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멈춘 건가?’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백화점 1층.
언제부턴가 이곳 조명이 이렇게 환했나 싶다.
평소엔 무심히 지나치던 공간인데, 오늘은 유난히 거울이 많아 보인다.
반짝이는 화장품 진열대 사이사이,
불쑥 내 얼굴이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처음엔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줄 알았다.
낯선 얼굴.
조금 뒤, 그 얼굴이 바로 나라는 걸 깨닫고, 나는 멈춰 섰다.
피부는 푸석했고,
눈가엔 잔주름이 생각보다 또렷했다.
마스크를 벗자 입가의 처진 선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단순히 피곤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나'를 돌보지 않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언니... 희영 언니 맞죠?”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고등학교 동창 송유진가 서 있다.
빛나는 머릿결, 또렷한 메이크업,
높은 하이힐도 자연스러운, 자신감 넘치는 모습.
“오랜만이다, 잘 지내?”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웃어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다정하게 던진 한마디가
내 마음 어딘가를 조용히 찔렀다.
“언니는 진짜... 아직도 예쁘다.”
그 말이 칭찬이었는지, 위로였는지,
아니면 그저 예의였는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 말 이후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엄마, 이거 봐봐! 나 만들기 숙제했어!”
“엄마 오늘 뭐 해줄 거야?”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는 일상은
이젠 익숙하지만, 여전히 어딘가 낯설다.
그 속에서 나는 가끔,
‘정희영’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리곤 한다.
다림질을 하다가 거실 거울을 흘끗 본다.
거기에는 몇 해째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여자가 서 있다.
긴 머리는 묶여 있고, 얼굴엔 화장기 하나 없다.
문득,
예전 친구들과 밤새 수다 떨던 카페가 떠오른다.
커피잔을 들고,
“나는 나이 들어도 나를 위해 립스틱은 꼭 바를 거야.”
그때는 모두 그 말을 듣고 웃었는데
이제는,
그 말이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밤이 되어 아이들이 잠들면,
남편은 피곤하다며 먼저 안방에 들어간다.
나는 불 꺼진 거실에 혼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휴대폰 화면을 켜면
SNS 속 친구들의 여행 사진, 새 직장,
어느새 다시 학업을 시작한 사람까지.
반짝이는 세상 속에서
나는 점점 흐릿해지는 기분이다.
‘나만 멈춘 건가?’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자꾸 이런 생각이 맴돈다.
‘다들 저렇게 잘 살아가는데
왜 나는 이렇게 잊혀지는 느낌일까.’
거실 한켠,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이 붙어 있다.
아빠는 넥타이를 맨 멋진 모습.
오빠는 축구공을 찬다.
동생은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나는
아무 표정 없는, 눈썹도 없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을 바라보다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정말로,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보이고 있었구나.
욕실 거울 앞에 선다.
오랜만에 서랍을 열어
몇 년 전 동생이 생일 선물로 준 립스틱을 꺼낸다.
한 번도 제대로 바르지 못하고
서랍 속에만 묻혀 있었던 것.
거울 속 내 입술에 조심스럽게 색을 얹는다.
그리고 아주 작게,
나만 알 수 있을 만큼 웃어본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조금은 예전의 내가 떠오를 만큼,
낯익고도 낯설었다.
나는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도,
끝난 것도 아니다.
그저 너무 오랫동안
'말없이 늙어가는 얼굴'이었을 뿐이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조금은 나를 기억해보자.”
오늘도
이 문장을 떠올리며 잠든다.
막막하니까, 마흔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로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