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 챕터를 넘길 수 있다면 지금 이 장면은 스킵하고 싶다
아침이 왔다.
눈을 떴다는 사실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묵직했다.
어깨 위의 이불이 아니라, 마음 깊숙이 남아 있던 어제의 무게가 아직 걷히지 않은 듯했다.
천장은 여전히 하얗고, 창밖은 변함없이 여름이다.
습기가 잔뜩 배인 더운 공기가 커튼을 눌렀고,
매미 소리는 이른 아침부터 방안을 가득 메웠다.
그날따라 방 안은 유난히 고요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한참을 누워 있었다.
누군가 내 대신 이 하루를 ‘스킵’해줬으면.
요즘 들어 거의 매일 떠올리는 상상이다.
어느덧 마흔둘, 어느덧 무직, 벌써 3개월째.
이제 내 나이를 이야기할 때는 항상 ‘어느덧’이라는 말을 덧붙이게 된다.
처음 퇴사를 결정했을 땐 멋진 말로 스스로를 포장했다.
“이제는 나를 위한 일에 집중하고 싶어.”
“지금 아니면 못 쉬잖아.”
“아이와 있는 시간이 소중해.”
모두 거짓은 아니었지만, 전부도 아니었다.
실상은 버티기 힘들었고,
일의 방향도, 조직의 논리도, 내 역할도 모두 흐릿해져만 갔다.
어느 순간,
‘잘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만 남고
진짜 나는 점점 희미해졌다.
퇴사 후 사흘은 해방,
일주일은 휴가,
그리고 열흘쯤 지나자
‘무직’이라는 이름이 어깨에 자리 잡았다.
부엌에 커피포트를 올리고 식탁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비도 아니고, 맑음도 아닌 흐린 여름의 얼굴.
기온은 30도를 넘기는데,
왜 마음은 이렇게 차갑고 눅눅한지.
스마트폰 알림이 떴다.
이직 커뮤니티 단톡방에서 누군가가 자랑처럼 글을 올렸다.
“오퍼 받았어요! 연봉도 좋고, 조건도 좋고, 팀도 젊고요.
진짜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
다들 힘내요!”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보다, 미지근함이 더 오래 입 안에 남았다.
한때는 나도 저랬다.
‘시작’이라는 말에 가슴이 뛰던 시절,
새로운 아이디어에 밤을 새고, 기획서를 처음 열어볼 때의 전율,
작은 성공 하나에도 한 걸음씩 더 나아가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이제는 다르다.
이력서를 열 때마다, 제목을 뭐라고 써야 할지 멈칫하게 된다.
나는 아직 ‘전문가’인가, 아니면 이제 그냥 ‘경력 단절 남성’인가.
“아빠, 나 이 문제 모르겠어.”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문제집을 들고 온다.
나는 웃으며 아이를 바라보지만, 속으론 약간 당황한다.
한때 광고주를 설득하던 사람이었고, 전국 캠페인을 기획하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초등 수학 문제 한 줄씩 읽으며
문제를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어… 이건 아빠가 좀 더 보고 알려줄게.”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간다.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이 아이는 내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눈치챘을까.
마흔이 되면 모든 게 안정될 줄 알았다.
그게 세상의 공식인 줄 알았다.
어느 정도 경력, 어느 정도 집, 어느 정도 월급,
그리고 평온한 일상.
하지만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고,
그 어느 때보다 막막하다.
이 나이가 되면
‘뭘 하고 싶은가’보다
‘아직 뭘 할 수 있는가’를 먼저 따지게 된다.
꿈을 말하면 철없어 보이고,
현실을 말하면 쓸쓸해진다.
밤이면 오늘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내일이 무사하길 바라는 기도를 한다.
면접 결과가 오지 않기를 바라고,
누군가의 성공 소식은 잠깐 피하고 싶다.
그건 질투가 아니다.
그저 지금은
‘안 보고 싶어요’
라는, 조금 솔직한 감정이다.
그리고 그 말조차
누군가에겐 사치처럼 들릴까봐
나는 조용히
내일의 알람만 맞춘다.
그날 밤,
이불을 덮고 천장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내 인생의 한 챕터를 넘길 수 있다면
지금 이 장면은 그냥 스킵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이 시간도 결국
내 이야기의 일부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이 문장을 떠올리며 잠든다.
막막하니까, 마흔이다.
그리고 나의 마흔은 아직… 로딩 중이다.