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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Jul 02. 2020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6개월 전의 회고록... 맹주를 내려놓으니 사람이 보였다

맹주로 다시 돌아온 내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남은 분들과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연맹원을 모셔야 하는 일이다.


현재 본맹은 산하 연맹과 흡수 합병을 진행하고 있고, 우리는 우리대로 진행해보겠다고 양해를 구한 상황.


우리 서버에는 현재 활동인원이 적은 편이다. 3차 서버 전쟁을 준비한다 해도 쟁에 나설 인원이 현격히 부족하다. 그리고 3차 서버 전쟁에 참여하는 인원 또한 일부여서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게임을 하고 있는 서버 내 유저를 어떻게 흡수할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게임을 즐기는 방식은 무언인가 고민해야 한다.


주변 연맹을 강제로 흡수하는 방법은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대화를 통해 흡수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이런저런 고민이 시작됐고...


지난 2019년 11월 28일에 작성했던 글을 발견했다. 당시 약소 연맹 맹주로서 내 고민이 담겨있다. 내가 왜 합병에 응하게 됐는지에 대한 나의 이유가 여기에 녹아 있다. 난 그들을 진심으로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연맹이 살 수 있을 것이다. 

맹주님 계신가요?

2019년 11월 27일......


본맹에서 연맹 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임원이 나를 급히 찾았다.


최근 나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더디게 올라가는 전투력의 한계로 인해 게임 속 즐거움을 더 이상 찾지 못하고 현생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하나둘 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 연맹에도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난 두려웠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자칫 연맹 해체로 이어질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지금 맹주란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권력에 길들여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던 내게 본맹에서 부른 것이다.


"맹주님 좌측에 있는 연맹과 합병에 대해서 의견을 여쭙습니다"


역시 그랬다. 며칠 전 우연히 들어 알고 있었다. 본맹에서 우리 연맹을 타 연맹과 합병시켜 더욱 강력한 연맹으로 만들길 원한다는 것을.


본맹은 연맹 하나하나가 강력해지길 바랐다. 1차 서버 전쟁을 앞두고 있어서 이기도 했다. 접속율도 좋고 참여율도 좋은 연맹들을 합쳐 더욱 강력한 연맹으로 키우고자 한 것이다. 우리 연맹은 접속율도 좋고 참여율도 좋다. 다만 아쉬운 것은 소위 과금러(게임을 즐기기 위해 결제를 부담 없이 하는 유저)가 없다는 점이었다. 현질은 전투력과 직결되어 있다 보니 필요할 때 최소한으로 현질을 하는 우리와 과금러의 전투력은 이제는 2배 아니 3배 이상 차이가 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노력만으로는 과금러의 벽을 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거이다.


우리 연맹 내부에서도 타 연맹과의 합병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있었다. 물론 임원들의 의견은 일치되지 않았다. 둘 다 일리 있어 난 결정하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연맹 활성화와 좀 더 나은 연맹이 되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내가 지키고 있는 '맹주' 자리를 내려놓아야 한다면, 그런 상황까지 감내해야 하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저희 내부적으로 관련 내용 논의하고 말씀 올릴게요"


본맹으로부터 연맹 합병 건에 대한 공식 요청을 받았으니, 난 이에 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의 결정이 무엇이든 본맹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상대 연맹을 살펴보니
저희가 흡수되는 방식일 것 같은데요?

본맹에서 언급한 연맹을 확인했다. 


'헉.....'


그들의 전투력은 가히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미 결론은 정해진 듯했다. 다시 말해, 이번 합병은 우리가 흡수되는 방식의 합병이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야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합병에 동의하신다면 흡수되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역시나 였다... 난 우선 우리 임원방에 해당 사실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 그리고 흡수합병이 될 것이라고 하자 임원방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반나절이 지나도 그 누구도 의견을 내지 않았다. 늦은 밤.... 내가 먼저 내려놓기로 했다.


"저는 찬성입니다. 저희 전투력이 이제는 한계치에 달한 것 같아요. 제가 더 많이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저희가 함께하려면 결국 게임의 즐거움이 지속돼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모두 힘들어하는 게 보이셔서...."


그제야 임원분들도 조심스럽게 찬성 의견을 냈다. 내게 미안해서 찬성이라는 의견을 쉽게 내지 못했음에 틀림없으리라...


하지만 마지막까지 의견을 내지 않은 임원이 있었다. 쭌브로... 그는 늘 내게 직언을 해주던 임원이었는데, 유독 이번 건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난 이전에 우리가 합병 안에 대해서 의견을 나눌 때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전 합병이 차라리 좋을 것 같아요. 이 게임은 전쟁게임이라 전투력 높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저희에게는 그게 없으니 합병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그의 침묵이 묵언의 찬성이라 판단했다. 내게 미안해서 말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임원 전원이 찬성했고, 이어 연맹에서 나와 함께 해주시는 분들의 동의를 구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흡수 합병 안이다 보니 임원들 외에도 전체 의견을 구하는 절차가 필요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어쩌면... 나는 누군가 나 대신 강하게 반대해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전체 연맹원 방에서도 그 누구도 어떠한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 역시 내게 미안해서 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찬성'으로 받아들였다.

저희는 흡수 합병 안이 통과됐습니다.

전체 공지방에 알렸다. 본맹에도 우리의 입장을 전달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합병 작업은 빠르게 진행됐다. 순식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맹주로서 연맹원 분들께 마지막 메일을 보냈다. 흡수 합병에 대한 건과 그동안 함께 해주셨음에 감사하다는 내용을 담아...


감상에 빠졌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내가 게임 속 맹주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하면서 깨닫고 성취감을 느꼈던 부분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감동받았던 부분들... 그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쉬워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곧 흡수될 연맹으로 옮겨갔다.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게임 속 세상이었다. 그들에게 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수 있었다...

허무한 마음과 미묘한 감정이 들어
일찍 잠이 들었다

미국 여행을 다녀온 여독이 있기도 하여 일찍 잠이 들었다. 맹주 자리를 내려놓아서 일까. 게임 속 내 역할이 사라지니 부담이 사라지는 것 같아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지만 뭔가 공허함이 컸다.


일찍 잠이 든 것도 책임감에서 자유로워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새벽 사이에 오고 간 대화들

말이 없던 임원이 새벽에 대화창에 많은 이야기를 적어놨다. 씁쓸함에 대한 토로였다.


나의 흡수합병에 대한 선택은 존중하지만, 자신이었다면 그냥 우리끼리 오손도손 농사지으며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아.......... 그래서......... 의견을 내지 않았는데....... 내가 너무 성급했구나...........'


어제 까지는 내 선택이 옳은 것이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그리고 맹주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벽에 올라온 글들을 읽고 나니 내가 너무도 우리 연맹원 분들의 마음을 몰랐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어려움을 함께 해왔던 이들에게 큰 상처를 줬구나... 그들은 그 어려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 연맹을 지키기 위해서 나와 함께 해줬는데.... 내가 너무 쉽게 연맹을 넘겼구나.... 연맹원들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후회가 밀려왔지만 결정을 뒤엎을 수는 없었다.

나와 함께 하겠다 해주는 분들...

이번 합병에 대한 목표는 분명했다. 우리가 더 많이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합병을 통해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고민에 빠질 것이다.


우리는 예전 흡수되기 전 우리의 즐거웠던 때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그때 고민하면 된다.


지금은 화합에 힘써야 할 때다. 그럼에도 나와 함께 해주겠다고 해주는 분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전투력 상승보다 나를 택한 분들이다.


사실 오해가 있을 수도 있어서 덧붙이자면, 우리를 흡수한 연맹 맹주님도 좋으신 분이다. 새로운 맹주인 타로마루님, 메구님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우리를 존중해주고 있으며 화합을 위해 노력해줬다.

우리와 다른 문화

사실 우리는 흡수 합병 이전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다. 서로 집결하면서 단합을 도모하고, 경험치와 이벤트를 함께 공유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거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다는 죄책감이 든다.  하지만 어쩌면 다른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이슈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걱정했던 부분에 대해 이번에 실제로 경험하면서 연맹원분들은 더 이상 과금러 연맹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내게도 연맹원 분들에게도.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고, 적응해야 한다는 새로운 목표가 주어졌다. 전투력 상승을 위해서는 겪어야 할 성장통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조만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적응해서 잘 지내느냐... 아니면.... 이전 연맹에 있을 때를 잊지 못해... 되돌아갈 것인가... 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난 다른 분들보다 더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 맹주님과 임원분들이 나를 더욱 챙겨주고 보듬어주려고 하신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더 적응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더 그들의 문화에 녹아들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하지만.... 벌써 그립다. 활발하게 서로 채팅방에서 대화하며 지내던 그때가.... 맹주였던 시절이 아닌.... 우리 나름대로 우리 식으로.... 게임을 즐기던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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