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화문덕 Dec 23. 2021

괜찮아! 연말이잖아!

싫어하는 이에게 문자를 먼저 보낼 용기를 낸 날

10명의 우군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한 명의 적을 만들지 않는 거야

오늘 아는 분이 내게 해주신 말이다. 내 성격이 워낙 강해 사람들과 자주 부딪히는 것 같다면서 해주신 말씀이다.


사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분이 보시기에 그렇게 보였다면 내 행동이 바뀌어야 할 필요는 있겠다고 수긍했다.


그 말을 들은 지 얼마 안돼 마음이 복잡해지는 상황에 나는 직면했다.


예전에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던 이와 텅 빈 지하철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5초란 시간은 5분 같이 느리게 흘러갔다. 그사이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는 수많은 생각과 혼란스러운 다양한 마음들이 뒤엉켰다. 결론적으로 난 눈인사조차 하지 않았고 서로 마주친 눈빛은 그렇게 서로를 흘려버렸다.

내 마음속 결정위원회

그 이후 마음속 수많은 마음들이 결정위원회를 소집하고 나의 다양한 마음들은 내가 어떻게 행동했어야 옳았다는 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오래 지난 만큼, 오랜만에 보는 만큼 고개 인사 정도는 했어야 했어. 분명히 적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들었잖아. 그것도 방금 전에 말야'


'너랑 맞지 않는 사람을 왜 다시 네 옆에 다가오도록 허락하려고 해? 네 마음이 다시 어두워지면 어떻게 하려고? 너 또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거야?'


찬반의 마음들이 서로를 향해 강력하게 주장하는 그때 한 마음이 나를 다독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봐. 미워도 그 사람은 너보다 윗사람이야. 업무적으로 얽힌 것도 없어. 그냥 지나가면서 인사 정도는 했어야지. 다른 이들이 봤을 땐 네가 버릇없는 사람일 뿐이야. 고개 인사 한 번 했다고 그 사람하고 어색함이 금세 풀릴까? 그건 네 착각일 뿐이야. 단순하게 생각해. 적어도 그 사람에게 더 이상 너는 감정이 없잖아. 그 사람하고 얽힐 일도 이제 없을 거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야. 그냥 목 사라도 가볍게 했다면 이렇게 너도 복잡한 마음들과 마주하지 않았을 거고. 너 스스로 이 상황을 만든 거야. 목 인사했다면 그냥 끝났을 일인데...'


사실 그랬다

이번 마음위원회가 열린 것도 인사를 했다면 그냥 흘려버렸을 이슈였는데..


후회됐다. 그냥 목 인사하고 지나쳐버릴걸이라고. 하지만 이미 시간은 지났고 떨쳐버리려 했지만 찜찜함이 내 마음을 계속 남아있어 신경이 쓰였다.


'뭘 그렇게 또 신경 써. 그냥 문자 하나 보내. 너가 인사하지 못하고 지나쳤음을 먼저 사과하고. 연말이야. 크리스마스고. 뭐든 다 용서가 되는 연말이라고'


맞는 말이라 생각됐다. 문자를 보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한다. 문자를 보낸 것이 또 다른 오해나 왜곡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말만 담아야 한다. 그에게 나는 더 이상 적의가 없음을 드러내면서 말이다.


문자를 쓰려니 다시 구구절절해진다. 더욱 냉철해져야 한다. 불필요한 단어는 지우자. 그래 이 정도면 되겠다.


***님 얼굴을 마주치니 참 많은 생각과 느낌이 들어 인사를 한다는 그 짧은 시간을 놓쳤네요. 연말이네요. 즐거운 연말 보내세요. 뭐 의도나 그런 건 없습니다. 문자를 보내는 것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뿐이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광화문덕 올림


그래 상대가 연락 없어도 난 할 도리를 한 것뿐이다. 화해의 손짓을 먼저 건네었으니 이제 그의 선택에 달렸다. 하지만 답장이 없어도 그를 미워할 생각은 없다. 적어도 그에게 나는 이제 적이 아니지 않을까. 그가 어디 가서 나를 미워하는 말만 안 하면 그것으로 족한 거다. 그거면 됐다. 그거면 됐다.


한번 용기를 내니 또 다른 분이 떠올랐다. 오전에 우연히 마주쳤던 다른 ... 예전에 같이 일할 때 더 많이 감사인사를 하지 못했던 분이다. 내게 저녁 한 번 먹자고 손을 먼저 내어주셨지만 내가 그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그 이후로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님 올만에 뵈어서 반갑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네요. 지난번 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말 반가웠습니다. 늦었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 광화문덕 올림
우리는 선택 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의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고민 없이 선택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그렇게 살아온 날들, 시간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상대가 나를 인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네지 않으면 상대는 나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고 지나갈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말이나 문자를 보내면 상대는 최소한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놓인다.


나의 말을 무시할지 아니면 답을 할지, 나의 문자를 읽씹 할지 답할지 말이다.


다행히 오늘 두 개의 문자의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내가 미워했던 그에게는 전화로 연락이 왔고 죄송했던 마음을 전했던 이에게는 저녁 먹자고 회신이 왔다.


전화한 이는 대단했다. 나는 전화까지 하지는 못했을 텐데, 정면승부를 선택한 것이다. 그 전화 한 통으로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미워하지 않음을 재확인했고, 나 역시도 그를 미워하는 마음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그도 어차피 조직에 적응하고 상사의 지시에 따르며 살아가는 직장인일 뿐이니 말이다. 그와 나의 가치관이 다를 뿐이지만 우리는 둘 다 그저 조직 내 작은 부품처럼 일하는 월급쟁이일 뿐이라는 건 변함없다. 그러니 미워할 필요가 없다.


저녁 먹자고 연락 온 분께는 점심으로 양해를 구했다. 사실 용기가 나지 않아서다. 

점심하시지요! 사람은 변하지 않잖아요! 전 여전히 거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이가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고민은 많아지고 제게 주어지는 삶의 무게는 더 무거워지고 제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하네요.

그저 가끔은 살아있음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살아가야 할 이유에 물음표를 찍기도 하는 게 직장인 같아요

그럼에도 ***님과 함께했던 추억은 늘 감사한 일들이라 그 마음을 당시 더 많이 표하지 못했음에 안타깝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술은 저를 저대로 봐주시는 분들과만 마시는 중이에요 지금은 벗어났지만 또 병들까 봐 늘 겁나고 혹시 하여도 예전 마음의 병이 든 제가 갑자기 제 통제 밖에서 고개를 들까 봐 겁나서요.

내년에는 괜찮으시면 옛 생각하시면서 점심해요 ^^ 그리고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아 연말이잖아
해피 크리스마스

연말이다.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영화 속에서 들었던 인상 깊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영화 제목은 모르겠지만...


'괜찮아. 다 용서가 되는 크리스마스잖아. 연말이야'


그렇다. 우연히 과거 미워하던 이를 만나더라도 인상 쓸 필요 없다. 연말이니까 크리스마스이니까 '해피 크리스마스'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성탄절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탄생일이니 말이.

이전 24화 경험이 곧 자질이 되더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