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어른이 된다는 건 꿈을 줄이는 걸까

막막하다는 건...딱히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by 광화문덕

카페엔 낮은 재즈가 잔잔하게 흐른다.

창밖에는 투명한 여름 햇살이 내리고,
햇살 아래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이유로 걸음을 옮긴다.
누군가는 분주히 달리고,
누군가는 잠시 멈춰 서서,
누군가는 '나처럼' 방향을 잃은 채 서 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 손에 감싼 채,
아까 도착한 면접 결과 메일을 머릿속에서 곱씹는다.


“좋은 경력을 가지고 계시지만
저희가 원하는 포지션과는 조금 결이 다릅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이제 이런 말도 익숙해졌다.
이력서를 보낸 회사마다 비슷한 문장.

“결이 다릅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더 적합한 후보가 있어...”


결국은 “지금 당신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예의 바르고 정중한 방식으로 건네는 것뿐이다.


“강지후 님… 맞으시죠?”


고개를 들면
낯선 얼굴이 상냥하게 웃고 있다.
단정한 셔츠, 맑은 눈빛,
노트북과 녹음기를 챙긴 에디터.


이유진.
출판사에서 40대 인터뷰를 맡고 있다는,
스물아홉의 젊은 에디터다.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나는 순간 당황해 웃는다.


“아, 아니에요. 좋은 뜻이에요.
저희 팀에서 ‘마흔 인터뷰’ 하면서
혹시 너무 진지하고 피곤한 얘기만 나오진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피곤한 이야기.
어쩌면 그게 내 요즘 인생의 한 줄 요약일지 모른다.


“인터뷰는 가볍게, 편하게 해 주세요.
형식보다 ‘마흔의 기분’에 대해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그녀는 노트북을 열고 나는 잠시 말없이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천천히,
내 마음에 내려앉은 말을 꺼낸다.


“기분이라… 막막하죠.”


“막막하다… 저도 20대 후반인데, 그 감정 너무 공감돼요.
근데 막막하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나는 잠깐 창밖을 본다.
햇살은 여전히 맑은데,
내 마음 어딘가는 조금 그늘졌다.


“막막하다는 건…
앞이 보이지도 않고,
뒤를 돌아볼 수도 없는데
딱히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느낌이에요.”


유진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그 감정의 무게는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진짜 알 수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마흔이 되면요…
‘꿈’이라는 단어 자체가 조금 민망해져요.”


“왜요?”


“어른이 된다는 건
꿈을 키우는 게 아니라
조금씩 줄여가는 일 같거든요.”


“… 줄여간다...”


“네.
20대에는 하고 싶은 게 10가지면 10가지를 다 품고 살아요.
30대에는 그중 다섯 가지만 현실에 맞게 남기죠.
그리고 마흔이 되면,
한두 개 남은 걸 붙잡고 스스로에게 묻는 거예요.
‘이거… 아직 해도 되는 걸까?’”


유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표정 어딘가에,
복잡한 생각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 같다.


“그래도요.”


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 한두 개를 놓지 않는 게
마흔의 용기라고 생각해요.”


유진이 노트북을 덮으며 말했다.


“전, 그 말이 너무 좋아요.
꿈을 줄여가는 게 어른이 되는 거라면,
그걸 놓지 않는 게 진짜 살아 있는 거라는 거요.”


나는 미소 지었다.
그 웃음은 진심이었고,
며칠 만에 처음으로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번진 것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카페 문을 나서며 유진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선배님, 아직…
뭔가 새로 시작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네...
근데 막막해요.”


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막막함이
어쩌면 앞으로 내가 걷게 될 유일한 동력이라는 것을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그래서 막막하다.

그러나 그 막막함이
여전히 우리를 걷게 한다.


오늘도
이 문장을 떠올리며 잠든다.

막막하니까, 마흔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로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