을 공유하고 의견을 듣기로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의견을 내지 못했다.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여서 그런 것이리라 짐작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우리가 지금처럼 서로에게 의지하며 즐거운 게임을 하려면 우리 연맹에도 새로운 전투왕이 필요하다. 한 명이 아니라 팀으로 꾸려야 한다.

현질이 아닌 본인만의 게임 스타일을 존중하는 방식은 유지해야 한다. 그 가치는 훼손돼서는 안 된다.

합병을 통해 전투팀을 꾸릴 수 있다면, 전투팀이 이미 꾸려져 있는 연맹에 들어가야 한다면... 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방식으로 게임의 즐거움을 계속 누릴 수 있다.

나는 떠난 전투왕을 이해한다. 우리를 지켜주던 전투왕은 외로웠을 것이다. 그는 그와 비슷한 성향의 유저를 찾아간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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