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떠나고 남은 이 곳... 난 다시 맹주로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합병과 영토 이전을 계속되며 우린 더욱 강력한 연맹이 힘썼다. 난 그 과정에서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선택했고, 그 삶 또한 즐거웠다. 사실 전쟁 게임을 하고 있다 보니 맹주의 권한은 전투력에 상응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높은 전투력을 향해 돌진하는 분들을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열정적으로나 따라가기는 현실적으로 넘사벽이었다.
하지만 내 방식만의 게임을 하고 싶다는 욕구는 계속됐고, 게임 설계자의 의도가 아닌 내 방식대로의 재미를 늘려가려 애썼다. 오픈 톡방에서의 맥락 없는 정신 나간 드립이라든지, 전투력이 낮아 본격적인 전쟁에 합류하기 어려운 이들을 모아 자원을 채집하는 병력들을 기습 공격하는 '채킬단' 조직이라든지... 지금은 보기만 해도 실소가 나오는 이모티콘을 사용해 그냥 채팅방에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즐거워하는 재미로 게임을 연명하고 있다.
연명.... 사실 그 말이 맞다. 게임을 시작한 지 275일... 200일이 넘어가며 사실상 전투력 성장은 한계에 달했고, 지금부터 전투력 상승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간을 돈으로 산다면 말은 달라지지만 말이다.
그렇다 보니 이 시기를 전후 해 게임을 접는 사람이 유독 많아졌다. 게임 내에서 '작별인사'는 어느덧 슬픔보다 허망함으로 바뀐 지 오래다.
나 역시도 게임을 접을까 고민했던 순간이 최근 한 달 사이 수차례다. 그렇게 하루하루 고민하며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게임을 접을 수 없는 이유를 찾아냈다.
하나는 나와 함께, 병맛이자 늘 어이없는 바보 같은 캐릭터가 되어버린 내 온라인 속 캐릭터를 좋아해 주고 나를 찾아주는 이들이다. 현실에서라면 맥락도 없고 재미도 없어 외면당할 게 뻔한 말들에도 늘 하나하나 즐겁게 맞받아주는 이들이 생겨서다. 내 온라인 닉네임 두 글자를 딴 팸까지 등장할 정도이니 어찌 나 또한 그들이 소중하지 않겠는가...
둘째는 현실적 고민이다. 현실 세계에서 바쁘면 상관없지만 잠시 짬이 생기게 되면 결국 게임 아니면 쇼핑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안 그래도 얇아진 지갑 탓에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니 차라리 게임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시간을 즐기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모두가 떠나고 남은 이 곳
오늘부로,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일 오전 9시를 기준으로 우리 서버는 2차 서버 전쟁이 종료된다. 그와 함께 많은 인원들이 우리 서버를 떠나 새로운 서버로 이동했다. 내가 연맹원으로 2차 서버 전쟁을 함께 했던 이들도 대부분도 떠났다. 그들은 내게 함께 이전하자고 제안했지만 선뜻 응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서버의 역사가 궁금해서다. 어찌 보면 이 서버는 이제 1세대가 저물고 2세대를 맞이하게 되는 곳이다. 1세대로서 전장을 누볐던 이들 대부분은 게임을 접거나 다른 서버로 이전했고 이제 중간에 우리 서버로 넘어온 분들과 원래 1세대로서 함께 했던 몇몇이 남아 서버 내 연맹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제 우리는 본맹 해체라는 현실에 직면해 새로운 신흥 연맹의 도전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2차 서버 전쟁을 하는 동안 힘을 모으고 있던 연맹이 있다면 말이다.
서버 이전과 잔류, 혼란의 시대 도래
그동안 맹주였던 '타로마루'님이 서버를 이전하며 내게 맹주 권한을 주셨고, 난 다시 맹주가 됐다. 정확히 말하면 남아야 한다고 결심이 선 순간, 맹주님께 내가 연맹 맹주 권한을 주실 수 있냐고 요청했다. 이에 맹주님은 흔쾌히 내게 물려주고 가시겠다고 하셨고, 난 맹주가 됐다.
하지만 오랜만에 맹주 역할을 맡으니 혼란스러움이 더 컸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정리도 안되고 그저 뒤죽박죽 어지럽게 뒤엉킨 실타래 같다고 할까.
'누가 남게 되는지 정확히 파악도 어렵고, 누가 추가로 서버 이전을 하는지 파악도 해야 하는데....'
다행히 내가 남겠다고 하자 함께 남겠다고 하는 고마운 분들이 하나둘씩 생겼다. 이제 조금씩 추스르고 다시 오와 열을 갖춰야 한다. 당장 우리 옆에 있으면서 관문을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을 제압해야 한다. 전투력만 놓고 본다면 우리가 불리하지만 우리에겐 과거 서버 전쟁을 함께 했던 이들이 있다. 모두가 넘어간 것은 아니니 우리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상대는 알 것이다.
물론 외교적인 문제로 풀어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외교 담당분께도 그렇게 부탁드려놓은 상태다. 하지만 늘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하니, 그들과의 최악의 경우에 대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내가 남은 이곳은 어떻게 될까
2세대가 시작됐고 난 그 가운데 서 있다. 새로운 국왕이 탄생하고 새로운 강자인 연맹도 등장할 수 있다. 과연 이 서버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언제까지 이 서버는 수명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이제 내가 있는 이 서버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비록 게임 속 이야기지만, 이 서버 역시 시작이 있었으니 끝이 있을 것이다. 난 그 역사를 함께 하며 글로 남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